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아름다운 사물뿐 아니라 위대한 정신을 그리는 데도 매력을 느낀다. 보이는 것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서양회화사에서 철학자를 그린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을 그린 대표적인 걸작 두 점을 감상해보자.
▶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캔버스에 유채, 129.5x196.2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신고전주의의 거두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미술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어도 역사책을 즐겨 본 사람이라면 “아, 이 그림!” 하고 쉽게 기억해낼 그림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한 명화다. 분명한 명암 대비와 조각 같은 인물 묘사,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공간 구성 등 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하도록 부추기고 신에 대한 불경을 조장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면 살아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끝내 신념을 지켜 죽음을 택했다. 화가는 그렇게 자신을 버림으로써 대의를 살린 이 위대한 철인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림에서 침상에 앉아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 독배를 잡으려는 이가 바로 소크라테스다. 그는 두려움과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강한 의지와 내적 평화를 드러내며 영혼의 불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위에는 슬픔과 좌절에 빠진 제자들과 노예들의 모습이 보인다. 침상 끝에 묵묵히 앉아 있는 노인은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그는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이렇게 나이가 든 모습이 아니었지만, 서양 철학의 또 다른 위대한 뿌리인 그를 너무 젊게 그릴 수 없어 중후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소크라테스의 무릎에 손을 얹고 있는 이는 크리톤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부유한 친구로,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했으나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크리톤은 존경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눈길로 소크라테스를 바라보고 있다. 저 공간 뒤편 계단으로 나가는 이들 가운데는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도 있다. 비극적인 장면을 보고 충격으로 쓰러질까봐 지인들에 의해 내보내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하기 2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다. 다비드가 소크라테스를 통해 다가올 혁명의 파고와 그 격랑 속에서 지켜야 할 신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그린 그림이다. 당시의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며 좌절된 그 무렵의 개혁 시도들과 왕에게 도전한 명사회(名士會)의 해산, 왕의 감옥에 갇힌 정치범들과 망명객들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권력이 무섭고 억압이 두렵다 해도 굴종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배반하는 것이다. 다비드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듯이 프랑스 시민들이 부당한 권력과 체제의 억압에 목숨을 다해 저항해주기를 바랐다.
▶ 렘브란트, ‘호메로스의 흉상을 어루만지는 아리스토텔레스’
1653, 캔버스에 유채, 143.5x136.5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가 렘브란트는 드라마틱한 빛과 그림자의 표현으로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고전화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걸작 ‘호메로스의 흉상을 어루만지는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빛과 그림자의 멋진 조화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시칠리아의 부유한 귀족 돈 안토니오 루포의 주문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 루포는 렘브란트에게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을 초상화로 그려달라고 했다. 렘브란트는 한 사람의 초상화이면서도 세 사람의 위인이 등장하도록 그림을 구성했다. 그 세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메로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그림에서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그려진 중심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가 어루만지는 흉상이 호메로스, 그리고 그의 금사슬 장식에 매달린 메달의 이미지가 알렉산드로스이다.
인상적인 것은 렘브란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의상을 고대의 것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의 것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 까닭에, 기원전 4세기의 철인은 르네상스의 휴머니스트로 새롭게 부활한 인상을 준다. 서양문명의 골간을 이루며 흘러온 이성과 인본주의의 정신이 고대의 몸과 근대의 의상으로 계속 빛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의 흉상을 어루만지며 냉철한 이성과는 또 다른, 빛나는 감성에 대해 깊이 감복하고 있다. 철인이 시인을 찬미하는, 위대한 정신이 다른 위대한 정신을 찬양하는 순간, 그것은 권력자의 영광을 찬양하는 황금나팔의 팡파르만큼 화려한 외양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영광과 경모의 순간이다. 인류 역사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칠 위대한 가치와 의미를 생산한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 비춰보면 메달로 작게 그려진 알렉산드로스는 역시 위대한 인물의 한 사람이지만, 정신사적 역사의 측면에서는 하위에 위치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로스가 이 ‘정신의 초상’에 그려진 것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빛과 영혼의 마술사’ 렘브란트는 일찍부터 재능을 발휘해 30대에 이미 네덜란드에서 가장 값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한 사람이 됐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가 이처럼 당대 최고의 화가로 출세했음에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세계와 영혼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일반인의 환호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위대성을 누구보다 절절히 인식하게 된 후대의 화가 반 고흐는 그를 일러 “역사가 낳은 최고의 마술사”라고 격찬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미술 담당 기자를 거쳐 학고재 관장을 지냈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내 마음 속의 그림>,<서양화 자신있게 보기>,<이주헌의 아트카페>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