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평창으로 향하고 있다. 동계패럴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리는 평창동계패럴림픽에 49개 국가에서 선수 570명이 80개의 금메달을 놓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는 중이다. 패럴림픽 종목은 크게 알파인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스키, 아이스하키, 스노보드, 휠체어컬링 등 6개이지만 입식, 좌식, 시각장애인 부문 등 세부 종목이 따로 나뉘어 있어 메달 수가 240개에 달한다. 장애인 알파인스키를 예로 들면 기본적으로 활강·회전·대회전·슈퍼대회전·슈퍼복합 등 일반 알파인스키와 같은 세부 종목이 있다. 여기에 남녀 종목, 또 선수 장애 유형에 따라 지체장애, 시각장애(B1~B3) 부문으로 나눠진다. 지체장애는 다시 입식(LW2~LW9), 좌식(LW10~LW12)으로 세분화된다. 스포츠 장애등급에 따른 가산점을 최종 기록에 반영해 경기 결과를 산출한다.
평창패럴림픽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 경기는 스노보드다. 평창에서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노보드는 크게 스노보드 크로스, 뱅크드 슬라롬으로 나눠 경기등급에 따라 총 12개 세부 종목의 경기가 펼쳐진다. 스노보드 크로스는 뱅크, 롤러, 스파인, 점프, 우탱 등 다양한 지형지물로 구성된 코스에서 열린다. 선수가 정해진 구간을 주행할 때 기록을 측정해 가장 빠르게 통과한 선수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다. 뱅크드 슬라롬은 기문 코스를 회전하며 내려오는 경기다.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종목의 평행대회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스노보드 평창에서 정식 종목으로 첫선
스노보드에 출전하는 선수도 시선을 끈다. 미국 선수단 중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의 클로이 김의 뒤를 이어 브레나 허커비(22)가 평창패럴림픽을 빛낼 최고의 여자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허커비는 스노보드 월드컵 파이널 대회에서 두 차례나 금메달을 딴 실력자다. 월드컵에서 성적이 훌륭하다 보니 이번 패럴림픽에서도 금메달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허커비는 어릴 적 꿈이 체조선수였다. 그러나 열네 살 때 골육종에 걸렸고 의사로부터 한쪽 다리를 잘라내야 살 수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다리를 절단하고 절망에 빠진 허커비는 새로 정붙일 운동으로 스노보드를 선택했다. 의족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개의치 않고 스노보드 기술을 익히는 데만 몰두했다. 허커비는 열심히 스노보드 연습에 매진한 끝에 지난 2015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시작으로 장애인 스노보드 종목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허커비는 “평창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따서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2014 소치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도 눈여겨봐야 한다. 스노보드는 평창에서 정식 종목 채택을 앞두고 소치에서 시범종목으로 경기가 치러졌다. 당시 패럴림픽 챔피언에 등극한 미국의 에번 스트롱(32)은 소치에서 누렸던 영광을 평창까지 이어가겠다는 남다른 각오로 패럴림픽에 출사표를 던졌다. 스트롱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술 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사고를 겪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스노보드에 도전해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낼 정도의 실력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스트롱은 “평창에서 스노보드 2연패를 달성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고 싶다”며 금메달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 스노보드 대표팀의 최석민 ⓒ연합
평창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우리 스노보드 대표 선수는 총 네 명이다. 그중 김윤호(35)가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김윤호는 지난 2016년부터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해 2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패럴림픽 네 번 출전 알파인스키 한상민
가장 많은 메달이 걸려 있는 알파인스키도 눈길을 끈다. 남녀 각각 활강·회전·대회전·슈퍼대회전·슈퍼복합 등 세부 종목에 입식, 좌식, 시각 부문으로 나뉘어 총 30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시각부문에 출전하는 선수는 경로를 안내해주는 가이드와 함께 출발해 경기를 펼친다. 알파인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유럽에서 하지 절단 장애인들이 목발을 이용해 스키를 타던 것이 시작이 됐다. 좌식부문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모노스키라는 특수제작된 스키를 사용한다.
▶ 1 암 투병 중에도 평창패럴림픽에 출전한 네덜란드의 비비안 멘텔 - 스피 ⓒ연합
2 알파인스키 대표팀의 한상민 ⓒ연합
알파인스키에서 우리 대표팀은 양재림(29), 황민규(22), 이치원(28), 한상민(29) 등 총 네 명이 출전한다. 우리나라 장애인 알파인스키의 역사라고 불리는 한상민은 평창이 벌써 네 번째 패럴림픽이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패럴림픽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우리나라에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을 안겨준 선수다. 한상민은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스키를 타기 시작해 태극마크를 단 이후 2002 솔트레이크시티, 2006 토리노, 2010 밴쿠버패럴림픽에 잇달아 출전했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누린 영광을 토리노에서도 이어가려 했지만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넘어지는 바람에 아쉽게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밴쿠버에서는 날씨 적응에 실패했고 소치 때는 휠체어농구 선수로 잠시 전향해 활동하느라 패럴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다. 한상민은 알파인스키 종목 중 대회전과 슈퍼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첫 패럴림픽이 열리니까 행운이 따를 것이라 생각한다”며 “많은 응원을 보내주면 좋은 기운을 받아 메달을 딸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양재림도 평창에서 활약이 기대된다. 지난 2014 소치패럴림픽에서 아쉽게 4위를 기록해 메달을 따지 못한 양재림은 알파인스키 전 종목 출전권을 따내 메달을 향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최근 출전한 경기에서도 좋은 기량을 보였다. 양재림은 소치 이후 지난 2017년 미국 캐스퍼에서 열린 월드컵 BT middle 1위, BT 스프린트 1위, 2017년 제14회 전국장애인동계체전 SL 1위, GS 1위를 기록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평창에서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스하키팀, 노르딕스키 신의현 메달 가능성 높아
▶ 아이스하키 대표팀 정승환(오른쪽)과 이주승 ⓒ연합
역대급 기량을 뽐내고 있는 아이스하키팀의 활약도 기대된다. 우리 대표팀은 현재 세계 랭킹 3위다. 빠르고 공격력이 강해 ‘빙판 위의 메시’라 불리는 정승환(32)을 비롯해 쟁쟁한 선수들이 팀워크로 뭉친 강팀이다. 대표팀은 지난 1월 13일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2018 국제장애인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노르웨이를 6 대 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해 평창패럴림픽 모의고사를 완벽하게 치렀다.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일본, 체코, 노르웨이 등을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해 패럴림픽 메달권 진입에 청신호가 켜졌다. 우리 대표팀은 지난 3월 10일 일본을 상대로 첫 경기를 펼쳤다. 첫 경기에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대표팀은 포디움에 서는 것을 목표로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갈 계획이다.
