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3인에게 들어보니
요즘 청년들을 두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춘 세대’라고 말한다. 학점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능통한 외국어를 비롯해 봉사활동, 해외 연수, 인턴 경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하지만 이러한 스펙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회의 선택에 따른 경우가 많다. 이들 대다수의 목표는 안정적인 직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난 뒤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사회 그리고 부모 세대가 원하는 대로 걸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평생직장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하정, 김수환, 김주원 씨는 대다수 청년세대와 달리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의 내 길’을 고민하는 특별한 이들이다. 세 사람은 “인생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나만의 방향 찾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에게 청년세대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하정 씨
청소년 문화교육 기획자
“입시 경쟁으로 행복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일의 답 찾아”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서울 도봉구에 자리한 청소년 복합문화공간 ‘엘오이(LOE)’에서 기획자로 일한다. 청소년만을 위한 공간에서 지역의 평범한 청소년들을 만나며 나의 진로도 찾아가고 있다. 즉 청소년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청년이다.
-23세 또래들의 대다수가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가 아닌지.
=고등학생 시절 대부분 학생들이 그렇듯 대학 진학을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스펙만을 위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 의미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당시 친구들에게 ‘너 무슨 학과 갈 거야’라고 물어보면 ‘성적에 맞춰서 갈 거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 역시 사범대 진학을 희망했는데 거기 가면 뭘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성적에 맞춰 사범대 가고 싶다고 말한 것 같았다. 입시 경쟁에 시달리면서 행복하지 않았고 벗어나고 싶었다.
-청소년 대상 교육 기획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청소년 시기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간은 방과 후 ‘코워킹 스페이스’를 통한 문화기획 활동이었다. 코워킹 스페이스란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는 협업의 공간 또는 커뮤니티를 말한다. 코워킹 스페이스를 통해 ‘내가 원하는 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관심 분야가 같은 사람들과 회의를 하며 청소년 문화기획에 관심이 생겼고, 여러 포럼 활동 등을 거치면서 이쪽으로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내 주변은 청소년이고, 스스로 문제 인식을 가진 집단도 내가 속해 있는 청소년 집단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됐다.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이 처음부터 ‘너의 선택을 믿겠다’고 하신 게 아니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깊은 고민에 빠지셨다. 하지만 너무 확고하고 자신감 넘치는 내 모습에 부모님도 차츰 믿어주신 것 같다. 오히려 내 학원비로 쓸 돈을 나 자신에게 투자해달라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어머니 덕분에 청소년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막연한 꿈을 구체적인 계획으로 옮길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데 대한 일종의 편견이 있지 않나.
=외로웠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너, 대단하다”였다. 그런 반응이 정말 싫었다. 뭔가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응원해주는 친구도 많았지만 그런 말이 외롭게 느껴졌다.
-다른 또래 청년들은 어떤 고민을 많이 하나?
=우울한 청년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은사님을 만나뵈면 ‘무기력한 청소년이 한 반에 절반 이상은 된다’는 얘기를 하신다. 실제 나를 포함해 이곳을 찾는 청소년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이 많다고 느껴 많이 공감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청년세대로서의 고민은?
=최근 무기력하거나 우울함 때문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되도록 다양한 사람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 책을 쓰는 작가 등. 그리고 강연도 다양하게 찾아 듣고 있다. 나는 어떤 청년으로 청소년들을 만나야 하고, 또 어떤 청년으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풀기 위함이다.
-청년세대를 위해 우리 사회가 해줘야 할 일은 뭐라고 생각하나?
=사회랑 청년을 구분 짓지 않았으면 한다. 청년을 위한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현재 글도 쓰고 디자인도 직접 하면서 오직 은사님 한 분을 위한 책을 만들고 있다. <우울한 친구를 마주하는 법>이라는 책인데 청소년 시기부터 내가 직접 겪은 고민이나 극복 사례, 그리고 지역에 있는 평범한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업을 시작으로 작가의 꿈을 키워보고 싶다.
-일반적인 청년세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 개척 중인데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주변을 보면 오로지 100% 다른 사람의 사례만 보고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 거 같다. 당장 무언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회는 항상 본인이 찾아야 하는 거 같다. 너무 막연하게 꿈을 정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봤으면 한다.
김주원 씨
개인 브랜드 창업 준비
“대학 대신 내 꿈 위해 실천 틀에 박힌 사고방식 바꿔야”
-지금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위메이드 룩(WEMADELOOK)’이라는 이름의 쇼핑몰을 준비하고 있다. 나를 표현하는 활동을 많이 하고 싶은데 아직은 자본이 없어서 낮은 자본력으로 오픈할 수 있는 쇼핑몰로 접근하고 있다. 내가 해보고 싶은 다양한 활동을 쇼핑몰을 통해서 키워나가고 싶다. 최종 목표는 개인 브랜드를 창업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코스를 밟고 패션계에서 일하는 건 아닌 듯한데.
=여러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이후 내 꿈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 실천에 옮겼다. 밤에는 동대문 의류업계에서 일하며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익혔고, 낮엔 다양한 해외 컬렉션을 찾아보며 나만의 패션 색깔을 찾으려 했다. 개인 브랜드를 부각한 여러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계기는?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관 덕분인 것 같다. 대다수 청년세대 부모님이라면 대학, 대기업 취업을 이야기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그저 믿고 지켜봐준다. 다만 고민이 있을 때면 늘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신다.
-청년세대로서 힘든 점도 있을 텐데.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금전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불안감이다.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안 될 것 같아’ 이런 쓸데없는 불안감 말이다. 우리 사회 청년 대다수가 갖고 있는 거 같다.
-기성세대나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는 무조건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엔 또 바로 취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틀에 박힌 사고방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김수환 씨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
“내 멋대로 살자가 인생 목표 관심 있는 분야 정말 많아져”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건축 분야에 일찍 취업했다가 아니다 싶어 그만두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있다. 지금은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하며 입대를 준비 중이다.
-또래보다 사회 경험이 많은 것 같은데.
=뭔가를 할 때 억지로 하지 않는 성격이다. ‘내 멋대로 살자!’ 인생 목표가 단순하다. 눈에 보이는 것 중 관심 있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하나씩 시작해보자는 마인드로 생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도 많을 텐데.
=관심 있는 분야가 정말 많아졌다. 음악, 뮤지컬, 사진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건축을 전공했고 스무 살 때 기술교육원에서 도배 관련 수업을 들어서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해보기 전과 해본 뒤가 많이 다르더라. 해보기 전엔 다 할 수 있겠다 싶은데 막상 배워보니 “이건 못 하겠는데…” 소리가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너무 일찍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
=‘대학이나 가라’ ‘나중에 공무원 해라’. 사람들이 이런 말 많이 하지 않나. 그런 이야기는 그냥 무시한다. 왜냐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강요하니까. 나처럼 대다수 청년이 그런 강요를 받는 거 같다. 아, 원해서 한다면 공무원은 너무 좋고 멋있는 직업이니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웃음)
-다른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꿈을 찾는 과정에서 멘토의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한다. 내 경우 청소년 시절부터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아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청소년 시절 진로에 대해 생각할 때 (이하정 멘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궁금한 분야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그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청년세대가 경험하지 않았던 다양한 것을 다 해보면 좋겠다. 조금 실수해도 되는 나이이지 않나.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라도 기회가 오면 잡아보고, 이쪽저쪽으로 넘어지고 깨지다 보면 자기 길을 찾지 않을까. 이게 20대의 유일한 내 희망이다.
글 강민진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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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