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의 대들보로 성장한 박지수
너무 기쁘면 눈물도 안 나는 법인가. 무려 13년 만에 맛보는 감격이었지만 몇몇 선수들이 살짝 눈물을 비쳤을 뿐 울음보다는 웃음이 가득했다. 선수들은 “우승이 너무 생소해서 그렇다. 실감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3월 3일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 여자프로농구에서 KB(국민은행)가 2006년 여름리그(당시에는 여름리그와 겨울리그로 열리다가 2007년부터 통합 단일리그로 전환) 이후 13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다. 2006년 7월 5일 이후 무려 4625일 만의 감격이다. 13년 전 우승 멤버는 김수연(33)이 유일할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우리은행 선수들이 2018년 3월 21일, 2017-2018 시즌 챔피언에 오른 뒤 위성우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한국여자농구연맹
신한, 꼴찌에서 우승 ‘6개월 만의 기적’
여자프로농구는 2007년부터 신한은행이, 2013년부터 우리은행이 각각 6년 연속 정상에 오르며 12년간 특정 팀 독주 체제가 이어졌다. 만약 이번 시즌 국민은행이 챔피언결정전마저 제패한다면 ‘6년 주기 우승’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6년 주기 우승의 첫 주자는 신한은행이었다. 2004년 현대 여자농구단을 인수해 2005년 겨울리그에 처음 참여한 뒤 빠르게 명문 구단으로 성장했다.
2005년 겨울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6개월 뒤인 여름리그에서 창단 1년 만에 우승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2007년 겨울리그를 시작으로 6년 연속 정상에 오르며 ‘레알 신한’이라는 기분 좋은 별칭까지 얻었다. 당시 신한은행은 ‘프런트 농구’가 통했다. 다른 구단과 치열한 경쟁 끝에 일본에서 활약하던 역대 최장신 하은주(202cm·은퇴)를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국가대표 센터 정선민(은퇴)을 국민은행으로부터 영입했고, 은퇴한 전주원 코치가 선수로 복귀하면서 ‘서 말의 구슬’을 꿰는 데 성공했다.
신한은행 프런트는 ‘미래’도 내다봤다. 당장 성적이 급한 하위권 팀과의 트레이드로 다음 시즌 드래프트 상위 선발권을 확보했다. 현재 여자프로농구 최고 스타로 성장한 김단비(29)가 대표적인 예다. 신한은행은 6년 동안 싱겁게 정상을 지켰다. 신한은행에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다 보니 “여자프로농구가 신한은행 때문에 재미없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우리, 공포의 ‘삼각 편대’ 새 시대 열어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는 법. 공교롭게도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을 보좌하던 위성우·전주원 두 코치가 우리은행의 감독과 코치로 자리를 옮긴 2012-2013 시즌부터 권력 이동이 시작됐다. 우리은행은 2006년 박명수 전 감독의 성추행 파문으로 급속히 추락했다. 하위권을 전전하며 라이벌 신한은행 왕조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위성우 감독·전주원 코치 체제를 정립한 뒤 부활에 성공했다. 마치 신한은행이 2005년 꼴찌에서 정상으로 6개월 만에 기적을 만든 것처럼 우리은행도 2012년 최하위에서 2013년 우승의 기적을 일궜다.
2012-2013 시즌과 2013-2014 시즌 챔피언결정전은 무너져가는 신한 왕조와 부활하는 우리 왕조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고, 결국 우리은행 왕조가 구축됐다.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은 우승 5번 뒤에 준우승 2번을 차지하고도 해임됐고, 그 후 신한은행은 점점 추락해 급기야 이번 시즌에는 꼴찌가 됐다. ‘레알 신한’이라는 별칭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우리은행은 노장 임영희(39)와 가드 박혜진(29), 센터 양지희(은퇴)의 ‘삼각 편대’가 팀을 이끌며 신한 왕조를 무너뜨렸다. 지난 시즌에는 KEB하나은행에서 영입한 국가대표 포워드 김정은과 ‘샛별’ 김단비(27·신한은행 김단비와 동명이인), 최은실(25)까지 가세하며 챔피언결정전에서 KB를 꺾고 6년 연속 정상을 지켰다. KB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초특급 센터 박지수를 영입하는 행운을 잡았지만 우리 왕조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KB, 정규리그 우리에 2연패 뒤 5연승
그러나 신한 왕조보다 더 오래갈 것 같던 우리 왕조는 이번 정규리그 우승을 KB에 내주며 7시즌 연속 통합 우승이 물 건너갔다. KB는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로 성장한 2년 차 센터 박지수(21·198㎝)와 외국인 선수 카일라 손튼(27),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염윤아(32), 가드 심성영(27)과 주장이자 슈터 강아정 등 짱짱한 베스트 5와 김가은(29), 김민정(25), 김진영(23) 등 벤치 멤버가 조화를 이루며 정규리그에서 우리은행 아성을 무너뜨렸다.
KB는 1963년 여자농구단을 창단한 이후 농구대잔치 시절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명문 구단이 됐지만 1998년 프로 출범 이후에는 챔피언결정전에만 6번 진출했을 뿐 챔피언 트로피는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8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호시탐탐 정상을 노려왔고, 이번에는 마침내 21년 숙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규리그 2위 우리은행은 정규리그 3위 삼성생명과의 플레이오프(3전 2승제)를 통과해야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에서 설욕을 기대할 수 있다. 정규리그에서 KB는 우리은행과 7차례 맞대결에서 1, 2라운드를 패한 뒤 3~7라운드에서 내리 5연승을 거뒀다. 과연 KB가 무관의 한을 풀고 새로운 ‘국민 왕조’를 건설할지, 아니면 우리은행이 정규리그 우승 실패의 아픔을 딛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 왕조’의 건재함을 과시할지 팬들의 시선이 오는 3월 21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쏠리고 있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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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