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글을 쓰면 완성’이라 생각했다. 길 위에 있으면 글이 떠올랐다. 아침 버스를 출발하면서 문장이 하나 떠오르면, 그날 운행을 마칠 즈음엔 글 하나가 마무리되었다. 격일제 근무를 하는 동안은 하루 열여덟 시간을 버스에 있어야 했다. 새벽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운행하고 다음 날은 쉬는 식이었다. 오후 8시가 되면 체력에 임계점이 찾아왔다. 늦은 밤 버스에 탄 이들은 피로한 인생을 사는 이들이었고, 그들이 탄 버스 역시 과로사회의 최전방을 달리고 있다. 동트지 않은 새벽에 라이트를 켜고 운행을 시작해 어둑한 밤길에 버스를 몰아 종점에 들어가면 초주검이 되었다. ‘친절’, ‘미소’ 등의 캠페인은 녹아내리는 육신 앞에서 구호일 뿐이었다.
1일 2교대 시범근무로 바뀐 뒤로는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 않아도 입가가 가벼웠다. 그전부터 이미 일주일에 두 편씩 꾸준히 글을 써왔다. 몸이 살만 해지자 글도 순해졌다. 그렇게 모인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완성된 책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허혁 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길의 글이고, 글의 길이다.
▶ 허혁 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의 표지와 본문 내용 ⓒ수오서재
허혁 씨는 올해 쉰둘이다. 마흔다섯 살 때부터 대형버스 운전을 했다. 관광버스 운전을 2년 했고, 시내버스로 갈아탄 지는 5년이 됐다.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자랐다. 큰아이를 낳고는 한자리에서 스무 해 가까이 가구점을 했다. 가구점이 문을 연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한 채 네모난 가구들에 갇혀 빚을 갚았다. 가구점 문을 닫고 버스를 모니, 다른 건 몰라도 멀리 나갈 수 있어 좋았다. 정해진 길을 성실히 왕복하기만 하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도 좋았다.
▶ 허혁 씨가 자신이 운행하는 버스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조선닷컴
작가보다 기사라고 불러주세요
“가구점을 할 때는 글을 쓰지 못했어요. 빚을 갚아야 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대신 책을 많이 읽었어요. 가구점의 일은 기다리는 시간이 많거든요. 손님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었지요. 어떤 책은 6개월 걸쳐 읽고, 어떤 책은 2년동안 읽었어요. 책이 마음에 새겨져서 육화(肉化)가 될 때까지 읽었어요. 인문 서적을 읽다가 자연과학으로 넘어갔어요. 그 시절 책은 저에게 ‘구원’이었습니다.”
쌓여진 문장들은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글이 됐다. 승객이 버스기사를 선택할 수 없듯 기사도 승객을 선택할 수 없다. 승객과 기사의 연은 길에서 만들어진다. 버스를 운행하는 이들은 때로 버스의 일부처럼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그림자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자리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그야말로 투명하다.
“버스에서는 굳이 자신의 마음을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마음에 분이 있거나 화가 있는 분들은 대번에 티가 나요.”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버스 기사나 택시 운전자를 폭행해 검거된 사람은 9251명으로 하루 평균 8명꼴이다. 이들에 대한 폭행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단순 폭행보다 무거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엄벌에 처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구속 비율은 1%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기사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화려한 선글라스나 고글, 마스크 그리고 무표정은 햇빛과 먼지 등을 가리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만만히 보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책을 내고 난 뒤에 가장 보람 있는 말이 ‘버스 기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저뿐 아니라 저마다 생활 반경에서 이용하는 버스 기사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죠.”
바깥에서 보는 버스는 평화로운 여행 중이지만, 버스 안은 항상 아수라장이다. 기사는 운전원이면서 승무원인 동시에 청소원도 돼야 한다. 언제 누가 음료를 쏟아 버스 안을 어지럽힐지, 누가 내릴 차례를 잊고 벨을 뒤늦게 눌러 발을 동동 구를지에 대비해야 하고, 횡단보도에서 버스를 타겠다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줄지 고민하는 동안에 문을 열면 뒤에 따라 들어오는 차나 오토바이는 없는지 주시해야 한다.
