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사계절 중 가장 특별한 계절을 꼽으라면 역시 겨울이다. 하얗게 뒤덮은 눈이 물결치듯 이어진 산과 그 속에서 꼿꼿하게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와 전나무, 추위를 머금고 더 짙어진 동해바다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이번 겨울 강원도는 전 세계인의 축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려 더욱 특별하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아찔한 겨울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성큼 다가왔다.
▶ 강원 평창군 대관령 일대에서 바라본 눈 내린 백두대간 ⓒ연합
겨울의 강원도는 직접 눈에 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계절이지만 강원도는 겨울이면 더욱 생기가 넘치는 희한한 곳이다. 이번 겨울 강원도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특별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한 달여 앞으로 성큼 다가온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강원도는 전 세계에서 찾아올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지난해 12월 22일에는 서울-강릉 KTX가 개통돼 서울역에서 종착지 강릉역까지 114분이면 갈 수 있고, 청량리역에서는 87분 정도면 가능해 강원도의 겨울을 보다 빨리 눈에 담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강원도 지역 중 이번 겨울 많은 방문객이 찾아올 곳은 올림픽 개최지 정선·평창·강릉이다.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먹방 투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눈이 내린 함백산은 등산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트래킹코스다. ⓒ연합
▶ 삼탄아트마인에서 탄광의 분위기와 예술작품, 자연의 아름다움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삼탄아트마인
‘정선아리랑 시장’에서는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뜨끈한 강원도 대표 먹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제철을 맞아 알이 실한 고구마, 강원도 청정 바람으로 말린 노란 황태를 보면 지갑을 여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 시장에서 양손과 배가 무거워졌다면 정선을 만나러 갈 차례. 정선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많은 관광 명소가 있지만 요즘 각광받는 관광지는 따로 있다. 2016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삼탄아트마인’이다.
삼탄아트마인은 우리나라 무연탄 최대 생산지로 이름을 떨쳤던 함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삼척탄좌의 ‘삼탄’과 탄광의 영어식 표기인 ‘콜 마인(coal mine)’에 아트를 붙여 석탄 대신 ‘예술을 캐내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지난 세기 산업시대를 이끌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탄광이 놀랍게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요즘 도시재생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존에 있던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시도가 많아졌지만 그중에서도 실제 폐광을 이용한 곳은 드물다. 삼척탄좌 시절 종합사무동으로 썼던 건물을 그대로 살려 탄광의 분위기가 그대로 배어 있다. 3층에는 1960년대 삼척탄좌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급여명세서, 작업일지를 비롯해 각종 자료와 수직갱을 조종하던 종합운전실 등 광부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물관이다. 4층은 오롯이 예술을 위한 공간이다. 신인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뿐 아니라 현대미술관 캠(CAM)이 주기적으로 기획하는 전시도 볼 수 있다. 창밖으로 함백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삼탄아트마인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예술이다.
사람의 손에서 빚어진 예술을 뒤로하고 자연이 만든 예술을 만나러 몰운대로 향한다. 가을까지만 해도 힘차게 흘러내렸을 계곡물은 찬바람을 맞고 얼어붙었다. 수려한 경치가 금강산에 뒤지지 않는다 해서 소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 몰운대는 그 절경의 끝자락에서 긴 세월을 견디며 서 있다. 몰운대는 황동규, 이인평 등 유독 많은 시인이 찾았던 곳이다. 정자와 고목이 단출하게 서 있는 풍경을 바라보니 시인들이 읊었던 시만큼 멋지지는 않아도 운치 있는 단어가 조각조각 떠오른다.
대관령을 밝히는 눈꽃, 오대산 전나무 숲길
정선 다음으로 찾은 곳은 설상 종목이 펼쳐질 평창이다. 평창은 겨울에 내리는 눈만큼 눈에 띄는 절경이 많은 곳이다. 평창의 겨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자연의 선물인 ‘눈꽃’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 만큼 눈을 활용한 축제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 겨울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일원에서 펼쳐지는 ‘대관령 눈꽃축제’는 북유럽 부럽지 않은 절경을 자랑한다. 순백의 설원에서 펼쳐지는 눈꽃축제를 방문한 사람은 모두 표정이 밝다. 흰 눈이 반사판처럼 얼굴을 밝혀서인지, 눈이 쌓인 진풍경에 즐거워서인지 모르지만 추위에 움츠리거나 표정이 굳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 오대산 월정사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싸움을 하는 관광객 ⓒ연합
▶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 길에는 천년의 숲으로 유명한 전나무 숲길이 있다. ⓒ연합
평창 여행에서 오대산이 빠지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다름없다. 월정사로 향하는 길에 만난 전나무 숲은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나 볼 법한 절경이다. 전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눈에는 겨울을 밝히는 눈꽃이 만개했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마치 영화 속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추운 겨울 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모습을 드러내는 월정사는 축제가 펼쳐지는 바깥의 분위기와 다르게 고요하다. 사시사철 푸르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마치 세상과 분리된 느낌을 준다. 사찰 마당에 있는 금강연의 얼어붙은 수면 안으로 열목어의 찬란한 빛깔이 유유히 지나간다. 대웅전 깊숙이 자리한 부처의 은은한 미소를 보면 바쁘게 맞이한 새해에 평안한 기운이 깃드는 것만 같다.
