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이하 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주경기장에서 희망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아시아 장애인 스포츠 최대 축제,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은 이날 개회식을 시작으로 8일간(10월 13일까지)의 열전을 펼쳤다. ‘We are one(우리는 하나)’이라는 개막 주제 아래 아시아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남과 북도 하나가 됐다.
▶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순천만습지로 향하는 길에서 트렌치코트를 맞춰 입은 연인이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C영상미디어
장애인아시안게임은 스포츠로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들 간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4년마다 열리는 국제대회다. 1970년대 초 장애인 재활사업을 하던 일본 나카무라 유타카 박사가 재활 과정 중 스포츠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근 국가에 아시아·태평양장애인 경기연맹 설립을 제안했다. 그 결과 1974년 10월 일본 오이타에서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연맹’이 출범했고 이듬해 제1회 대회가 열렸다. 1989년 다섯 번째 대회까지 희망국이 대회를 개최해오던 중 1994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6회 대회부터 아시아경기대회 개최국가의 도시에서 같이 운영하는 것으로 정착됐다.
올해 장애인아시안게임은 12번째다. 총 43개국 3800여 명의 선수가 18개 종목에서 겨루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17개 종목에 307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목표는 금메달 33개와 은메달 43개, 동메달 49개 등 종합 순위 3위다. 우리나라는 1977년 제2회 호주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이후 2002년 부산 대회, 2014년 인천대회에서 최고 성적인 종합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 1 10월 10일 GBK 농구장에서 열린 B조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에서 한국 조승현이 슛을 하고 있다. ⓒ연?
▶ 2 10월 7일 오전 자카르타 폽키 스포츠 빌딩에서 열린 휠체어 펜싱 플러레 남자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심재훈이 공격을 하고 있다. 3 10월 8일 자카르타 자야 안촐 볼링센터에서 열린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 TPB1 볼링혼성 개인전에서 양현경이 투구하고 있다. ⓒ연합
이번 대회에서는 성적과 더불어 ‘화합’이라는 가치에도 무게가 실렸다. 남북 화합에 장애는 결코 문제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일부 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을 꾸린 데 이어 장애인 국제대회 최초로 북한과 개회식에 공동 입장했다. 공동기수인 휠체어 펜싱선수 김선미가 북한 수영선수 심승혁이 탄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모습은 많은 사람을 뭉클하게 했다. 김선미는 다리에 장애가 있어 의족을 써야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2012 런던 패럴림픽 휠체어펜싱 종목에 출전한 여전사로 유명하다. 심승혁은 다리 쪽에 절단 장애를 안고 있어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남다른 수영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남북이 하나 된 ‘코리아’는 참가국 중 14번째 순서로 입장했는데, 그 순간 관중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성일 국제패럴림픽위원회 집행위원, 안광일 주인도네시아 북한대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단을 향해 힘차게 손짓했다.
장애인아시안게임 첫 코리아하우스에서도 남과 북이 함께했다. 자카르타 술탄호텔에 위치한 이곳은 남북 체육교류의 총체적 허브 역할을 맡았다. 공동 행사 개최, 선수단 휴식 공간, 한식 지원 공간 등으로 운영됐다.
단일팀은 ‘같이 뛴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탁구 남자 단체전과 수영 남자 혼계영 종목의 단일팀은 앞서 저마다 선수촌에 입촌한 뒤, 현지 경기장에서 공식 합동훈련으로 호흡을 맞췄다. 다소 부족했을 법한 훈련이었음에도 수영 단일팀은 8일 남자 계영 400m 34P 결선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장애인 체육 사상 첫 공동 메달이다. 남북 선수 두 명은 각각 시상대에 올라 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은 장애인 스포츠대회지만, 남과 북이 또 한 번 보여준 진한 우정은 이번 대회의 명장면으로 고스란히 기록됐다.
우리 선수단의 활약도 눈부셨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탠덤사이클 김지연이 대표적이다. 올해 52세인 김지연은 26세 때 중심성 망막증으로 오른쪽 시력을 잃었지만 2006년 장애인 스포츠에 입문, 연일 최고 기량을 뽐냈다.
탁구 종목에서는 우리 선수끼리 결승에서 맞붙으며 메달이 쏟아졌다. 박진철은 남자단TT2 등급에서 금메달을, 김영건은 남자단식 TT4 등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볼링의 김정훈은 장애인아시안게임 볼링 개인전 3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0년 광저우 게임 2관왕, 2014년 인천 게임 3관왕에 등극했던 김정훈은 이번 대회까지 연이은 금자탑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