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해가 바뀌는 동시에 공감카툰도 새 변화를 맞았다. 정책을 설명하던 만화에서 주제에 맞는 역사를 소개하는 만화 ‘이슈를 품은 역사 이야기’가 매주 <위클리 공감> 독자를 찾아간다. 이슈를 품은 역사 이야기는 ‘역덕(역사 덕후, 역사 마니아)’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정훈이 씨가 맡았다. 그는 영화 전문 잡지 <씨네21>에 20여 년 동안 연재를 성실하게 해온 ‘만화계의 샐러리맨’이다. 첫인상은 중후한 아저씨지만 입담은 만화처럼 ‘명랑’한 정훈이 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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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느덧 24년 차 만화가다.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나?
어렸을 때는 사관학교에 진학해 장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성적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삼수를 했는데도 대학 진학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군대에 가는 것밖에 없으니 ‘앞으로 뭐해서 먹고사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입대하기 전에 뭐든 배우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잘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떠오른 게 만화다. 어릴 때부터 만화 습작을 자주 했다. 교과서 귀퉁이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친구들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곤 했다. 만화를 떠올리자마자 그 길로 당시 서울에 딱 한 군데 있는 만화학원에 갔다. 그곳에서 만화를 제대로 배웠다. 그러다 입대를 했고 제대 후 <영챔프>라는 만화잡지 공모전에 출품했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입상을 했다. 이후 공모전 작품을 본 <씨네21>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원고 청탁을 받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이 풀렸다.
Q <씨네21>에 연재하는 ‘영화 vs 만화’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영화 패러디를 하자고 했다. 영화는 이야기를 푸는 패턴이 일정하다. 패러디를 하면 금방 질릴 것 같았다. 어차피 영화 내용은 다들 아니까 영화에서 모티브만 따서 떠오르는 대로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씨네21 측에서 흔쾌히 그러자고 해서 지금껏 그 방식대로 작업하고 있다.
Q 시사만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시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유가 있나?
만화에서 원래 시사 비중은 많지 않았다. 영화를 소재로 다루다 보니 시사도 만화의 소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영화 vs 만화’는 영화라는 소재만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니 다양한 범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 워낙 시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소재를 주로 다루게 됐다. 좋아하는 독자들이 점점 늘고 있지만 시사적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요즘은 빈도를 점차 줄여나가는 중이다.
Q 사회 현안을 다루다 보면 작업하면서 별의별 일이 다 있었을 텐데?
작업했던 내용이 2~3일 뒤에 정반대 여론이 형성돼 실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사보 연재를 할 때 등골이 서늘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시사적인 내용이 아니라 역사를 다뤘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바르바로사 프리드리히가 십자군전쟁에서 죽는 바람에 시신을 염장해서 독일까지 운반했다. 내용이 좀 잔인한가 싶었지만 역사적 사실이니 괜찮겠거니 하고 원고를 전송했다. 그런데 인쇄 직전에 사건이 터졌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편집팀이 인쇄 직전에 원고를 뺐다고 전해왔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원고가 빠지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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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러고 보면 만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역사’다.
원래 역사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짬이 조금이라도 나면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을 정도. <위클리 공감>에서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때도 역사로 이야기를 푸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매주 이슈를 역사로 풀어가면 재밌을 것 같았다. <위클리 공감>이 정책정보지라 소재를 선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얼마 전 명절이라 설날의 역사를 다뤘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계올림픽을 소재로 만화를 그렸다. 때에 맞는 이슈만 있으면 역사이야기를 찾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리는 것 외에 힘들지는 않다.
