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찾던 단골가게가 문을 닫으면 참 아쉽다. 더는 그곳 상품을 찾을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발길 닿았던 걸음걸음의 추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기분 탓이리라. 때문에 각별한 가게일수록 한 번 더 찾으며 오래가길 바란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변화무쌍한 서울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울시가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한 오래된 가게를 ‘오래가게’로 지정했다. ‘오래가게’는 ‘오래된 가게가 오래가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방, 양장점, 떡집, 서점 등 업종도 다양하다. 일본의 시니세, 유럽의 백년가게처럼 ‘오래가게’ 역시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 또는 서울의 새로운 여행 코스로 삼을 수도 있다. 정겨운 ‘오래가게’ 열두 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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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옹기
용산 해방촌 입구에는 길을 따라 장독이 쭉 늘어서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항아리·도자기·찻잔 등 실생활에 유용한 제품부터 인테리어 소품으로 제격인 수백 종류의 제품이 발 디딜 곳 없이 자리하고 있다. ‘한신옹기’는 1967년 리어카에서 출발했다. 당시 옹기는 생활과 밀접했던 때다. 시간이 흐르며 플라스틱 제품과 다양한 유리 제품이 주방을 차지하고 김치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옹기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 그렇지만 은은하고 우직한 매력을 뿜는 옹기처럼 ‘한신옹기’도 50년째 해방촌을 지키고 있다. 상업 활동과 동시에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곳이다.
주소 용산구 신흥로 7 문의 02-794-3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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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슈퍼
‘개미슈퍼’의 정확한 개업 연도는 확인할 수 없다. 그저 주인과 4대 이상 동네에 산 이웃들의 증언에 기대 1900년대라고 추측할 뿐. 110년은 족히 된 셈이다. 현재 슈퍼 주인도 5대를 기록했다. 골목마다 편의점이 활개를 치는 시대에 이렇게 오래된 슈퍼가 버티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슈퍼는 오랜 기간 지역 터줏대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근에 서울역이 자리해 여관,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 있다 보니 관광 정보, 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로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잡화점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의 고유한 동네 슈퍼 분위기를 느끼고 사진 찍기 위해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주소 용산구 청파로 85가길 31 문의 02-714-3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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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벗서점
‘글벗서점’에 들어서면 책 내음이 몰아친다. 곳곳에 손때 묻은 헌책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방대한 양의 고서와 만화책, 악보집, 미술 잡지는 기본, LP판과 DVD도 판매한다. 영어·일어·중국어로 된 희귀한 책을 다수 보유해 외국인 방문도 잦다. 책장을 빽빽이 채우고도 통로 사이사이에 쌓아올린 책들. 원하는 책을 어떻게 찾나 싶지만 제목만 말하면 가게 주인 머릿속에 저장된 데이터로 자동 검색된다. 이색적인 북카페, 독립책방이 생겨나고 임대료 상승으로 이사도 했지만 1979년 ‘온고당’으로 개업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인의 의지와 열정으로 ‘글벗서점’을 지켜올 수 있었다. 중고 서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계속 찾는다.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주소 마포구 신촌로 48 문의 02-333-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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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떡집
서울 3대 떡집 중 하나로 알려진 ‘경기떡집’은 1958년부터 시작해 ‘환갑’이 됐다. ‘경기떡집’의 하루는 새벽 3시쯤 시작한다. 떡을 만드는 일은 고되지만 떡집 60년 외길을 걸어올 수 있던 건 가족의 힘이 컸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똘똘 뭉쳤기 때문. 아들들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맛을 좌우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키며 품질 좋은 국산 쌀과 잡곡을 고집한다. 신념은 맛에 묻어났고 경기떡집은 입소문을 타고 서울을 대표하는 떡집이 됐다. 가게를 찾으면 구매 전 진열된 떡을 시식할 수 있다. 맛을 보고도 어떤 떡을 고를지 고민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대표 메뉴 ‘이티떡’을 고르면 된다.
주소 마포구 동교로9길 24 문의 02-333-8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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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1978
‘피터팬 1978’이 오래가게에 선정된 게 새삼스럽다. 이미 수많은 방송에서 맛집으로 소개되며 빵순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연희동 주민 중 이곳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 문을 연 지 40년이 됐지만 젊고 감각적인 빵맛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늙지 않는 동화 속 주인공 피터팬처럼 말이다. ‘피터팬 1978’의 분점은 같은 연희동에 있다. 빵맛이 변하면 안 되기 때문에 직영으로 운영 중이란다. 뽀얗고 통통한 모양의 ‘아기궁둥이’는 꼭 맛봐야 할 메뉴다. 쫄깃한 식감에 진한 크림치즈가 가득 들어 있다. 그 외에도 장발장이 훔친 빵, 무화과랑고구마, 오메기떡 등도 놓치면 섭섭하다.
