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첫 메달의 주인공은 크로스컨트리스키에서 탄생했다. 스웨덴의 샬롯 칼라는 지난 2월 10일 열린 크로스컨트리 여자 스키애슬론 15km에서 40분 44초 9로 골인해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칼라는 2010 밴쿠버올림픽 10km 프리스타일, 2014 소치올림픽 계주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했다. 칼라는 크로스컨트리에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마리트 비에르겐이라는 크로스컨트리 여제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칼라였다. 칼라가 금메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올림픽을 대비해 준비했던 전략 덕이었다. 결승전까지 약 12㎞를 남겨둔 지점에서 비에르겐보다 먼저 스퍼트를 했다. 칼라는 강인한 체력과 근력을 바탕으로 선두권 경쟁자들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스퍼트를 한 탓에 경기 막판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보란 듯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결승선까지 내달려 4년 전 손에 쥐었던 은빛 메달을 금빛으로 바꿨다.
바이애슬론에서 평창 첫 금메달뿐 아니라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기록이 나왔다. 지난 2월 21일 열린 크로스컨트리 여자 팀 스프린트 결승에서 비에르겐이 동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 기록을 넘어섰다. 2월 21일까지 비에르겐이 획득한 메달은 노르웨이의 바이애슬론 전설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의 최다 메달 수 13개보다 1개 더 많은 14개다. 비에르겐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4 소치동계올림픽까지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땄다. 평창에서는 계주 금메달, 스키애슬론 은메달, 10km 프리와 팀 스프린트 동메달 등 메달 4개를 추가했다.
바이애슬론에서 첫 금메달, 최다 메달 신기록도
평창의 또 다른 기록은 네덜란드 스케이터 요린 테르모르스가 세웠다. 테르모르스는 앞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에서 고다이라 나오를 꺾고 금메달을 딴 데 이어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계주에서 팀 동료들과 함께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여자 선수가 한 대회 두 개의 서로 다른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딴 것은 테르모르스가 처음이다. 테르모르스는 원래 쇼트트랙 선수다. 훈련을 위해 스피드스케이팅을 연습하다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며 소치올림픽부터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두 종목을 모두 뛰었다. 뒤늦게 시작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이번 대회까지 금메달 3개를 땄지만 정작 본업인 쇼트트랙에서는 메달이 없었다. 테르모르스가 처음으로 쇼트트랙 메달을 딸 수 있었던 이유는 뜻밖의 사건 때문이다. 우리나라, 캐나다, 중국, 이탈리아가 치른 계주 결승 경기에서 캐나다와 중국이 반칙으로 실격 처리되면서 이탈리아에 은메달이, 파이널 B에서 1등을 차지한 네덜란드에게 극적으로 동메달이 돌아간 것이다. 테르모르스는 “늘 쇼트트랙 메달을 바랐지만 계주 준결승에서 떨어진 이후 기대를 버렸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생겼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0.01초 차로 금메달의 주인이 바뀐 경기가 화제였다. 지난 2월 19일 열린 남자 5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졌다. 14조 아웃코스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차민규가 올림픽 신기록 34초 42를 기록하며 깜짝 선두에 올랐다. 하지만 기록은 오래가지 못했다. 16조에 속한 노르웨이의 호바르 로렌첸이 34.41을 기록해 0.01초 차로 차민규가 세운 올림픽 신기록을 깨고 금메달의 주인이 됐다. 우리로서는 아쉬웠지만 역시 세계 랭킹 1위다운 모습이었다.
