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은 참으로 어색한 장소다. 엘리베이터는 밀폐된 장소이자 동시에 움직이는 기계이며, 그 속에서는 무엇을 시도해도 참 부자연스럽다. 휴대폰 화면에 푹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똑같이 바쁜 척 휴대폰을 만지작거려도 보지만, 어쩐지 영 어색하고 겸연쩍다. 굳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까지 휴대폰에 코를 묻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도대체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뭘 해야 좋을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일, 글쓰기를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해보면 어떨까. 얼마 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나는 처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글쓰기를 시도해보았다. 워낙 높은 층에서 머물다 보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과 타고 올라가는 시간도 꽤 되었다. 종이와 펜을 항상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니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세 문장밖에 못 쓰긴 했지만,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단 한 문장’이야말로 구세주처럼 느껴지곤 한다. 뉴욕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구의 시선에도 방해받지 않고 엄청난 몰입감으로 글을 쓴 그날 그 순간은, 수십 년 동안 타본 엘리베이터라는 공간 안에서 내가 보낸 가장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며칠째 풀리지 않았던 글쓰기의 실마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친김에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택시에 타서도 계속 글을 써서 다른 때보다 훨씬 몰입해 글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그동안 ‘시간이 없다’며 미뤄왔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의미 없이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광고에 홀리고, 가십거리에 넋을 빼앗기느라, 지상에 한 번뿐인 매 순간의 시간을 너무도 안타깝게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없다’는 것은 ‘아직은 간절하지 않다, 지금은 별로 절실하지 않다’의 다른 말은 아닐까.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가장 쉬운 습관 중 하나는 종이와 연필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종이와 연필로 사유하면 휴대폰을 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직관적으로 자기 안의 사유와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자리를 바꾸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안에서 그림을 보며 글을 쓰고 있다. 박물관 안의 벤치에 앉아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그림들과 로댕의 조각을 보면서 글을 쓸 수 있다니. 내가 소중한 일을 이렇듯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동안 ‘시간이 없다, 공간이 여의치 않다’며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엇도 우리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종이와 펜만 준비한 채 몸 가볍게 일상 속을 돌아다녀보자. 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낸 단 1분의 시간은 ‘자투리 시간’이 아니었다. 단 1분의 기폭제로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온갖 밀린 원고들을 다 써냈고 걸으면서 사유하고 버스에서도 글을 쓰고 택시 안에서도 글을 쓰고 그림을 보면서도 글을 썼다. 우리 인생에 자투리 시간은 없다. 모든 시간이 ‘자투리’가 아닌 ‘고갱이’이며, ‘나머지’가 아닌 ‘충만함’이다. 모든 시간이 더없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우리가 기계와 미디어에 혼을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저마다의 인생을 내 스스로 운전하고 있다는 강한 믿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정여울│문학평론가. <내성적인 여행자>,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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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