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진피 속의 콜라겐 섬유와 탄력섬유 등에 변성이 일어나고 피부 수분이 감소해 피부가 접히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것. 백과사전이 알려주는 주름의 정의다. 주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햇빛이고, 노화로 인한 피부 수분 감소와 탄력 저하도 당연히 한몫한다. 주름이 달가울 사람은 세상에 없다. 피부 잔주름을 예방한다느니 항산화 효과가 있다느니 하는 화장품들이 ‘안티에이징’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인기몰이를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효과가 그리 드라마틱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이 분야 트렌드는 이미 ‘시술’로 넘어간 지 오래다. 보톡스, 자가지방 이식, 필러 주입, 레이저 박피술, 리프팅 같은 전문용어를 다들 주르르 꿴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수를 하거나 면도를 하며 거울을 볼 때면, 미간의 주름을 양손으로 쭉 펴보기도 하고 눈 밑의 처진 살을 들어 올려보기도 한다. 별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저 안타까운 거다. 하지만 딱 하나만은 예외다. 콧방울 양쪽 끝에서 입가로 내려가는 얼굴 주름. 흔하게는 ‘팔자주름’이라고 부르고, 관상학에서는 ‘법령선(法令線)’이라고 하는 이 주름에 나는 꽤나 애착을 가지고 있다. 멋진 법령선을 갖고 싶다는 욕심에 거울 앞에서 활짝 웃어보기도 한다. 멋진 법령이 대체 뭐냐고? 콧방울에서 시작하는 주름선이 깊고 힘차면서도 부드럽고 유장하게 흐르는 것을 말한다. 주름선이 힘차되 날카로워서는 안 되며, 부드럽되 흐지부지 흘러서도 안 된다. 예컨대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 워렌 버핏, 오프라 윈프리 등이 그런 법령을 가졌다. 우리나라 정치가나 연예인 중에도 종종 보인다. 탤런트 김혜자나 배우 안성기의 법령이 아름다워서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관상학에서는 힘차고 유장한 법령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인 힘이나 위상, 지도력을 갖는다고 해석한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관찰해본 바로는 멋진 법령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 위상이 높고 따르는 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법령을 더 갖고 싶어 탐을 내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순수하게 심미안에 부합해 탐을 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치 자기충족적 예언 행위처럼 법령선을 통해 관록을 탐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령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법령이 힘차게 출발하려면 콧방울부터 크고 단단하게 맺어져야 한다. 뺨도 옹색하거나 강퍅해서는 안 된다. 광대뼈가 부드럽고 넉넉하게 솟아오르면 더 좋다. 저절로 법령의 흐름이 둥글고 유장해진다. 턱과 입술도 이 흐름을 잘 이어받아야 한다. 턱은 두툼하고 단단해야 하며, 입술은 선이 단정하면서도 넉넉해야 좋다. 표정 짓는 습관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입술이 비뚤어지는 조소나 냉소가 아니라 입술 양끝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활짝 웃어야 법령선이 아름답게 자리 잡기 때문이다. 꿍꿍이나 계산속을 다 내려놓고, 솔직하고 투명하게 웃는 웃음이 일상생활에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멋진 법령을 갖고 싶어 오래도록 관찰한 끝에 나온 내 나름의 생각이다.
법령 얘기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시오노 나나미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고대의 영웅들을 현대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그중 최고의 인물로 로마 공화정 말기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카이사르를 꼽았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그녀는 이탈리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읽어준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 다섯 가지다.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고대 로마의 조각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이런 추상적인 단어들을 카이사르의 얼굴에 생생히 구현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카이사르의 얼굴을 단순히 잘생겨 보이게 하는 걸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더 높은 목표의식이 있었다. 카이사르의 두상이며 흉상, 하다못해 손톱만 한 동전에 새겨진 옆모습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깊게 파인 뺨과 법령을 타고 흐르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주름살들. 그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집요하고 강인한 의지와 야심, 게다가 절제력까지.
요즘도 거울을 볼 때면 내 얼굴에 흐르는 법령의 향방을 관찰한다. 약한 콧방울과 작게 움츠러든 입술을 안타까워하며, 멋진 법령을 갖고 싶어 짐짓 미소를 지어보기도 한다.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주름은 분명 서글프고 달갑잖은 일이다. 하지만 멋진 법령을 가질 수 있다면 나이 먹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일이라고, 그런 생각으로 새해 첫 달을 살아간다.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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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