크로스컨트리에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많은 나이에 패럴림픽에 도전하는 이도연(46)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도연은 최고령 선수라는 기록 외에도 우리나라 최초로 동·하계 패럴림픽에 도전하는 기록을 남겼다. 재활운동으로 육상을 시작한 이도연은 지난 2012년 열린 장애인전국체전에서 창, 원반, 포환던지기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13년에는 핸드사이클에 입문해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사이클 부문 금메달 2관왕 등 금메달만 7개를 획득해 제26회 대한민국여성체육대상 장애인체육상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 이탈리아에서 열린 장애인도로월드컵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을 하기도 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거머쥐는 등 전적이 화려하다. 이도연은 자신의 이름을 알린 핸드사이클 대신 스키로 눈을 돌렸다. 그는 평창에서 크로스컨트리 좌식 장거리 12km, 스프린트 바이애슬론 좌식 스프린트 6km, 중거리 10km, 개인 12.5km에 출전한다.
▶ 우리나라 장애인 노르딕스키의 간판 신의현 ⓒ연합
우리나라 출전 선수 중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는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에 출전하는 신의현(38)이다. 신의현은 두 개의 종목에 출전하는 것 같지만 세부 종목을 나눠보면 총 6개 종목의 출전권을 따냈다. 바이애슬론은 스프린트 7.5km, 중거리 12.5km, 장거리 15km 종목에 출전하고 크로스컨트리는 스프린트 1km, 중거리 7.5km, 장거리 15km에 출전한다. 주행거리만 총 61km에 달해 올림픽에서 총 37km를 달려 화제가 된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승훈 선수를 훨씬 능가하는 경기를 치러야 한다.
신의현은 지난 2월 핀란드 부오카티에서 열린 세계장애인노르딕스키월드컵 바이애슬론 7.5km 남자 좌식부문에서 우승했고 지난 1월에는 바이애슬론 12.5km 남자 좌식부문에서 은메달을 땄다.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두 참가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더욱 값진 결과였다. 신의현이 평창에서 평소 같은 기량만 보여준다면 금메달을 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약 그가 출전한 경기 중 하나라도 금메달을 딴다면 우리나라는 동계패럴림픽 참가 이래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금메달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신의현의 의지도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해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지 신의현의 경기를 지켜보자.
30년 만에 안방에 온 ‘황연대 성취상’
평창에서 패럴림픽에 처음 출전하는 국가가 있다. 조지아, 타지키스탄 등을 포함해 북한도 패럴림픽 출전국에 이름을 올렸다. 북한은 노르딕스키의 마유철과 김정현이 IPC로부터 특별출전권을 받아 평창올림픽에서 보여줬던 평화와 화합을 이어간다.
패럴림픽은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패럴림픽이 올림픽과 동반 개최된 것이 1988 서울올림픽이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서 패럴림픽이 같이 진행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2001년 ‘하나의 도시 하나의 신청’이라는 협약을 맺고 올림픽 개최 도시가 패럴림픽을 함께 여는 것이 공식화됐다. 서울패럴림픽에서는 아름다운 도전에 나선 남녀 선수 한 명씩을 선정해 시상하는 전통도 생겼다. 이 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의사인 황연대 박사의 이름을 따 ‘황연대 성취상’이라 불린다. 패럴림픽의 최우수선수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황 박사는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8년 ‘오늘의 여성상’을 수상했다. 상금을 서울패럴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전액 기부하면서 황 박사의 이름을 딴 상이 생겼다.
패럴림픽은 사연 없는 선수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마다의 드라마를 지닌 선수가 많다.
지난 2014 소치패럴림픽 스노보드 챔피언인 네덜란드의 비비안 멘텔-스피는 암 투병 중이다. 원래 스노보드 선수였던 비비안 멘텔-스피는 정강이뼈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면서 2002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하지만 장애를 딛고 꾸준히 스노보드 연습에 매진해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낸 멘텔-스피는 2014 소치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올림피언의 꿈을 이뤘다. 평창에서 대회 2연패의 꿈에 부풀어 있던 멘텔-스피는 지난 2017년 7월 암이 재발하면서 또다시 시련을 맞았다. 목, 식도, 늑골 등 곳곳에 암세포가 퍼졌다. 멘텔-스피는 곧바로 훈련을 중단하고 방사능 치료에 들어갔다. 목도 뻣뻣하고 여전히 통증이 있지만 그는 패럴림픽 출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힘든 치료 과정을 버틴 멘텔-스피는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매우 강인해진 느낌”이라며 “평창에서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출전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며 출전 소감을 밝혔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