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밝힌 ‘베를린 구상’ 기조 아래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남북교류 활성화를 토대로 남북관계 재정립을 추진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8월 23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외교·통일 분야 핵심정책 토의에서 “북한과 대화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날 토의는 부처별 업무보고를 겸했다. 보고 뒤에는 통일부와 외교부가 보고한 핵심 정책과제에 대한 참석자들의 토의가 당초 예정된 시간을 1시간 초과해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6시 7분까지 진행됐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접근, 다양한 의견이 제시돼 굉장히 열린 토론이 진행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토의에서 문 대통령은 “비핵화 노력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선후 또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면서 선순환 구도 속에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확고한 한미동맹과 함께 중국·일본·러시아 등과의 협력외교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 “남북대화도 국익의 관점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당장은 아니지만 대화가 열리는 시점이 된다면 그런 과정도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기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통일부는 남북관계를 다루는 주무부처로서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기대한다”며 “지금 북한의 도발로 남북관계가 교착 상태지만 이럴 때일수록 통일부는 차분하고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핵심정책토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통일부의 주도적·능동적 역할 강조
문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통일부 폐지 움직임도 있었고 주요 정책 결정에 통일부가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 경제구상 실현에 통일부의 역할이 지대하고, 외교·안보 상황이 어려울수록 통일부의 역할이 작아지는 게 아니라 더 막중한 사명감을 갖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통일부가 역점을 둘 것은 한반도 신경제구상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으로, 이 구상이 실현되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며,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바탕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제 대북정책도 국민이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와 전문가 중심으로 국민의 참여공간을 넓히고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북대화 재개 및 남북관계 재정립, 평화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 등 2건의 통일부 핵심 정책과제를 보고했다. 통일부는 군사분계선상 적대행위 중지를 논의하기 위한 군사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회담 등 남북 간 현안 해결을 위한 대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7월 17일 북한에 두 회담의 개최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천해성 차관은 업무보고 뒤 브리핑에서 “남북관계 단절 국면이 오래 지속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 재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남북 민간교류를 진행한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특히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등 스포츠 교류와 종교·학술·문화 교류, 재해 공동 대응 등 비정치적인 분야의 민간·지자체 교류를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통일부는 이런 기조에 따라 대북 접촉 신청을 현재까지 90여 건 승인했지만 북한은 우리의 대북제재 동참 등을 문제 삼으며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는 또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등 시급한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 역시 민간 지원,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당국 차원의 직접 지원 순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영유아 등 취약계층이나 감염병 예방을 위한 민간 지원은 적극적으로 돕고, 유니세프와 WFP(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의 대북 지원 사업에 대한 공여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당국 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통일부는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통일국민협약’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국회·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추진 체계를 갖추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과 협력해 여론을 수렴하기로 했다. 이 밖에 그동안 이뤄진 남북합의의 제도화, 생활밀착형 탈북민 정착 지원 강화, 지자체가 참여하는 ‘남북교류협력협의체’ 구성, 개성공단·경협기업 피해 지원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조명균 장관은 “한반도 평화 방안을 주도적으로 제기해 비핵화 대화 여건을 조성하겠다”면서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한반도 신경제지도’ 추진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 1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3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2017 외교부·통일부 핵심정책토의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입장하고 있다. 2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3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2017 외교부·통일부 핵심정책토의에서 부처 공무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
외교부, 긴밀한 한미 공조로 북핵 해결
8월 23일 통일부와 함께 업무보고를 한 외교부는 대북정책 추진의 모든 영역에서 긴밀한 한미 공조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미 간 북핵, 북한 문제 관련 모든 사안에 대해 물샐틈없는 공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 핵·미사일 도발 억제와 비핵화 대화 복귀 견인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강 장관은 “굳건한 한미동맹과 국제사회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 억제 및 한반도 긴장 완화·해소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 전개하겠다”며 “한미 간 긴밀한 공조하에 비핵화 대화 재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전기를 마련하겠다”며 “중국,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지속 견인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평화체제 로드맵 가동을 위한 우호적 환경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최근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도발과 도를 넘는 위협적인 언사의 지속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근원적 해결과 함께 남북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고 전했다.