오대산에는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스포츠도 있다. 오대산 자락을 따라 월정사와 상원사를 이어주는 선재길 눈꽃 트래킹이다. 계곡을 따라 난 선재길은 겨울이면 고요함이 더해져 제법 운치가 있다. 섶다리, 출렁다리 등 걸음을 재촉하는 볼거리도 군데군데 있다. 강릉에 들어서면 차가운 겨울바람이 먼저 인사를 한다.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바람은 매섭지만 상쾌한 기운이 숨어 있다. 얼얼해진 몸을 데워줄 강릉 카페거리로 향한다. 안목해변을 따라 즐비한 카페가 자리한 이곳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 강릉 카페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드립커피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 ⓒ조선DB
대한민국에서 핫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카페거리에는 도시에서 흔히 보던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특색을 갖춘 가게들이 많다. 이색적이고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카페들이 강릉을 떠오르는 여행지로 만든 주역이다. 카페에 들러 바리스타가 드립으로 내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한 모금 마신다. 온 세상이 따뜻해진다.
차가운 겨울을 데우는 강릉 카페거리
손도 녹이고 속도 데웠으니 오랜 시간 강릉을 대표해온 문화재 오죽헌으로 향한다. 오죽헌은 경포호 서쪽 들녘 너머에 있는 죽헌동에 자리하고 있다. 신사임당의 친정집으로 유명한 오죽헌에는 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오죽헌에는 율곡의 일화를 간직한 물품이 곳곳에 있다. 율곡의 유품인 <격몽요결>의 원본과 벼루를 보관하는 어제각, 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 용꿈을 꾸었다고 해 이름이 붙은 몽룡실(夢龍室)이 잘 알려져 있다. 오죽헌 안에 있는 율곡기념관에는 사임당이 생전에 남긴 저서와 그림, 율곡의 형제들이 남긴 작품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다음으로 강릉 안쪽에 있는 선교장(船橋莊)으로 향한다. 선교장으로 가는 길에 겨울에도 푸르른 노송 수백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한겨울에도 변하지 않고 푸른 기운을 뽐내는 노송을 바라보면 옛 선조들이 왜 소나무를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선교장은 노송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강원도에 있는 개인 주택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상류층이었던 전주 이 씨 일가가 소유했다. 이 씨 일가는 평야가 많이 없는 강릉에서 만석꾼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 11대 손인 이내번이 처음 자리를 잡았다. 경포대 주변 저동에서 살았던 이내번은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천하의 명당을 발견하고 이사를 감행했다. 그곳이 바로 선교장이다. 이내번의 눈이 정확했는지 그 뒤로 가세가 크게 번창해 만석꾼으로 성장했다. 이 씨 일가는 재력만큼이나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넉넉했다. 곳간에 항상 곡식이 가득해 흉년이면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눠줬다는 미담이 전해진다. 선교장 대문부터 하늘로 살짝 치오른 처마 끝, 조선 말 러시아공사관 사람들이 선물했다는 열화당의 차양, 연못 앞에 지어진 활래정(活來亭)을 바라보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던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왠지 마음이 흐뭇해진다.
올림픽 한정판 트래픽 패스로 알찬 여행 즐기세요!
방문객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출시되는 올림픽 한정판 트래픽 패스다. 올림픽 트래픽 패스는 교통카드 기능과 관광이 결합돼 올림픽 개최지인 정선·평창·강릉을 보다 저렴하고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트래픽 패스는 내국인 전용과 외국인 전용으로 구분해 발급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서울-강릉 패스’는 내국인이 철도를 저렴하게 탈 수 있는 혜택을 갖고 있다. 패스는 스마트폰 승차권이나 MMS 승차권으로 발급된다. 1월 3일부터 3월 31일까지 서울-강릉 KTX와 영동·태백선 일반열차 자유석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고, 강원도 G셔틀버스도 무료로 탈 수 있다. 3일권은 10만 원, 5일권은 16만 8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외국인 전용으로 발급되는 ‘평창코레일패스’는 2월 1일부터 3월 25일까지 KTX, 새마을, 무궁화 등 전국 철도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울, 부산, 제주, 인천, 경주, 대구 등 전국 6대 주요 도시의 시티투어버스도 무료로 탈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코리아투어카드에도 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혜택이 포함됐다. ‘코리아투어카드 2018’은 기존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에게 발급했던 코리아투어카드의 특별판이다. ‘코리아투어카드 2018’은 교통카드 선불 기능뿐 아니라 버스, 지하철, 택시 등 각 교통수단 간 환승 기능이 추가됐다. 쇼핑, 숙박, 관광지, 공연 등 전국 178개 제휴업체에서 최대 5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기존 혜택도 그대로 적용된다. 올림픽 한정판 카드와 패스는 코레일 누리집(www.letskorail.com)이나 지정된 장소에서 구입할 수 있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