주소 서대문구 증가로 10 문의 02-337-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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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당필방
전통문화거리 인사동에서 1932년부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명신당필방’. 전각과 서예품을 판매한다. 예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인사동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가게에는 다양한 붓과 전각품이 진열돼 있다. 벼루조각가 아버지의 필방을 서예가 아들이 물려받아 그 부인이 전각을 하며 운영하고 있다. 가게 주인이 직접 조각칼로 전각하는 모습은 80년 세월의 ‘명신당필방’ 역사를 고스란히 자아낸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의 도장을 만든 곳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전각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위해 찾는 외국인 방문객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주소 종로구 인사동길 34 문의 02-722-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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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박연
‘금박연’은 금을 얇게 펴 모양을 만들어 천에 붙이는 ‘금박’을 하는 곳이다. 옛 임금이 입던 곤룡포에 금색 용을 붙이던 일을 떠올리면 쉽다. 금박은 한복의 우아함과 품격을 높여주던 일로 왕실에서만 허용되던 전통 공예다. 한복 하나를 작업하는 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이 넘게 걸린다. ‘금박연’은 조선 후기 철종 때부터 자자손손 금박 기술을 5대째 전해 내려오며 현재는 무형문화재 김덕환 선생이 전통을 잇고 있다. 한복집이 거의 사라지는 가운데 ‘금박연’을 찾는 사람도 줄었지만 전통을 끊고 싶지 않은 마음이 160년 넘게 ‘금박연’을 존재케 했다. 지금은 시대에 맞춰 금박 넥타이, 명함함 등을 제작·판매한다.
주소 종로구 북촌로12길 24-12 문의 02-730-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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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참기름집
북촌 계동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소한 냄새가 발길을 잡아당긴다. 노란 간판에 ‘대구참기름집’이라고 쓴 정직한 글씨가 고소함의 근원지다. 가게에 묻은 세월의 흔적이 참 정겹다. 마을마다 하나씩은 꼭 있던 기름집이 대기업의 기성품에 밀려 어느새 속속 자취를 감췄다. 북촌의 참깨 볶는 냄새가 유독 반가운 이유다. 거기에 40년 넘는 깊은 시간의 향이 더해져 고소함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참기름 맛 좀 안다는 국내 소비자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주소 종로구 계동길 67 문의 02-765-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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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용원
‘문화이용원’의 주인은 60년 경력의 베테랑 이발사다. 반세기 넘는 시간동안 묵묵히 혜화동을 지키고 있다 보니 그의 단골손님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사들이 넘친다. 독립선언서 33인 중 한 명인 이갑성 광복회장, 조병화 시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 등. 베테랑 이발사가 처음 가위를 잡은 건 1956년 문화이용원에 발을 들이면서다. ‘문화이용원’은 1960~1970년대 이용원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가게 밖으로 빨강·파랑·하양의 친숙한 이발소 간판이 눈에 띈다. 문을 열면 시간을 건너뛴 모습이 펼쳐진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가 손님의 뒷머리, 수염 등에 크림을 바르고 면도하는 모습이 시대극 한 장면과 맞닥뜨린 것 같다.
주소 종로구 혜화로 7 문의 02-762-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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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수제화
1936년 을지로에 문을 연 ‘송림양화점’이 ‘송림수제화’의 출발이다. 80년 수제화만 고집해왔다. 그렇다고 구두만 취급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골프화, 등산화, 특수화까지 없는 게 없다. 송림수제화의 주인은 아버지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아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발이 있다는 걸 깨닫고 개개인에게 맞는 신발을 만들려 노력했다. 덕분에 정형외과를 무수히 찾아다니며 발을 연구해 ‘장인’이 됐다. 걸음이 편해야 인생도 편한 법. ‘송림수제화’는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만들어 편한 걸음을 제공한다. 이제 20대 아들이 4대 수제화 장인의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주소 중구 수표로 60-1 문의 02-2279-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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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양복점
1916년 개업한 ‘종로양복점’은 100년 역사를 지녔다. 서울 한복판인 종로에 위치한 탓에 다사다난한 현대사와 함께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종로를 주름잡던 굵직한 인사들이 종로양복점을 찾은 것. 종로 멋쟁이 신사라면 꼭 거쳤을 곳이다. 맞춤 양복의 장점은 세상에 하나뿐인 옷, 나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옷이라는 데 있다. 몸에 꼭 맞는 옷은 언제 입어도 편할 수밖에 없다. 맞춤 양복은 기성복과 달리 정성스레 만들어진다. 옷감을 고르고 치수를 재고 가봉을 하는 과정을 거쳐 양복이 손님의 몸에 걸쳐지는 데 약 2주가 소요된다. ‘끊임없이 지극한 정성을 다한다’는 신념은 3대에 걸친 100년 역사를 만들었다.
주소 중구 수표로 45 을지비즈센터 618호 문의 02-733-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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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레코드
그때 그 시절, 음악 좀 듣는다는 청년은 죄다 청계천, 세운상가에 몰렸다. 온갖 장르의 레코드를 구입할 수 있음은 물론 새로운 음악 정보가 오고 가던 곳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LP는 카세트테이프, CD, MP3를 거쳐 스트리밍 서비스로 변화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그 시절 청년들은 여전히 LP를 향한 애정으로 ‘돌레코드’를 찾는다. ‘돌레코드’ 입구에 설치된 전축의 낡은 스피커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색은 바랬지만 좋아하는 가수의 LP를 손에 넣고 ‘후후’ 먼지를 불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LP뿐이 아니다. CD 역시 가게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우고 있어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주소 중구 마장로9길 49-29 문의 02-2235-7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