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에디터’라는 사이트가 있다. 출판계 종사하는 편집자들만 알음알음 아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다들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재기발랄한 글들이 많이 올라올까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은행가들은 모이면 예술 얘기를 하는데 예술가들은 모이면 돈 얘기를 하더라는 말처럼, 편집자들이(비록 예술가는 아니지만) 삼삼오오 모였을 때 나오는 얘기는 적은 보수와 고된 노동과 낮은 처우를 자조적으로 내뱉다 제풀에 잦아들 때가 많다.
사이트를 존속하게 만드는 힘은 뜻밖에도 ‘구인·구직’ 카테고리에서 나온다. 출판계에 몸담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이 공간을 통해 새로운 일터를 찾고, 새로운 직원을 뽑는다. 다른 ‘구인·구직’ 사이트를 함께 활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곁다리다.
나도 그런 이유에서 이 사이트를 알게 됐다. 과거 잡지장이 시절, 교열자나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가 필요할 때면 일단 ‘북 에디터’ 구인란에 글을 올리고 봤다.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올리는 구인 광고 글도 유심히 살폈다. 내가 찾는 적임자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동시에 그 미지의 적임자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어야 하니 벤치마킹은 기본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얘기는 모두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구인 광고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내가 그 사이트에서 목격한 가장 흥미진진한 해프닝이기도 하다. 기억 속의 문구를 그대로 옮겨본다.
‘A 출판사의 CEO 아무개입니다. 한때 주위에서 기획자 사관학교 교관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나 최근에는 기획자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했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가르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지합니다. 자신이 기획에 소질이 있으나 이끌어주는 사람을 못 만났다고 생각하는 분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나는 읽는 내내 비죽비죽 웃음이 새나왔고, 다 읽고 나서는 의문에 빠졌다. 이 출판사 CEO는, 자신이 찾는 유능하며 자긍심 있는 인재가 이 글을 읽고, 정말로 자신에게 호감과 신뢰를 느껴 연락을 해오리라고 기대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 사람은 혹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더 나아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이코패스가 매스미디어의 한 축인 단행본 출판사의 CEO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삐딱하게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CEO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그날 ‘북 에디터’ 사이트에는 하필 나처럼 삐딱한 회원들만 넘쳐났다. 출판사에 대해 거부감만 느껴진다, 이 사장님은 유난히 CEO라는 표현을 좋아하더라, 소통은 전혀 없고 본인 기획 방향만 절대선이라는 건가, 맹랑하고 유치해서 말문이 막힌다… 등등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이건 분명 모략입니다. 읽는 사람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글을 설마 본인이 썼을까요? 누군가 A 출판사 사장님을 음해하려는 것입니다’라는 조롱의 글까지 나왔다. 다들 (그리고 나마저도 내심) 이 교만하고 안하무인인 CEO를 혼꾸멍 내주고 싶은 마음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찌개냄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올라온 댓글 하나가 내 마음을 착 가라앉혔다.
‘그냥 그렇게 살게 둡시다. 그 인격 자체가 형벌 아닙니까?’
나는 지금도 미운 사람과 다툴 일이 생기면 그 지혜로운 말을 생각한다. 이 미운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나 성격을 고쳐주기 위해 굳이 내가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미운 사람이 잘못되거나 실패하기를 바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의 생애가 계속되기를 빌어줘야 할 것이다. 나는 ‘북 에디터’를 은둔 현자의 서식지로 기억한다.
구승준 번역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