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안에 존재하는 전통과 관습을 가리켜 ‘기업문화’라고 한다. 기업문화는 기업 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는데, 구성원들의 근무환경과 가장 밀접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려는 직장인이 크게 늘면서 기업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달라진 근무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월화수목금?’.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일주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주말은 평일과 달리 쏜살같이 흐른다고 느껴지는 아쉬움을 가득 담은 것이다. 또 월요일 아침에 유난히 피곤한 상태를 ‘월요병’이라고 부를 만큼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썩 유쾌하지 않은 날이다. 그런데 만약 월요일 출근 시간이 오후 1시까지 허용된다면 어떨까.
IT 스타트업 ‘우아한형제들’의 직원들은 매주 4.5일 근무한다. 한 주의 업무 시작이 월요일 오후 1시부터기 때문이다. 덕분에 직원들은 직장인이라면 평일 오전에 불가능한 개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이를테면 관공서에서 용무를 본다든지 병원 치료를 받는다든지 각양각색이다. ‘4.5일제’라고 통하는 이 제도는 우아한형제들의 내부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이곳만의 기업문화다. 피플팀(기업문화 케어 담당) 안연주 책임을 따라 우아한형제들의 기업문화를 직접 들여다봤다.
▶ 우아한형제들 직원들이 계단식 회의 공간에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지유롭게 나누고 있다. ⓒC영상미디어
▶ 우아한형제들은 사무실 층마다 다른 테마를 적용하되 개인 업무 공간과 협업 공간을 공통적으로 마련했다 ⓒC영상미디어
4.5일제로 통하는 즐거운 회사 ‘우아한형제들’
흔히 많은 기업이 “우리는 즐거운 회사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우아한형제들 또한 이러한 수많은 기업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 우아한형제들은 ‘규율 위에 세운 자율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되고자 한다. 모든 구성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사무실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유다.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이 내려다보이는 우아한형제들 사무실에는 여기저기 노트북을 들고 움직이는 직원들이 여럿이다. 이 중 일부는 널찍한 책상에 둘러앉고 일부는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더니 반쯤 누운 자세를 취한다. 흡사 저마다 편한 자세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우리네 일상 같지만 명백한 업무 회의 현장이다.
“누가 상사인지 모르시겠죠? 상사가 갑자기 등장했다고 해서 자세를 고쳐 앉지 않아요. 그 상사가 대표님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어요. 회의 공간 자체에도 개방성을 가지려고 해요. 방 형태의 회의 공간도 있지만 때에 따라 아일랜드 식탁 위, 공중침대 위, 텐트 안이 회의 공간이 되기도 해요. 너도나도 노트북을 든 채 사무실을 활보하는 것 또한 개인 근무 공간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2월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더욱 한적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직원들 다수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회사 전체 설계 테마는 올림픽공원 옆에 입지했다는 점을 살려 스포츠와 혁신 운동선수로 정했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으로서 정신을 잃지 않고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영감을 받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실제로 한 층의 바닥은 마라톤 트랙을 연상시키는 그림인데, 육상 단거리 최초로 크라우칭 스타트 기술을 시도한 토마스 버크 선수의 도전정신을 담은 것이다. 각 층마다 테마가 다르지만 워크(work) 스페이스와 코워크(co-work) 스페이스로 구성된 점은 동일하다. 서로 떠들썩하게 대화하거나 회의할 수 있는 공간들로 ‘잡담이 경쟁력’이라는 회사의 경영철학을 보여준다. 업무 공간을 분류할 때 쓰이는 파티션이 없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전망이 가장 좋은 층은 ‘선수 대기실’로 불린다. 한마디로 면접자 대기 공간인데 설사 불합격하더라도 면접자들에게 제일 좋은 전경과 경험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회사의 뜻이다.