“원래 나쁜 기사는 없고 현재 그 기사의 여건과 상태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잘하고 싶지 일부러 못하고 싶은 기사는 없다. (…) 짜증이 계속되면 관자놀이가 땡땡해지고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가면서 뒷목이 당기기 시작한다. (…) 그러나 나쁜 상태를 좋은 상태로 즉각 돌리기가 어려웠다. 내 신경증이 뿌리 깊은 데다 장시간 운전을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다.”(44~45쪽)
운전 경력 3년이 지나면서 일에 익숙해졌다. 화장실은 종점에서 몰아 갈 수 있도록 했고, 쉬는 날이면 축구를 하면서 체력을 길렀다. 무엇보다 꾸준한 글쓰기는 그를 ‘착한’ 기사로 만들었다. 안팎으로 동요하던 마음이 훨씬 순해졌다. 여기에는 구조의 변화도 영향이 있었다.
“격일제 근무에서 1일 2교대 근무로 바뀌면서 일상이 달라졌어요. 퇴근하고 가족과 함께 ‘무한리필 삼겹살’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전에는 퇴근도 늦었지만 쉬는 날에는 피로를 풀면서 또 18시간 근무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교대 근무로 바뀌면서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됐죠.”
▶ 전주 전일여객에서 근무하는 버스기사 허혁 씨 ⓒ유슬기
버스 기사가 늘어나면 승객이 안전해집니다
바뀐 건 그뿐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허혁 씨 가족 네 사람 모두 삶의 질이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최저임금 가족”(36쪽)이라 부른다. 딸은 버스를 타고 가 정류장 앞 카페에서 일한다. 가끔 아빠가 모는 버스를 타기도 한다. 딸이 받는 시급은 6000원대였는데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7530원을 받게 됐다.
아내는 전주에서 한옥마을 문화해설사를 하고 있는데 하루 일곱 시간에 5만 원을 받았다. 점심값은 따로 주지 않았다. 아들은 수능 직전까지 주말 저녁마다 고깃집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2018년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딸은 한 달 수입이 20만 원가량 늘었다. 음악 한다고 서울 셋방살이를 하며 지내는 아들이 하루 세 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는 게 아빠의 바람이다.
“단축 근무를 하면서 저는 버스 일이 더 좋아졌어요. 가끔 딸과 함께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제게는 행복이에요. 이전에는 누려보지 못했던 시간이죠.”
버스 기사는 자신뿐 아니라 승객의 생명을 안고 달린다. 그가 도로에서 만나는 숱한 생명들도 함께 책임진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버스의 대형 교통사고를 보면 대부분이 졸음운전이었다. 사고를 낸 기사 탓만 하기엔 이들을 둘러싼 노동 조건이 가혹하다. 허혁 씨는 이를 두고 “시한폭탄이 달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단축 근무를 시행하면 버스 운전자가 부족해져 ‘버스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축 근무 연착륙을 위해서라도 탄력 근무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올해 7월부터 버스 운전자가 1만 3000명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버스 운전사가 부족하다면 양성하면 되지 않을까요?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들이 정말 많습니다. 운전기사는 노동환경만 개선된다면 정말 좋은 일자리입니다. 현재의 노동 조건에서는 젊은이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버스 안전은 점점 더 악화됩니다. 전국의 기사들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시내버스청’ 같은 제도를 만들어 새로운 기사들을 육성해 기사를 채용하면 승객의 안전도 보장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공급돼 실업률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전주 시내 굽이굽이를 운전하는 버스 기사 허혁 씨는 버스의 안과 밖뿐 아니라 버스의 미래도 내다본다. 그의 책은 제도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증언이다. 미래를 바꿀 정책은 책상 위가 아닌 도로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허혁 기사가 말하는 윤리적 버스 이용법
? 승차할 때는 승강장 인도 밑으로 내려오지 말고,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버스에 달려들지 않는다.
? 버스가 막 출발하는데 뛰어와 타려는 경우 버스가 그냥 가버려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 출발한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이미 탄 승객과 따라오는 버스가 위험해진다.
? 벨은 되도록 빨리 누르고, 벨을 잘못 누른 경우 기사에게 말해준다.
? 쓰레기는 버스 안에 버리지 말고, 혹시 버리려거든 잘 보이는데 둔다. 숨겨둔 쓰레기를 찾는 게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 젊은 사람은 노약자가 탄 뒤 맨 나중에 탄다. 마지막 사람이 오르는 동안, 어르신들이 자리 잡을 시간을 벌 수 있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