부처별 업무보고는 ‘쌍방형 소통’
이날 외교부 업무보고 후 문 대통령은 “자국 이익 중심주의에 따라 협력보다 갈등이 부각되는 게 지금의 엄중한 외교 현실”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우리가 지킨다는 철저한 주인의식, 국익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면한 가장 큰 도전과 위협은 역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라며 “한반도 평화 정착은 우리의 과제이자 세계 평화와도 직결되는 과제로, 확고한 한미동맹과 함께 중국·일본·러시아와의 협력외교로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우리 외교 지평을 꾸준히 넓혀나가야 한다”며 “기존의 4강 외교 중심에서 아세안·유럽·태평양·중동 등과도 외교협력을 증진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한반도 문제뿐 아니라 글로벌 현안에 참여하는 책임 국가로서 우리 국격을 높이는 당당한 외교도 펼쳐나가야 한다”며 “아울러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부가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외교관은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분이 많은데 일부 불미스러운 일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내부 기강을 세워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2000만 해외 여행객 시대를 맞아 국민을 보호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재외국민 보호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재외국민 보호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새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는 과거와 다른 ‘쌍방형 소통’이 특징이다.
문 대통령은 8월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부처별 업무보고의 성격으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핵심 정책 토의에서 일방적 보고가 아닌 자신과 부처 간 ‘쌍방향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아주 전문적인 분야여서 대통령도 업무보고를 통해 배우고자 한다”며 “과거처럼 부처 업무 전반을 나열해서 보고하지 말고 핵심 정책에 집중해 토의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 토의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토론 시간이 됐으면 한다”며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고 다른 부처 소관사항의 토론에도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토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부처의 업무 전반을 보고받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다양한 아이디어 속에서 구체적인 핵심 과제 추진 방향을 찾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런 원칙에 따라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0분씩 핵심 정책보고를 마치고 나서 한 부처당 26분씩 핵심 정책을 놓고 토론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쌍방향 소통과 더불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부진을 거론하며 “과거와 비교하면 과학기술, 정보통신 분야의 국가경쟁력이 많이 낮아졌다”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초연구 투자가 부족해 일본에서 22명이 노벨 과학상을 받는 동안 우리나라는 후보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도 많이 뒤처졌다”고 강조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 핵심정책토의에 참석하고 있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 실현 과제
문 대통령은 이날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꼭 실현해야 할 과제”라며 “지배구조 개선 등 대책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송사 스스로도 책임을 다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올해 11월께로 예정된 KBS·MBC·SBS 등 지상파 재허가와 MBN 재승인 심사를 할 때 보도·제작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집중적으로 심사하겠다고 보고했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 공영방송 실현을 위해 방통위 내에 방송·법률·언론계 인사, 제작·편성 종사자,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방송미래발전위원회’도 설치한다. 이 위원회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제작·편성 자율성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 방통위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고자 포털의 인터넷 게시물 임시조치에 대해 정보 게재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법 개정 등을 거쳐 2018년까지 신설하기로 했다. 정치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2022년까지 완전 자율 규제화를 추진한다. 아울러 신유형 앱과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 등장으로 새로운 유형의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고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을 감안해 연내에 통신 서비스 분쟁조정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다. 이 제도를 통해 분야별 맞춤형 피해구제 기준을 개발해 이용자의 신속하고 편리한 피해구제를 지원한다. 그리고 몰카 동영상 등 선정적·폭력적 불법 유해정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불법 스팸에 대한 실시간 차단을 문자에서 음성까지 확대한다.
이효성 위원장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고 국민이 방송통신 서비스를 안심하고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민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으로 공정하게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8월 25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았고, 28일에는 국방부·국가보훈처·행정안전부·법무부·국민권익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는다. 이어 29일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국토교통부, 30일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31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순으로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다.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