▶ 2 2월 17일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알파인스키여자 슈퍼대회전에서 미국의 린지 본이 질주하고 있다. ⓒ연합
스키 여제 린지 본은 평창에서 올림픽을 마감했다. 본은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선수다. 본의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해 정선을 지켰던 참전용사였다. 본의 할아버지 돈 킬도는 손녀에게 스키를 가르친 선생님이기도 했다. 본이 경기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시청했던 킬도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를 위해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밝힌 본은 알파인스키 여자 활강에서 1분 39초 69를 기록하며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월드컵 통산 81승이라는 대단한 기록 보유자인 본은 이후 8년 만에 평창에서 다시 메달을 거머쥐게 됐다. 이번 메달로 오스트리아의 미샤엘라 도르프마이스트가 갖고 있던 여자 알파인스키 최고령 메달 기록을 경신했다. 경기가 끝난 후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본은 “우승은 못했지만 동메달도 자랑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고 생각해 자부심을 느낀다”며 소감을 밝혔다.
▶ 2월 16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하뉴 유즈루가 연기 하고 있다. ⓒ연합
피겨 남자 싱글 경기에서는 예상대로 일본의 하뉴 유즈루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뉴는 이번 경기에서 총점 317.85점을 기록해 소치에 이어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피겨 남자 싱글 경기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것은 1952 오슬로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딕 버튼 이후 66년 만이다. 대회 전부터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하뉴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부상이었다. 하뉴는 작년 11월 연습 도중 부상을 입었다. 이후 재활과 훈련에 매진한 결과 올림픽 챔피언의 자리를 지켜냈다. 하뉴는 피겨 킹이라는 수식어 외에도 곰돌이 푸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그래선지 그가 경기를 마치면 아이스링크 위로 팬들이 던진 푸가 비처럼 쏟아지곤 했다. 미국의 네이선 천은 “하뉴의 경기 이후 빙판으로 쏟아질 푸 인형 선물에 마음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푸와 하뉴의 인연은 각별하다. 점핑머신으로 불리며 이번 대회 하뉴를 긴장시킬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천은 쇼트 프로그램에서 세 차례 점프 실수를 하면서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 1 2월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댄스 연기를 하고 있는 독일의 알리오나 사브첸코와 브루노 마소 ⓒ연합
피겨 페어 경기에서는 다섯 번째 도전에서 끝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알리오나 사브첸코의 사연이 화제 다. 사브첸코-브루노 마소는 피겨 페어 스케이팅에서 총점 235.90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사브첸코의 금메달 도전기는 역사가 길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사브첸코는 2002년 우크라이나 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첫발을 디뎠다. 그러다 2006년부터 독일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2008~2009년, 2011~2012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2014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사브첸코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수집한 메달만 10개고 그중 금메달이 5개다.
클로이 김, 부모님 나라에서 최연소 챔피언 등극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에 비해 올림픽에서는 제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부터 2014 소치올림픽까지 네 차례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동메달 2개에 그쳤다. 19년간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파트너도 세 번 바뀌었다. 그와 함께한 파트너 중 유일하게 브루노 마소만이 금메달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쇼트 프로그램 때만 해도 4위를 차지해 또다시 금메달과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무사히 연기를 펼쳐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됐다. 사브첸코는 꿈에 그리던 첫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오랜 마음고생을 보여주듯 한참 동안 오열했다.
▶ 2월 13일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스노보드여자 하프파이프에서 재미동포 클로이 김이 공중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
스노보드에서는 2000년에 태어난 최연소 올림픽 챔피언이 등장했다. ‘스노보드 천재 소녀’ 클로이 김은 지난 2월 13일 열린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만점에 가까운 98.25점을 기록해 금메달을 목에 건 최연소 여자 선수가 됐다.
남녀 스노보드를 통틀어서는 남자 슬로프스타일에서 우승한 레드몬드 제라드에 이어 두 번째다. 2000년 6월생인 제라드는 킴보다 약 1개월 정도 늦게 태어났다. 킴에게 평창올림픽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대회다. 첫 올림픽 출전이라는 점도 의미 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킴의 가족은 금메달에 이어 연락이 끊겼던 친척까지 찾는 겹경사를 맞았다. 킴에게 평창은 첫 올림픽, 첫 금메달뿐 아니라 특별한 추억을 안겨준 곳으로 남게 됐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