Q 시사를 주로 다루는 만화가가 정책정보지에 연재하기로 결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예전에 프랑스에서는 만화로 정책을 홍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만화로 정책을 알리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만화로 정책을 알리면 오히려 국민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정책홍보 만화를 이미 경험했다. 당시 추석 마감을 맞추기 위해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향하는 차들 때문에 꽉 막힌 고속도로로 나갔다. 도로에서 뻥튀기를 파는 것처럼 책을 나눠줬는데 초판을 50만 부 정도 찍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시 만화책 초판본을 50만 부를 찍었다는 것은 기록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 젊은 시절에 겪었던 그 경험이 굉장히 좋게 남아서 이번 연재 제의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Q 평소 소재는 어떻게 발굴하나?
이슈를 품은 역사이야기는 주제를 고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제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곧 패럴림픽이 열리니까 이번에는 소재를 ‘장애인’으로 했다. 이런 식으로 소재를 찾는 것보다 소재를 받쳐줄 자료를 찾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자료는 평소에 틈틈이 찾아봤던 잡다한 지식에 많이 기대는 편이다. 평소에 잡다한 것을 공부하고 샅샅이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Q 작업하는 방식이 여러 정보를 실어야 하는 잡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맞다. 잡다한 것을 찾아보는 것을 워낙 즐기다 보니 이것저것 머릿속에 많이 넣으려 한다. 자료를 따로 모으지는 않는다. 모아봤자 다시 펴보는 일이 거의 없어서다. 하지만 머릿속에 넣어두면 그 주제를 찾는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모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는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찾아가는 게 더 알기 쉽지 않나. 전문가는 누구누구가 있고 여기 필요한 정보는 어떤 책이나 어떤 누리집에 잘 나와 있는지 알고 있으면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Q 만화를 보면 자료가 꽤 많이 사용됐다.
작업의 80~90%는 자료를 찾는 일이다. 일주일 내내 자료를 찾기도 한다.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라 아내가 많이 도와준다. 내 만화의 40%는 아내가 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매주 주제가 정해지면 아내와 둘이서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 검색은 단서를 찾는 과정이다. 인터넷 블로그, 카페 같은 데 있는 자료는 사실관계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단서를 얻으면 거기서부터 사실관계를 추적해간다.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경우 그 나라 사이트에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자료를 찾는다. 얼마 전 ‘동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풀 때도 그 말이 외래어라는 것을 알지만 어디에서 온 말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넘어온 말이 있어 찾아보니 해방 이후 많이 등장한 단어였다. 자료를 계속 뒤지다 유럽 신문기사에서 동장군이 쓰였다는 포스트를 발견했다. 그 기사가 실린 신문이 영국박물관에 보관돼 있었다. 기사는 1812년 프랑스가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나폴레옹을 풍자한 만화였다. 그 당시 신문에 요즘 같은 풍자만화가 실렸다는 것도 신기했다. 결국 동장군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내가 찾아냈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도 있다.
Q 동장군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발굴했을 때는 보람도 크겠다.
그런 일은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얼마 전 동계올림픽을 주제로 원고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가 1948년 스위스에서 열린 생모리츠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방문했다는 것은 내가 발굴한 내용이다.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옛날 신문을 샅샅이 뒤져 당시 최용진 감독이 <동아일보>에 인터뷰했던 기사를 발견했다. 그 순간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미 알려진 내용을 재생산했다면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거다.
▶ 정훈이 작가가 ‘이슈를 품은 역사 이야기’를 작업하는 모습 ⓒC영상미디어
Q 앞으로 이슈를 품은 역사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나?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이 주어진 주제에 맞는 재미난 이야기를 잘 소개하고 싶다.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여성 캐릭터를 자주 쓰고 싶다. 만화 등장인물 대부분이 남자다. 세상의 반이 여자인데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영화 vs 만화’에서는 바보 캐릭터가 많다 보니 여성 캐릭터를 잘 등장시키지 않았다. 또 여자는 예쁘게 그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림이 명랑만화다 보니 예쁘게 그리지 못할 거면 아예 그리지 않는 게 낫다고 여겨서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내 만화에도 이런저런 남녀가 모두 등장하는 것이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슈를 품은 역사이야기에서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전에 내가 그리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를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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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