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요동을 치면서 변하고 있다. 누구는 이를 ‘롤러코스트’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한 편의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긴장과 감동 그리고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에만 해도 한반도는 전쟁의 위협에 떨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이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 12호’ 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며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적 군사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소위 코피 전략을 거론했다.
그 어느 때보다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컸던 한반도에 대화의 기류가 싹트기 시작했다. 북한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용의를 표명하고 이를 위한 남북 당국의 대화 필요성을 제안하면서부터다. 이후 남북과 북미 사이에 특사가 교환됐고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전쟁 직전의 상황이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을 위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후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남북관계의 발전과 전쟁 위협의 해소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비핵화를 약속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다. 그 순간을 지켜본 우리는 안도감과 희망으로 충만한 감동을 느꼈다. 우리 국민의 80%가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대북 관련 회사들의 주식이 상한가를 기록한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북경협은 평화·번영 위한 투자다
판문점 선언은 우선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통해서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협을 해소해나감으로써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남과 북이 관계 발전을 통해 함께 잘살 수 있는 방안 모색을 최우선으로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신뢰 구축’이며 이를 위해 교류와 협력을 통한 경제·사회적 일상을 공유하는 작업을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합의한 것이다.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하게 보장하고, 남북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를 우선적으로 연결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을 남북 당국의 일차적인 과제로 제시한 점도 남북의 일상적인 경제활동 연계를 강조한 것이라고 하겠다. 남북이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관계를 구축하게 되면 극단적인 대결이나 충돌을 피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걸까?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때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호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남북 사이의 신뢰 구축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기술적으로는 당국·기업·민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진행될 수 있다. 당국 차원에서 진행되는 신뢰 구축 작업은 상대방의 진정성을 믿어주는 데에서 출발해 소극적으로는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상호의존적인 경제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이 상호의존적인 경제관계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은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본격적인 경제협력을 위해서라도 이를 개선하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업 차원에서 진행되는 신뢰 구축 작업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상생의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최근 북한경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중에서 기업들의 자율성 확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북한 기업 대부분은 시장 기능을 활용하고 있으며, 확대되고 있는 시장 공간을 통해 경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효율성 제고와 남북 경제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북한의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은 북한 기업들의 시장 활용 능력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구축될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는 비공식적인 신뢰 구축 작업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취약한 생활환경과 영양 부족 및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을 온전하게 미래 통일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통일의 출발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마음의 통합을 이루지 못하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국방의무·국방비 등 부담에서 벗어나야
독일 통일의 사례를 들어 통일비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흡수통일로 북한에 대규모 복지비용이 지급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통일비용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분단 상태에서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비용을 더 걱정해야 한다. 2018년 우리의 국방 예산은 43조 1500억 원으로 국가 총예산의 10%를 초과하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이를 상당 수준으로 절약할 수 있으며, 우리 젊은이들이 병역의 짐을 덜 수 있다. 또한 남북 분단으로 인한 안보적 불안으로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국제 시세보다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없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 땅이 열리게 되면 물품과 인력 수송을 위해 육로를 이용할 수 있어 운송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남북 경제협력은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면서 북한 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 건설이다. 이를 위해 북한의 열악한 사회간접자본(SOC)을 개선하는 사업부터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이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는 바탕을 구축해나가자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투자이다.
남북 당국은 지난 6월 26일 남북 철도를 연결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논의했다. 장차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중국 대륙과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날에 대한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통일열차가 달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시동을 걸고 있는 ‘한반도 통일열차’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성원했으면 좋겠다.
임강택│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