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학자, 정치가, 시민들은 공공정책 입안에 국가 웰빙을 다차원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국가별로 비교한 결과 한국은 소득 및 건강 상태에서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사적 지원, 삶의 선택의 자유, 대기의 질, 일과 삶의 균형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은 웰빙의 다차원적 측정법을 채택해야 한다.
20세기에는 소득 증가가 한 국가의 개발을 측정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및 그 성장률을 주요 정책적 변수로 받아들였다. 빈국의 소득 증가는 소비가 확대될 가능성을 의미할 뿐 아니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며 오래 사는 삶을 의미했기 때문에 소득에 중점을 두는 방식은 과거에는 분명히 유용했다.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와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과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빈국에서는 소득이 증가할 경우 국민의 삶이 즉각적으로 향상되기 때문에 소득 증가에 주력하는 방식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하지만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는 부유한 국가의 소득 증가는 삶의 질을 약간만 올릴 수 있다. 선진국은 그 대신에 국민 웰빙의 다른 차원을 정책 입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에 지난 20년 동안 GDP에만 의존했던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GDP는 삶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 간주해야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21세기 초에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삶의 질을 측정하려는 새로운 지표들이 등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UN)이 개발한 이 지표들은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금전적, 비금전적, 객관적, 주관적 요인을 고려한다. 이는 웰빙의 다른 측면을 측정해 GDP를 보완하고 정부로 하여금 더 나은 정책 입안을 위한 전체론적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OECD의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 BLI)는 주거 상태, 소득, 직업, 공동체, 교육, 환경의 질, 시민 참여, 건강 상태,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삶의 균형, 양성평등과 같은 웰빙의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삶의 질, 어떻게 평가하고 뭘 개선할 것인가
한국은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추구할 경우 빈국에서 부국으로의 급속한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2대에 걸친 희생으로 한국은 오늘날 세계 제11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며 건강 상태와 교육 순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삶의 질을 측정하는 이 새로운 방법에서 한국은 과연 몇 위일까? 21세기 초 현재 한국인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OECD의 ‘더 나은 삶 지표’에 따르면 OECD의 36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인의 삶의 질은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교육, 주거, 시민 참여에서는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심각한 대기오염, 긴 근로시간, 낮은 사적 지원의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각각 환경의 질, 일과 삶의 균형, 공동체 측면에서는 약점을 보이고 있다.
이 지표들의 눈에 띄는 특징은 대규모 국가 설문조사를 실시해 사람들에게 삶의 질, 삶의 선택의 자유, 사적 지원을 직접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롭게 수집된 데이터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흥미롭고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 건실한 경제와 높은 소득 수준에도 한국은 ‘자기 보고 삶의 만족도 및 행복(self-reported life satisfaction and happiness)’을 포함한 주관적 웰빙 측정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의 ‘2018 세계행복지수(World Happiness Index 2018)’에서 한국은 평가 대상 156개 국가 중 57위에 그쳤다. 행복지수 산출을 위해 국가별로 매년 평균 1000명의 사람이 자신의 삶을 평가하게 된다. 2018 세계행복지수는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의 국가별 평균치를 제공한다. 최저 0점에서 최고 10점까지 삶에 대한 만족도에 점수를 매기는 것인데 한국인의 평균 점수는 5.88점에 지나지 않는다. 최상위권에 위치한 핀란드(7.63), 노르웨이(7.59), 덴마크(7.56)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또한 동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삶의 만족도에서 세계적 추세에 훨씬 뒤처진 유일한 국가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홍콩과 싱가포르 또한 소득 수준을 고려해볼 때 삶의 만족도에서 낮은 점수를 보이고 있다.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삶의 만족도 측정의 국가별 차이를 설명해주는 몇 가지 결정 요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 요인들은 1인당 소득, 건강 기대수명,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 또는 친척의 존재(사적 지원), 삶의 선택의 자유(freedom to make life choices), 관대, 부패에 대한 인식, 실업, 소득 불평등과 함께 행복, 웃음,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 감정과 걱정,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요인들이 사람들의 삶의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은 평균소득 및 건강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1인당 소득(28위), 건강 기대수명(4위), 관대(39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일부 세부 지표로 인해 과거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주요 취약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20%의 한국인이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없다고 응답하며, 사적 지원 부분에서 한국은 95위를 기록했다. 반면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5%의 사람만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없다고 응답했다.
최근에 많은 부국에서는 외로움, 그중에서도 노년층의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이 문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은 최근에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을 임명했는데 이는 국가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영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많은 유럽 국가들이 노년층의 외로움 해소를 위해 집을 공유하고 함께 거주하는 공동주거(co-housing)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은 사적 지원에서 부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러한 모범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의 노년층이 빈곤 속에서 살아갈 확률이 OECD 평균에 비해 4배나 높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노인을 위한 사적 지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 또한 필요하다.
세부 지표로 드러난 취약점
삶의 선택의 자유에서 한국의 순위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 카테고리에서 한국은 튀니지, 차드, 예멘이 포함된 저개발국과 더불어155개국 중 139위에 그쳤으며 58%의 한국인만이 삶에서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가장 행복한 국가인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는 삶의 선택의 자유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무려 95%에 달했다. 국가별로 자유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인적 자유가 늘어나면 행복감이 증대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42%의 한국인이 삶에서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느낀다는 결과는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공한 삶에 대한 정의가 몇 가지로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사실 놀라운 수치는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만이 성공한 삶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가 변호사나 의사가 될 수 없다. 또한 모두가 변호사나 의사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심지어 이를 꿈꾼다 할지라도 부모가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 반면 많은 서구 국가들은 삶의 다양한 선택을 존중한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을 이루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해도 모두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존중받는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창조성과 진실성의 가치가 더욱 보상을 받으며 인생에서 진실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좇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장 존중받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더욱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을 추구하도록 돕는 것은 결국 국가의 경제적 생산성 증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국민의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열린 사회가 더욱 많은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 둘째, 시민에게 위험 감수에 필요한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부모가 아닌 정부가 대학 교육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면 선택의 자유는 확대될 것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진로 결정 시 부모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사회 전체에서 기회의 평등이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커플 내의 자유는 가족 안에서 업무 부담을 어떻게 공유하는가에 달려 있다. 맞벌이 가정과 워킹맘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외벌이 가장들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고 여성의 인생에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질을 측정하는 이 새로운 트렌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과거 GDP에만 의존했던 방식은 21세기의 정부에게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이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다양한 지표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교육, 직업, 소득, 주거 상태에 관한 우려를 해소하는 동시에 시민 참여 및 사적 지원 문화를 확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워킹맘을 지원하고, 이주민을 통합시키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며, 대기의 질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처음으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다양한 측면을 실제로 수치화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것은 한국인의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로버트 루돌프 |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국제개발과 주관적 웰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