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월 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이 수소탄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북핵 문제는 차원이 달라졌다. 이번 핵실험은 북핵 문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적 국면을 조성했다.
첫째, 북한이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거부하고 핵무력 완성을 위한 전략적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한국과 미국은 추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자제하면 대화할 수 있다고 하면서 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합동군사연습을 축소했다. 하지만 북한이 8월 29일 ‘화성-12’형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IRBM)을 발사한 데 이어 수소탄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대화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괌 포위 사격’을 공언했던 북한이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면서 정세가 완화되는 듯했지만, 핵·미사일 고도화와 관련한 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북핵 위기가 다시 부각됐다. 앞으로도 김정은 정권이 ‘국가핵무력 완성의 완결 단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가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아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다.
둘째, 이번 핵실험이 수소탄 실험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북한은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자탄에 이어 그 위력이 원자탄의 수십 배인 수소탄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가공할 만한 위력의 핵무기를 보유할 시기가 멀지 않게 됐다. 김정은 정권은 경제·핵 병진노선을 표방하고 양탄일성(원자탄과 수소탄, 인공위성)을 갖추고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 모델을 추종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도화되는 역설이 형성되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핵무력 완성을 공언하고 있다. 북한 핵능력 고도화를 막는 단계적·포괄적 접근을 서둘지 않으면 조만간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셋째, 북한이 이번 핵실험을 “대륙간탄도로켓 장착용 수소탄 시험”이라고 밝혀 소형화된 수소탄을 ICBM에 장착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날이 가까워졌음을 과시했다. 미국과의 전쟁을 경험한 북한은 “국가 방위를 위한 강력한 전쟁 억제력은 필수불가결한 전략적 선택이며 그 무엇으로도 되돌려 세울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전략자산”이라는 김정은의 말에 따라 병진의 기치를 내걸고 끝까지 자위적 핵무력 강화의 길로 간다고 주장했다. 최근 북한은 전쟁과 제재 위협은 핵무기 보유 명분만 더해주고(외무성 대변인 담화, 7월 30일) “북핵 폐기 야망은 언제라도 실현될 수 없는 허황한 망상이라는 것을 똑똑히 깨달아야 할 것”(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 성명, 8월 2일)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의 생각은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완성한 후 이를 억제력으로 삼아 높아진 ‘전략적 지위’에 기초해 평화협상을 진행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지금까지 외국 정상들과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과거 전통적 우방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어느 나라 정상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을 가진 나라들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핵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0년대 초부터 북핵 문제는 한반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였다. 북한이 핵무력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핵·미사일 고도화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어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4월 위기설’, ‘8월 위기설’에 이어 6차 핵실험에 따른 북핵 위기가 다시 본격화했다. 지금까지의 김정은의 행보로 볼 때 미국과 한국이 생각하는 핵 폐기나 동결을 목표로 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제재와 대화는 병행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무엇보다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완성을 눈앞에 둔 북한이 핵 폐기나 동결을 전제로 한 대화에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 9월 7일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국방부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자안보회의인 서울안보대화(SDD)가 열리고 있다. ⓒ연합
지난 7월 4일 화성-14형 대륙간탄도로켓 1차 시험 발사 이후 북한은 “국가핵무력 완성의 최종 관문을 통과한 특대사변이 된다”고 선포하고 ‘7·4혁명’으로 규정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전략적 책임으로 바꾸고 최대의 압박, 평화적 압박을 주장하지만, 북한은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 등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대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 야망을 버리지 않고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핵무기를 탐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서두르고 있어 미국도 이를 심각하게 임박한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모든 선택지 중에 군사적 옵션의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데는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완성은 사실상 금지선(red line)을 넘는 것이다. 미국 정보당국으로부터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성공을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란 말과 함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북한 핵미사일이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위기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까지만 해도 미국은 북한 핵·미사일 개발을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보고 ‘전략적 인내’ 정책을 펴면서 대중국 전략으로 활용해왔다. 이제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는 미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위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북한 핵무력 완성을 저지해야 할 결정적 시기로 접어들었다. 북·미 양자 간 치킨게임이 자칫 전쟁으로 비화할지도 모르는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직 평화’를 강조하는 것도 전쟁 방지를 위한 상황 관리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대화와 담판’을 강조하며 북한과 미국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언행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지금의 한반도 정세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인식 아래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추도사에서도 “평화를 지키는 안보를 넘어 평화를 만드는 안보로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 번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를 지키는(peace keeping) 안보’를 넘어 ‘평화를 만드는(peace making) 안보’를 강조한 것은 전통적인 소극적 안보 개념을 뛰어넘어 적극적 안보 개념을 도입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안보 우려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쟁 반대라는 소극적 평화 개념을 넘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적극적 평화 개념을 실현하려면 임계점에 도달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