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선수가 이름을 알리는 방법은 ‘기량’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이름을 떨치는 선수는 많지만 극적인 순간마다 ‘한 방’으로 결정적 활약을 펼친 선수는 드물다. 이승엽 전 프로야구 선수는 그 드문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승엽은 국민적 관심이 쏠린 국제대회마다 특유의 저력을 발휘해 팀의 승리를 이끈 주역이었다. 야구선수를 넘어 ‘국민 타자’라는 칭호가 이름 앞에 붙은 이유다. 이승엽은 우여곡절 많았던 23년간의 야구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지난 2017년 시즌을 끝으로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워낙 국민적 사랑을 받은 선수다 보니 그가 은퇴한다는 소식은 큰 이슈였다. 야구팬뿐 아니라 이승엽 이름 석 자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은퇴 소식을 아쉬워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문 대통령은 이승엽에게 “국민에게 활력을 줬다”는 내용을 담은 축전을 보낸 데 이어 새해 첫날 직접 전화를 걸어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
▶ 2017년 12월 30일 대구에서 성화봉송 주자로 나선 이승엽 ⓒ문화체육관광부
문 대통령 말처럼 이승엽은 그야말로 ‘국민에게 활력을 안겨준 선수’였다. 그가 야구 인생을 통틀어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던 순간은 모두 우리나라 야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2002년 삼성라이온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순간, 2006년 WBC 예선 경기에서 8회 초 역전 홈런으로 도쿄돔을 침묵에 빠뜨렸던 때,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역전포를 터뜨렸던 준결승전.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홈런을 날렸고 그때마다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짜릿한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이승엽은 야구 인생 통틀어 셀 수 없이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2008 베이징올림픽’을 꼽았다. 당시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지게 됐기 때문에 마지막 올림픽 메달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큰 기대를 받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에게 이겨야 한다는 부담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승엽도 ‘혹시나 자신의 실수 때문에 팀이 실점을 하거나 지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상황은 이승엽에게 나쁘게 흘러갔다.
▶ 2008년 8월 22일 중국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야구 우리나라와 일본의 준결승전 8회 말 1사 1루 상황. 이승엽은 이날 타석에 서서 2타점 역전홈런을 치고 슬럼프를 떨쳐냈다. ⓒ조선DB
좌절과 기쁨이 교차했던 베이징올림픽의 추억
당시 우리 대표팀은 전승 행진을 펼치며 순조롭게 경기를 했지만 이승엽 홀로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예선 경기에서 삼진, 병살타, 삼진으로 세 타석을 보냈다. 감독, 후배 선수들을 볼 면목이 없어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준결승전에서 숙적 일본과 만났다. 2 대 2 동점이었던 8회 말, 일본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역전 홈런을 쳤다. 결과는 믿기지 않은 역전승이었다. 다음 날 쿠바와 치른 결승전에서도 1회 초에 결승 투런포를 쳤고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이징올림픽은 이승엽에게 고난 끝에 맛본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이승엽은 우리나라 평창에서 30년 만에 올림픽을 치른다는 말을 접했을 때 매우 반가웠다. 베이징올림픽의 추억이 함께 떠올랐다. 자국에서 치르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스포츠 선수에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지난 2017년 12월 30일 대구에서 성화봉송 주자로 달렸다. 사실 처음 성화봉송 주자로 뛰어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주저했다. 올림픽 흥행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낯을 많이 가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이승엽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성화봉송은 놓치기 아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선수로서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승엽은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성화봉송 주자로 뛸 당시 이야기를 하는 이승엽의 표정에서 어색함과 부끄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1998 나가노올림픽 때 성화봉송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뛰기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 성화봉송 행사는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성화봉송을 하기 전에 주자들을 모아놓고 따로 교육을 하는데 그때부터 긴장되기 시작했어요. 저는 항상 라이브로 경기를 뛰는 선수였는데 주어진 경로, 방식대로 움직여야 하니 너무 어색했죠. 막상 성화봉송을 시작하니 시민들에게 인사도 하고 미소도 짓고 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승엽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동계올림픽 종목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작은 체구를 가진 쇼트트랙 선수들이 필사적으로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고 했다. 이승엽은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김기훈을 비롯해 최지훈, 쇼트트랙 전설 전이경, 김소희 등 당대를 주름잡았던 선수들의 이름을 쏟아냈다.
▶ 성화봉송 주자로 나선 이승엽과 시민들 ⓒ팀퓨처스
성화봉송에 이어 개회식에도 참가
이승엽은 그때부터 올림픽 시즌이 되면 쇼트트랙 경기를 챙겨봤다. 쇼트트랙은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에도 승패를 확실히 알 수 없는 경기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메달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쇼트트랙 경기를 보면서 타인의 잘못이나 할리우드 액션 때문에 피해를 본 선수들이 안타까웠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열심히 훈련에 임한 선수들이 느낄 허탈함과 박탈감을 생각하면 자신이 겪은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
최근 이승엽이 쇼트트랙에 더 애정을 쏟게 된 계기가 생겼다. 바로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임효준 때문이다. 임효준은 남자 쇼트트랙 메달 기대주이자 이승엽의 고향 후배다. 서로 일면식 없는 사이긴 하지만 스포츠 선수로서, 같은 고향 선후배로서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있는 사이다. 그렇다 보니 누구보다 임효준이 금메달을 따길 바라고 있다. 두 사람은 SNS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금메달을 따면 함께 식사하자’는 약속도 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경험 있는 선배로서 임효준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조언이라기보다 응원의 말을 전했어요. 저와는 다른 종목에서 활약하는 선수라 무엇인가 조언해주기보다는 힘을 실어주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있고 뒤에는 5000만 국민이 응원하고 있으니까 그 기를 받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죠.”
이승엽의 조언은 단지 임효준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선배의 속 깊은 조언이었다. 이승엽은 평창에서 뛰는 선수들을 위해 특별히 자신만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전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올림픽을 코앞에 둔 지금 선수들의 마음이 편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몸은 혹사시키더라도 마음만은 편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하고 있는 훈련과 준비 과정을 충실히 했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예요. 또 전 국민이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잖아요. 응원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 기운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부담이 크겠지만 그만큼 큰 기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승엽은 2월 9일 평창올림픽 개회식에도 모습을 보일 예정이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다음에는 KBO 홍보대사로서 팬들과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 생각이다.
“스포츠 선수는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지켜보는 분들에게는 기쁨을 드려야 하는 역할도 있어요. 그 역할을 선수 시절에는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KBO 홍보대사로서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거예요. 또 어린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준비하고 있어요. 3월 초에는 제 이름을 건 장학재단이 출범합니다. 재단 활동을 하면서 야구를 하며 받은 사랑과 관심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으로 돌려주고 싶어요.”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