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동방경제포럼 참석 계기에 이루어진 블라디보스톡 한·러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점증하는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대북 제재강화를 위한 국제공조가 매우 급박한 양국 간 현안이었다. 하지만, 양국 간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 강화방안 모색 또한 그에 못지않게 이번 정상회담의 매우 중요한 의제였다. 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에서의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의 ‘신북방경제외교’의 구체적 비전과 실천의지를 표명하고, 이에 대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적극적 지지를 확보하였다는 점은 문 대통령이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얻은 매우 의미 있는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의 신북방외교 정책과 푸틴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신동방정책’의 접점을 발견하고 양국 정상 간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향후 우리의 극동 시베리아 경제개발 참여를 위한 중요한 외교적 토대를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신동방정책’의 주요 정책적 목표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과 이를 통한 아태지역으로의 경제적 진출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활성화함으로써 아태지역의 경제통합을 주요한 정책적 목표로 추진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기반으로 아태지역에서 견고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자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것을 대외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러시아 방문을 통해 제시된 우리의 신북방경제외교 전략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극동개발 정책에 부합하는 면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번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그동안 추상적 구상에 머물러 있던 신북방외교 구상을 러시아와의 외교협력 비전으로 구체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유라시아경제공동체 FTA 추진, 9개 경제 분야에서의 실질협력 강화방안 등 구체적 실천 전략도 제시하였다. 아울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리의 극동 시베리아 경제개발에 대한 참여의지를 적극 지지하고 향후 다양한 극동개발 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합의하는 성과를 도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이 극동개발을 통한 경제적 유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단순히 역내 국가들의 공동번영 추구라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안보적 차원에서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우 큰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신북방정책의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즉,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신북방경제협력과 남북경협을 추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평화롭게 나오도록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을 축으로 주로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만 이루어지고, 북한을 포함한 몽골,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지역 등은 소외되어 왔다. 이는 동아시아 경제협력이 지리적으로 매우 편중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경제협력이 지리적으로 편중된 것은 한반도 분단이라는 역내 안보딜레마에 기인한다.
한반도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물류 인프라의 단절성은 매우 큰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철도망 연결 사업 등,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은 북한 리스크로 인해 현재로서는 추진가능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폐쇄적 경제체제로 인해 동북아에서 경제적으로 고립된 하나의 섬과 같은 존재이며, 북한의 폐쇄적 고립상황은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지연시키는 최대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도발에 몰두하는 북한이라는 장애요인에도 불구하고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통한 한국과 러시아 간의 경제협력의 잠재력은 매우 크며, 우리의 극동개발 참여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한·러 간 조선해운 협력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 1위의 선박건조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 조선업은 새롭게 열리는 북극항로를 활용하여 풍부한 천연가스를 수출하려는 러시아에 쇄빙 기능을 갖춘 LNG 운반선을 공급함으로써 한·러 간 상호 윈윈(win-win)의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중심으로 다양한 한·러 양자 경제협력 사업들이 향후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이는 역내 경제협력에서 소외되어 있는 북한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러 간 양자 경제협력을 우선적 추진하여 가시적 성과를 이룬다면 이는 북한의 경제적 참여유인을 강화함으로써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남·북·러 3각 협력도 궁극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극동지역 개발을 매개로 한 경제협력의 강화는 궁극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복귀하도록 하는 ‘근원적 해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방러를 계기로 우리정부의 신북방정책의 추진을 위한 실질 경제협력 방안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이에 대한 양국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우선, 이번 한·러 정상회담에서 추진하기로 합의한 한-유라시아경제연합(EAEU) FTA는 양국 간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2015년 1월 출범한 유라시아경제연합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경제 연합이다.
이들 유라시아 경제연합 회원국들은 역내 무관세 및 역외국 통합관세 적용, 서비스 및 자본의 역내 자유로운 이동 허용, 동일한 거시경제정책 수립 등을 통해 2025년까지 완전한 경제 공동체로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유라시아 경제공동체의 전체 인구는 1억 7천 3백만이며, GDP 규모는 2014년 기준 2조 3천 7백억 달러로서, 유라시아 경제연합 회원국들은 천연가스와 석유 등 막대한 지하자원과 철도 등 교통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매우 큰 경제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수교 30년을 맞는 2020년까지 한·러 간 교역액을 300억불로, 인적 교류는 연간 100만 명 이상으로 만들기 위한 경제교류 사업을 추진하기로 양국 간 합의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신북방경제외교의 실천 방안으로 제시한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일자리, 농업, 수산 분야에서의 협력방안, 즉 9개 브릿지(9-bridge)를 통한 동시다발적인 실질경제 협력 추진 방안도 의미가 있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제안은 이번 정상회담 계기로 개최된 한·러 경제공동위에서 대부분 수용되어 향후 양국 간 보다 구체적 실천방안이 모색될 전망이다. 그동안 중단되어 있던 TKR-TSR 철도, 가스관 및 전력망 연결 등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에 대한 협의 채널을 재개하고 공동연구를 수행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우선은 이 사업들에 대한 한·러 양자 협력을 진전시키고,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참여를 유도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향후 3년 간 20억불 규모의 극동 금융 이니셔티브를 신설하여 극동지역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는 우리 기업을 지원하기로 합의하였고, 동북아 지역 전체의 전력망을 연계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위해 우선 한·러 전력망 사업에 대한 사전 공동연구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번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신북방정책은 구상의 단계를 넘어 본격적 추진단계로 진입하였다. 향후 러시아와의 신북방경제협력을 통해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을 핵·미사일 도발과 폐쇄경제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여 새로운 ‘한반도 경제지도’를 그려나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