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에서는 2019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있었다. 이번 연설에는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 안정적으로 집권 중반을 이끌어야 하는 정부의 고민이 묻어난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포용국가의 비전을 구체적 실행계획에 해당하는 예산안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부동산 급등과 증시 급락으로 국민들의 경제와 생활 불안이 가중된 상황에서 우리가 원하는 국정의 최우선 목표는 이번 시정연설의 핵심적 키워드인 성장, 혁신, 함께, 평화 등을 포용이라는 브랜드로 통합하는 일이다. 포용은 경제와 사회를 포괄하는 기본 철학이기 때문에 포용적 사회, 포용적 성장, 포용적 번영, 포용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촉매제이자 안내자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 일자리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이 표출되자 국가 발전전략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경로의존을 추구하는 성장지상주의 명제가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부활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책 오류를 치유하는 점진적 정책 환류는 필요하지만 정부 때리기에 굴복하는 급진적 정책 변화는 일관성과 시의성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
포용국가의 당위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국가 모두가 직면한 공통의 과제이다. 이는 포용적 성장의 개념화를 시장경제 확산의 첨병인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이 주도한 사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배제적 성장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유럽 스타일의 포용적 성장정책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포용국가를 표방한 문재인정부의 발전전략은 적정한 정부의 선도하에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남미가 아니라 북유럽의 발전전략과 유사하다. 하지만 쿠데타로 촉발된 국민 불만을 달래기 위해 고안된 남미의 포퓰리즘이나 최근 악화된 폐쇄적 수입대체산업화의 실패를 무역대국인 한국의 현실과 동일시하는 비교의 오류가 난무하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우선 환경 측면에서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남미는 유라시아의 동서를 대표하는 시작점에 위치한 한반도나 스칸디나비아반도와 구별된다. 대륙과 해양세력이 교차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북유럽도 서유럽과 구소련을 매개하는 냉전의 완충지대였다. 주기적으로 강대국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렸지만 개방과 중립을 표방하며 정체성을 유지했다.
남미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이베리아가 자행한 잔혹한 수탈을 경험했다. 19세기 중반 정치적으로 독립했지만 경제적 종속상태가 지속되었다. 이에 사회주의나 종속이론이 제안한 고립주의 발전전략인 수입대체산업화를 채택했다. 경제적 성과는 저조했지만 농축수산물이나 지하자원을 대체하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기반의 신성장동력을 찾기 어려웠던 남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노르딕 국가와 우리는 자원과 내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교육 강국을 표방하면서 제조업을 육성했다. 핀란드의 노키아나 스웨덴의 볼보, 한국의 반도체나 자동차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전략산업의 비교우위를 위해 대기업에 올인한 수출 지향 산업화가 한계를 노정하자 스타트업이 선호하는 온라인 게임이나 생활 디자인으로 전환했다. 핀란드의 앵그리버드, 스웨덴의 이케아, 한국의 인터넷 포털과 의약·바이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0세기 중반 남미는 세계대전과 같은 구대륙의 혼란이 가중되자 반사이익을 누리기도 했다.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노동과 자본이 유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특수도 찾아왔다. 하지만 자원대국 남미는 호황기에 축적한 부를 새로운 도약의 원천으로 부상한 기술이 아니라 탱고와 삼바와 같은 예술에 소비하고 말았다. 짧았던 호황이 지나고 위기가 닥치자 국부의 유출과 계층 간 대립이 심화되었다.
냉전시절 중개무역에 의존한 북유럽 국가들은 구소련이 붕괴하자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전후 고도성장기에 축적한 부를 복지에 투자한 북유럽은 사회민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절충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과 국가적 난제에 직면해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한 ‘사회협약’을 앞세워 위기를 극복했다. 더불어 공동체를 중시하는 북유럽에서는 양성평등, 워라밸, 친환경 등이 제도화된 상태다.
하지만 복지 마인드보다 안보 마인드에 충실했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사회협약보다 구조조정을 중시했다. 단기적으로 경제는 살아났지만 계층 간의 격차 확대와 산업생태계 파괴라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우리 산업현장에는 독선과 불통의 갑질 문화가 온존한 상태다. 수직적 하청구조를 악용한 단가 후려치기나 벤처기업의 신기술을 가로채는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다.
결국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추구할 발전전략은 포용국가의 비전하에 성장(시장), 복지(사회), 제도(정부)라는 균형 잡힌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최근의 논란을 극복하는 미래의 국정관리는 활기찬 시장(혁신성장, 고용주도 성장, 공정경제 등), 안정된 사회(근로 장려, 주거 안정, 양성평등 등), 적정한 정부(공공서비스, 규제개혁, 정부 간 협력 등)를 추구해야 한다.
한편 포용과 협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오랜 역사의 비극을 통해 독불장군이나 대량학살을 터부시하는 제도적 장치도 고안했다. 비례대표제를 비롯해 유럽연합의 창설과 자치분권의 강화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기독교나 유교의 영향처럼 원칙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기풍으로 인해 내셔널은 물론 글로벌과 로컬 무대에서 역동적 거버넌스의 제도화가 미진한 상태다.
포용국가는 배제적 성장정책에 대한 반성
미국의 경우 백인 근본주의자들이 국내외 정책에서 배제의 정치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군산복합체나 유대금융가와 밀착한 강경 보수파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제도권 정치 전반을 움직일 정도로 강력하다는 점에서 국제질서의 안정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후원하는 국회 비준이 지연되고 있다. 이른바 남북 대결 구도에 안주하려는 현상 유지 편향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으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자구 노력이 내외부의 견제를 극복하고 소기의 성과를 창출하기를 소망해본다.
경제적 당면과제인 부동산 투기 억제나 소득주도 성장 논란을 해소하는 여야의 공조도 필요하다. 복잡한 난제에 직면해 원초적 진영논리로 일관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희망찬 미래를 개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여야의 대책인 수요 규제나 공급 확대는 부분적 해결책에 불과하다. 토지나 주택의 공공성 강화라는 문제의 본질을 도외시한 정책 대응은 땜질식 처방으로 귀착된다. 따라서 임대주택과 주택모기지의 지속적 확대를 통해 주거안정을 이룩한 유럽의 경로를 따라야 한다. 더불어 소득의 격차와 자산의 격차가 시너지를 창출하는 현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장단기 대책도 절실하다.
소득주도성장의 공과를 둘러싼 여야의 논쟁은 경기 퇴조 국면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근본주의적 대립구도를 탈피해 실용주의적 타협논리에 입각한 지속적인 정책 보완이 이루어질 경우 목표의 대치가 아니라 승계하는 방식으로 야당의 협력이나 자영업자들의 순응을 확보하기에 유리할 것이다.
김정렬│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