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뻘밭 구석이거나/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이성부 ‘봄’ 중에서)
그렇게 봄이 왔다. 남녘의 봄은 제주도, 청산도를 거쳐 한려수도에서 눈부시게 출렁인다. 한려수도는 한산도에서 여수 사이 물길을 말한다. 한산도에서 거제도, 남해도, 여수 앞바다의 해상을 한려해상,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고 부른다. 78.9㎢에 이르는 청정해역 한려해상에는 120개의 크 고 작은 섬들이 수려한 바다 풍경의 진면목을 연출한다.
찬란한 남해의 봄은 그렇게 드넓은 한려해상을 흔들어 깨우고, 햇살에 멍석을 말듯 파도가 쪽빛 바다를 공그르면서 눈부시게, 눈부시게 해안가로 물결쳐 온다.
▶ 남해안 한려수도 ⓒ연합
남해도는 창선삼천포대교, 창선교, 남해대교 등 세 개의 다리로 섬과 뭍이 연결되었다. 남해도는 조도, 호도, 노도 등 유인도 3개, 무인도 76개로 이뤄져 있다. 302㎞에 달하는 굴곡진 해안선에는 일찍이 이순신 장군이 해안지형을 활용해 왜적을 대파했듯 역사의 숨결이 담긴 유적지가 남아 있다.
이런 리아스식 해안일수록 어족 자원이 풍부해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고기잡이와 양식업에 종사한다.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해 강태공이 몰리고 꼬불꼬불 섬 모롱이는 여행자들에게 그대로 전망 포인트가 된다. 그래서 남해도 여행에서 해안일주도로는 드라이브하거나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햇살이 부서지는 푸른 바다 풍경은 그대로 한 편의 영화이고 한 폭의 그림이다. 낚싯배와 함께 유유자적하는 강태공과 울긋불긋하게 물들인 양식장과 미끄러지듯 오가는 어선들, 섬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마주하는 아담한 해변은 남해도에서 감동하는 대표적인 파노라마다.
남해도는 본섬과 창선도로 이뤄졌다. 남해는 행정구역 단위인 ‘군’ 자를 붙여 남해군으로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남해도 여행 코스는 동서로 나뉜다. 서쪽은 몽돌과 백사장, 기암괴석의 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동쪽 창선도는 갯벌과 어촌 풍경이 일품인데, 여행자는 낮게 내려앉은 어촌마을과 바다와 수평을 이루며 아름다운 동행을 한다.
일찍이 섬사람들은 협소한 땅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계단식 논밭을 일구며 살았다. 특히 남해도는 섬 가운데 턱하니 차지한 산 때문에 이런 논밭이 최상이었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다랭이마을이 대표적이다. 조상들은 산지에 한 뼘의 농토라도 더 얻고자 산비탈을 깎아 계단식 밭을 만들었다. 평산항에서 사촌해변에 이르는 다랭이지겟길에서 해안으로 내려가 파도를 동무삼아 걷다 보면 맑고 푸른 바다 풍경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산모퉁이를 몇 굽이 더 돌아 내려가면 물건마을이다. 천연기념물 제150호 물건 방조어부림이 있다. 해변에는 300년 넘은 1만여 나무들이 숲을 이뤄 풍랑과 해풍으로부터 어선과 어부들을 지켜왔다. 그 위쪽으로 독일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960년대 우리네 삶이 팍팍하던 시절에 경제발전의 첨병이었던 간호사, 광부 등 독일 교포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평안히 정착할 수 있도록 독일 문화와 우리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해양마을이다.
동으로 바다가 열린 창선도는 해안선 길이가 19㎞이고 16개의 마을이 어깨동무하듯 가깝게 산다. 어민들은 바다에서 주로 굴을 채취하고 죽방렴 멸치를 잡는다. 죽방렴은 물살이 빠른 지족해협에 대나무 말뚝을 V자로 박아 물고기들이 빠른 물살에 방향을 잃으면서 두 대나무 사이 길로 빨려 들어가 나오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죽방렴 멸치는 해협의 빠른 물살을 헤치는 활동량 때문에 육질이 쫀득하고 고소하다. 그물을 이용하지 않아 생채기가 없고 뼈째 씹히는 맛이 좋아 일반 멸치와 그 격을 달리한다.
▶ 청산도 멸치
죽방렴 어장은 사천(삼천포)으로 넘어가는 해협에 설치돼 있다. 여행 도중에 누구나 견학하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도록 쉼터와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강태공들은 이곳을 즐겨 찾곤 하는데 양식장에서 흘러나오는 부유물을 쫓는 물고기들 입질이 그만이기 때문이다. 뗏목낚시도 창선도만의 독특한 낚시 방식인데, 창선교 아래가 포인트 자리다. 작은 배를 타고 낚시하는 강태공과 연인들 모습은 그 자체로 이국적이다.
남해도는 그 옛날 외진 섬이었다. 서포 김만중은 노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을 집필했고 55세에 노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노도는 배를 젓는 노를 많이 만드는 섬이란 뜻이다. 남해유배문학관에는 유배의 절망 속에서 쥐어짠 문학 작품과 어명을 받들어 소달구지 타고 압송하는 체험을 4D 입체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그렇게 눈부시게 봄 바다가 열리는 남해도. “너를 보면 눈부셔/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다시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보는”, 아, 이 봄날의 아름다운 남해 쪽빛 바다여.
박상건 한국잡지학회장은 ‘샘이깊은물’ 편집부장과 월간 ‘섬’ 발행인을 지냈고 현재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섬과 등대 이야기를 수년간 써왔으며 단행본도 출간했다. 학자이자 여행가, 작가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