이 회사의 분위기가 드러나는 건 비단 공간만이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관리가 아닌 관심을 쏟는 데 중점을 둔 우아한형제들만의 복지제도다. 큰돈을 들인 화려한 복지보다 눈을 맞추고 서로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하는 기본적인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지만(저만) 집에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의미의 ‘지만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본인 생일과 배우자·자녀·양가 부모님 생일, 본인 결혼기념일에는 오후 4시에 퇴근하라고 떠민다.
구성원 개인의 성장을 목표로 두 달에 한 번 외부 강연자를 초청하는 ‘우아한 세미나’, 도서 구입비를 한도 없이 제공하는 ‘자기 성장 도서비 지원’ 제도 등도 있다. 조금 더 특별한 제도로는 ‘이달의 피플이’를 꼽을 수 있다. 매달 제비뽑기로 선정된 ‘피플이’들은 한 달 동안 피플팀과 함께 일종의 안전보건 총책임자가 된다.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거나 전구가 고장 났다거나,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법한 문제점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게 주된 역할이다. 직원부터 대표이사까지 모두 ‘피플이’가 될 수 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이미 세 번이나 ‘피플이’가 됐다고 한다.
이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책임과 규칙도 뒤따른다. 벽면 곳곳에 붙은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포스터가 그것이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실행은 수직적! 문화는 수평적~’, ‘책임은 실행한 사람이 아닌 결정한 사람이 진다’, ‘휴가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등 구성원들이 직접 만든 근무 규칙 11가지가 담겼다. 이 규칙은 소셜네트워크상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여러 패러디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외부에서 4.5일 제도, 지만가 제도 등만 봤을 때 일을 덜 한다고 생각해요. 또 근무시간으로만 따졌을 때 과연 회사 생산성에 도움이 되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죠. 하지만 제대로 된 휴식을 가져야만 구성원 스스로 ‘어떻게 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가 보다 유연한 근무환경을 제공한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업무량이 줄어들진 않아요. 다만 우리가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11가지 방법은 그 일환일 뿐이지요. 다니기 좋은 회사가 아니라 일하기 좋은 회사가 돼야죠.”
▶ 우아한형제들 안연주 책임 ⓒC영상미디어
안연주 책임에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내 제도를 물었다.
“매주 월요일에 어린 자녀를 직접 등원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4.5일제죠. 워킹맘이기 때문에 부족했던 온전한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요.”
한독, 회장님과 대화가 어렵지 않아요
최고경영자를 마주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으는 직장인들도 있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또는 ‘최고경영자와 대화하는 게 편하다.’ 두 가지 모두 해당한다. 조금 놀랍겠지만 딱딱하고 보수적일 것만 같은 한 제약회사의 이야기다.
▶ 김영진 한독 회장과 직원들이 팔당댐 길을 따라 걸으며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독
제약기업 한독은 소통과 가족친화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켜왔다. 2013년 한 직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트래킹 간담회’는 대표적인 소통 창구로 유명하다. 김영진 한독 회장과 참가 직원들은 1시간 30분가량 팔당댐 길을 걸으며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트래킹 이후에는 사전 취합된 질문을 바탕으로 간담회를 진행하는 형태다. 연애, 꿈, 스트레스 해소법 등 개인적인 질문을 비롯해 회사 경영 이야기까지 주제는 다양하다. Cmnd(인사교육부) 소속 최충남 대리는 지난해 있었던 한 트래킹 간담회 경험을 떠올렸다.
“길이 넓지 않아서 보통 2열로 걷는데 회장님이 맨 앞에서 걷는 사람부터 이야기를 건네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모든 직원이 대화를 나누게 되거든요. 회사 대표와 마주한 채 제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잖아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무엇보다 사전에 정해진 질문을 해야 한다거나 특정 질문을 강요받는다거나 이런 부분이 없다는 게 최고죠.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그리고 개선이 필요한 점도 자유롭게 이야기했어요.”
한독의 소통 창구는 다양하다. 분기마다 경영진과 전 직원이 모이는 ‘한독한마당’은 커뮤니케이션 장이다. 참석자 모두 둘러앉아 임직원들의 질문에 경영진이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임직원 누구나 경영진에게 점심식사를 신청할 수 있는 ‘짱과의 점심’도 있다. 경영진과 직원 사이의 중간 단계를 줄여 더욱 생생하게 소통하는 시간이다.
