인터뷰를 위해 아버지 김종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아들과 이야기해주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들 김태응 씨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다소 의아했다. 다른 가족들은 부모와 자녀 양측의 의사가 모두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의아함은 ‘남도반찬’을 찾은 뒤 바로 풀렸다. 아버지는 그만큼 아들을 신뢰하고 대부분의 결정권을 아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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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프린트 소모품 회사를 다니던 김태응 씨는 8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한 차례 창업도 시도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부모님의 반찬가게 일을 도와드렸다. 잠깐이었지만 살아 있는 맛을 봤다. 반찬을 사가는 사람들의 몇 마디 속에 삶이 녹아 있었다. 이거였다!
부모님은 “시장에서 고생하는 건 우리면 족하다”며 아들의 뜻에 반대했다. 하루 종일 손님을 상대해야 하고 주말에도 쉴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 반찬가게로 출근을 시작한 그는 반찬 진열 방식에서부터 부모님과 갈등이 생겼다. 기존에 해오던 가로 진열을 세로 진열로 바꿨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부모님에게는 그동안 해온 방식이 있었다.
아들 태응 씨는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을 접목했다. 우선 20가지의 반찬 종류도 80가지로 대폭 확대했다. 근 단위로 팔던 명란젓은 소규모로 포장해 값을 낮췄다. 반응은 즉각 왔다.
매출이 세 배 이상 뛰었다. 명란젓은 여섯 배 이상 팔리며 소위 대박을 쳤다. 인근 정육점에서 판매하는 사골국과 남도반찬의 깍두기를 세트 상품으로 팔기도 했다. 정육점과 반찬가게 각각의 단골손님이 서로의 단골로 이어졌다. 그렇게 태응 씨는 가게에 변화를 시도하며 4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를 지켰다.
아버지 종덕 씨는 “처음에는 아들이 고생하는 게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참 잘하더라고요. 내 자식 내가 제일 잘 알지 않겠어요? 이제 모든 걸 맡기고 있어요”라고 했다. 최근에는 사업자등록도 아들 명의로 변경했다. 어머니 박명자 씨는 무엇보다 가족이 항상 함께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최근에는 일본·중국 등에서 요리를 공부한 막내아들까지 합류했다.
태응 씨는 전통시장에서 삶과 희망을 찾았다. 시장이 살아야 가게도 사는 법. 요즘은 ‘전국청년상인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전통시장 살리기에 노력하고 있다. 그가 느낀 ‘살아 있는 기분’을 더 많은 청년이 전통시장에서 찾길 바라기 때문이다.
삶의 진한 맛, 우리도 전통시장을 찾아 직접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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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