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대전 중구 부사동 한밭체육관. 남북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은 시민들은 통일을 상징하는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는 소리로 들썩였다. 아직 본선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남북 단일팀을 응원하려는 시민들로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가 열리는 한밭체육관은 남북 화해 분위기와 맞물려 북한 탁구대표팀의 사상 첫 참가와 함께 일부 종목 단일팀까지 성사되면서 500여 석의 관중석이 연일 만원사례를 이뤘다.
전 세계 27개국 235명의 선수가 참가한 국제탁구연맹(ITTF) 주최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가 7월 17일부터 22일까지 6일간 대전 충무체육관과 한밭체육관에서 열렸다. 대회는 남녀 단식과 남녀 복식, 혼합복식, 21세 이하 남녀 단식 등 7개 종목으로 진행됐다. ITTF 월드투어 대회 중 최상위급에 해당하는 플래티넘 급으로 격상된 올해 대회에는 세계 최강인 중국을 비롯해 톱랭커들이 대거 참가했다.
“탁구로 하나 되니 좋다”
북한 선수단의 참가로 이번 대회는 단순한 국제대회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난 5월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단일팀을 꾸렸던 남북 선수들은 한결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폭염의 날씨도 시민들의 뜨거운 응원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동호회와 시민단체들은 한반도 기와 ‘우리는 하나다’라고 적힌 팸플릿을 일반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남북 선수단에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14대의 탁구대에서 한국 선수단이나 북한 선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잘한다’, ‘파이팅’ 등 구호와 함께 선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시민들은 “탁구를 통해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어 좋다”, “대전에서 남북 화해의 행사가 열려 기쁘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경기를 즐겁게 지켜봤다. 특히 이번 대회를 통해 대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대전은 이미 전국에서 ‘탁구 도시’로 인정받고 있다. 초-중-고-대학부-실업팀까지 연계한 선수 육성 시스템으로 지난 수십 년간 국내 톱랭커들을 배출해왔다. 대전은 대통령기전국탁구대회는 올해까지 3연패를, 전국체전은 지난해까지 4연패를 달성했다.
이번 대회가 관심을 모으는 것은 남북 체육교류가 8월 아시안게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전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던 공동입장, 단일팀(여자아이스하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북이 오는 8월 18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 할 예정이다. 역대 국제종합스포츠대회 열한 번째 공동입장이다. 단일팀 명칭은 코리아(KOREA)이며 약어 표기는 COR이다. 국가는 ‘아리랑’이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이 처음으로 공동입장을 한 이후 2007 창춘동계아시안게임까지 아홉 차례 남과 북이 손을 맞잡고 입장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11년 만에 재개돼 아시안게임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나아가 남북 단일팀 구성은 여섯 번째로, 코리아의 저력을 다시금 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남북 단일팀이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하면 남과 북이 아닌 제3의 영역, 즉 단일팀 메달로 집계된다. 단일팀으로 출전한 남측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하면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병역 혜택이 주어진다.
탁구는 남북 단일팀이 처음으로 꾸려진 종목이다. 1991 지바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된 후 27년이 흐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탄생했다. 그러나 탁구는 이번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을 구성하지 않는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농구와 카누, 조정에서 남북 단일팀이 결성돼 역대 여섯 번째로 남북이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단일팀 선수에 뜨거운 응원
▶ 혼합복식에 출전한 남북단일팀 유은총(남측)-최일(북측)이 한국 이상수-전지희를 상대로 경기를 펼친 뒤 셀카를 찍고 있다. ⓒ뉴시스
이번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혼합복식 최일(24·북한)-유은총(25·포스코에너지) 조가 대회 첫날 극적인 뒤집기로 큰 선물을 안겼고, 7월 18일 오전에는 여자복식 서효원(31·한국마사회)-김송이(23·북한) 조가 승리를 더했다.
▶ 7월 18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응원단이 여자복식 예선에 출전한 남북 단일팀 서효원(남측)-김송이(북측)를 응원하고 있다. ⓒ뉴시스
서효원-김송이 조는 여자복식 예선에서 올라 김-레지나 김(우즈베키스탄) 조를 20분 만에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파했다. 서효원은 “연습 첫날과 경기 전에만 (함께) 연습했는데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았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탁구 용어를 익히며 함께 호흡을 맞춰가려고 노력했다. 한국은 외래어를 많이 쓰고 북한은 순수 우리말만 사용한다. 서효원은 “처음에 사인을 보내라고 했더니 ‘사인이 뭐냐’고 물었다. 북한에서는 ‘표시’라고 한다고 했다. ‘타격’을 하라고 해서 그게 뭐냐고 물으니 ‘스매시’였다. 한 가지씩 서로 알려주며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많이 알아듣는다”며 훈련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전했다.
▶ 7월 1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여자복식 본선 16강에 출전한 남북 단일팀 서효원(남측)-김송이(북측)가 중국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서효원-김송이 조는 16강에 올랐지만, 중국의 벽은 높았다. 7월 19일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복식 8강전에서 중국의 주위링-왕만위 조에게 2-3으로 역전패했다. 주위링과 왕만위는 각각 여자단식 세계랭킹 1, 2위로 이기기 힘든 상대였지만 이에 맞서는 서효원과 김송이의 투지도 대단했다.
이들은 3세트까지 2-1로 앞섰고 4세트에서도 10-8로 매치포인트를 만들었다. 다만 이후 4연속 포인트를 내주면서 역전 당했고 5세트를 빼앗기면서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경기 후 서효원은 “세계 1, 2위 선수들이라 어려운 경기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며 “조금 더 일찍 단일팀이 구성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북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연습을 체계적으로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 단일팀’ 혼합복식 콤비 역시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최일(북측)-유은총(포스코에너지) 조는 7월 19일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혼합복식 8강전에서 이상수(국군체육부대)-전지희(포스코에너지) 조에 1-3으로 졌다.
한국의 에이스 듀오 이상수(세계랭킹 7위)와 전지희(세계 30위)는 다음 달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혼합복식 금메달을 노리는 실력파다.
첫 세트를 5-11로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한 최일-유은총 조는 유은총의 회전량 많은 서브에 이은 최일의 날카로운 2구 공격으로 2세트를 11-9로 따내 게임 스코어 1-1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이상수-전지희 조는 3세트 들어 강한 공세로 최일-유은총 조의 허점을 파고들어 세트를 가져간 뒤 듀스 접전을 벌인 4세트마저 승리하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최일과 유은총은 패배가 확정된 후 환한 웃음으로 이상수와 전지희에게 다가가 승리를 축하해줘 관람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 남자복식에 출전한 남북 단일팀 이상수(남측)-박신혁(북측)이 독일-슬로바키아 단일팀을 상대로 경기를 펼쳐 3-0으로 이기고 8강에 올랐다. ⓒ뉴시스
한편 남자복식 단일팀 이상수-박신혁 조는 7월 19일 16강전에서 패트릭 바움(독일)-토마스 케이나스(슬로바키아) 조를 3-0으로 완파하며 8강에 올랐다.
이정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