▶ 한독 최충남 대리 ⓒ한독
한독은 가족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으로 공식 인정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2011년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가족친화우수기업’ 인증을 받았는데 2016년 재인증 받아 2019년까지 가족친화우수기업 자격을 유지하게 됐다. 가족친화제도로는 출산 장려금, 태아 검진 휴가, 엄마방 운영 등이 있다. 본사 인근 어린이집과 위탁 어린이집 운영 계약을 체결하고, 이곳을 이용하는 직원들에게는 주차공간과 일부 보육비를 지급하는 제도도 특별하다. 사내 어린이집을 이용 중인 알렉시온 프렌차이즈 메디칼팀 소속 정가영 대리는 회사 제도에 대해 말했다.
“자녀를 사내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지 2년쯤 됐어요. 출산 이후 복직을 결정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이 육아였어요. 비용 측면에서도 그렇고 부담 없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 찾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사내 어린이집은 저와 같은 워킹맘에게 큰 행복입니다.”
▶ 한독 정가영 대리 ⓒ한독
정가영 대리는 한독 60주년 행사 때 경영진들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행사장에 먼저 도착해 임직원을 맞이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임직원이 탄 버스를 배웅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닐수록 감동을 주는 회사예요. 그래서 오래 다니고 싶어요. 얼마 전 회사에서 30년 근속한 영업팀 사원에게 상을 수여했어요. 사실 제약회사에서 임원도 아닌 사원이 그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건 드문 일이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서 느꼈죠. 직원을 참 소중하게 여기는 회사구나.”
이런 기업문화도 있다
카카오, 3년마다 30일 안식휴가
카카오는 자율적인 휴가 사용을 권장한다. 해마다 구성원 개인에게 부여되는 연차 외에 3년에 한 번씩 안식 휴가 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이 기간에는 유급휴가 30일과 휴가비 200만 원을 지급한다. 직급이나 근속기간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카카오 직원 중 30%는 서서 일한다. 이 문화는 실리콘밸리의 IT 기업을 견학한 한 직원의 제안으로 시도됐다. 업무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서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아지자, 회사는 높낮이 조절이 자유로운 스탠딩 데스크를 제공하고 있다.
게임빌, 식사와 건강 챙기는 헬스365
게임빌은 창업 초기부터 중식과 석식을 무료로 지원해오고 있다. 업무 여부를 떠나 자유롭게 식사하는 분위기를 통해 부담 없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식단 조절을 책임지는 ‘웰빙 건강 도시락’도 병행하면서 직원들의 건강을 위한 다양한 측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헬스 365(전 직원 건강검진, 상해보험 제공), 주택자금 지원, 복지 카드, 콘도 및 휴양 시설, 귀가 택시, 장기근속 휴가 등 게임빌만의 복지 서비스도 있다. 무엇보다 12년째 운영되고 있는 간이 PX는 소통문화의 핵심이다. 누구나 경사가 있을 때 수시로 간식을 협찬하고 모두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임빌 고유 소통의 장이다.
LG유플러스, 근무시간 아니면 PC 접속 차단
LG유플러스는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여직원과 임산부를 대상으로 ‘시차출퇴근제’를 우선 시행하고 있다. 시차출퇴근제는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까지 30분 단위의 7가지 근무 형태를 정하는 방식이다. 일례로 오전 7시에 출근하면 오후 4시에 퇴근하고,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하면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하도록 한다.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직원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선택한 근무 형태는 매월 변경 가능하며 최대 6개월까지 적용된다.
LG유플러스는 일일 근무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을 기준으로 근무 종료 40분 후부터 익일 근무 시작 2시간 전까지 업무용 PC 접속을 차단한다. 해당 시간대에는 사무실 이외의 장소에서도 PC 사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소비자 접점 채널 또는 교대 근무로 시스템 차단이 어려운 일부 부서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근하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