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갱, ‘오감’, 1630, 나무에 유채, 55 x 73cm, 루브르 박물관
서양미술은 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해왔다. 자연히 감각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감각을 중시하는 이런 전통에서 나온 서양 회화의 중요한 장르 가운데 하나가 ‘오감도’다.
오감도는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곧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한 그림 또는 연작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감각을 주제로 하여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회화인 만큼 감각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의 도덕관을 의식해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묘한 이중성이 아닐 수 없다. 전근대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보다 풍요로워지는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이행기 유럽의 긴장과 갈등을 잘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라 하겠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오감도는 루뱅 보갱의 ‘오감’이다. 테이블 위에 악보와 류트, 트럼프, 돈주머니, 타원형 진주, 와인, 빵, 체스판, 카네이션 꽃병, 거울이 놓여 있다. 여러 개의 사물을 그렸지만, 카네이션을 빼고는 모두 하나씩만 그려져 있어 그다지 복잡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려진 사물은 각각 인간의 오감 가운데 어느 하나를 나타낸다. 악보와 류트는 청각, 트럼프와 돈주머니, 진주, 체스판은 촉각, 와인과 빵은 미각, 카네이션은 후각, 그리고 거울은 시각을 상징한다.
오감을 상징물로 나타낸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그림이지만, 거울에 이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니, 거울이 왜 저리도 어두울까? 앞에 사물이 많이 늘어섰음에도 하나도 비치는 게 없다. 보갱은 왜 비치지 않는 거울을 그렸을까? 바로 감각의 찰나성과 허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감각적 경험이란 거울의 상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이고, 이에 의지해 사는 육체도 순간의 시간을 살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라는 메시지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와인과 빵도 다시 보게 된다. 포도주와 빵은 예수의 피와 살 또는 영성체(성찬식)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모티프다. 그 곁의 카네이션은 신성한 사랑을 의미하는 바로크시대의 상징이다. 세 송이가 꽂혀 있으니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뜻함을 알 수 있다. 모두 ‘성(聖)’과 관련된 것들이다.
반면 테이블 앞쪽에 늘어선 악보와 류트, 카드, 돈주머니, 진주, 체스판은 ‘속(俗)’과 관련된 이미지들이다. 순간의 즐거움, 육체의 욕망과 긴밀히 이어져 있는 것들이다. 화가는 묻는다. 눈앞의 욕망을 택할 것인가, 그 뒤의 거룩한 세계를 택할 것인가? 류트는 엎어져 있고 돈주머니는 닫혀 있다. 트럼프는 앞면이 위로 놓여 있고 체스판은 잠겨 있다. 놀이도, 유흥도, 도박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지금, 선택의 기회가 있다.
당신이 무엇을 선택할까 망설이고 있다면, 화가의 원근법에 좀 더 주목해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체스판과 거울에 작용하는 원근법을 보면 코앞의 테이블에 놓여 있는 사물 치고는 뒤로 줄어드는 각이 상당히 좁다. 그 줄어드는 끝에 있을 소실점이 금세 보일 것만 같다. 이는 일종의 화살표를 연상시킨다. 뒤의 것, 곧 거룩한 것을 택하라는 화가의 강력한 요청이 담긴 표현인 것이다.
이런 정물화 형식이 아니라 인물화 형식으로, 인물과 주변 소품을 오감과 관련된 것으로 그려 넣어 오감도를 만든 작품도 있다. 바로크회화의 대가 카라바조가 그린 ‘류트 연주자’가 바로 그런 그림이다. 빛을 받아 또렷이 부각된 연주자를 중심으로 꽃, 과일, 악기 등이 동원됐다. 역시 꽃은 후각, 과일은 미각, 바이올린 등 악기는 청각, 음표가 선명하게 그려진 악보는 (청각과 함께) 시각을 나타낸다. 그러면 촉각은 무엇으로 나타냈는가? 바로 그림의 핍진성(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이다. 이차원 평면 위에 그렸지만 삼차원 입체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사물의 질감이 사실 그대로 느껴질 것 같다.
의미심장한 것은 그림의 바이올린 현 하나가 끊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꽃이 곧 시들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젊은이의 저 팽팽한 얼굴에 곧 주름이 질 것이라는 사실과 이어져 이 ‘감각 세상’의 무상함을 상기시킨다.
두 그림 모두 이렇듯 육체와 감각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물 묘사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보는 이는 아무래도 그 주제보다 감각적인 묘사에 더 빠져들게 된다. 주제와 형식의 이 같은 갈등 때문에 오감도에는 항상 긴장이 발생하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한,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이행기 유럽의 의식 충돌 현상이 반영된 탓이 크다.
오감 주제의 그림이 부쩍 많이 그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6세기 말~17세기 무렵이다. 이 시기 유럽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경제에서 시작됐다. 널리 알려져 있듯 근대 초기 유럽의 상공업은 자본주의와 중상주의에 의해 지배됐다. 이 두 체제의 병진(竝進)으로 유럽 문명은 폐쇄적인 길드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업과 무역 분야에서 혁명적인 발전과 팽창을 이뤘다. 주기적인 식량 위기가 완화되고, 식민지로부터 각종 특산물이 흘러들어오는 등 물질에 대한 유럽인들의 감각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사치품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고, 감각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양상이 나타났다. 바로 이런 배경을 타고 감각을 주제로 한 오감도가 무수히 그려지게 된 것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미술 담당 기자를 거쳐 학고재 관장을 지냈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내 마음속의 그림>,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이주헌의 아트카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