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이든 명확한 직함 구분으로 구성원을 서열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관습이었다. 때문에 상명하복 시스템을 중심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말단 사원부터 최고 경영자까지 호칭을 통일하는 ‘호칭 파괴’ 바람이 불고 있다. 경직된 구조에서 벗어나 수평적 기업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대표적인 신호탄이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과거 딱딱한 조직 분위기 아래에서는 업무량을 얼마나 투입하느냐에 따라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데 반해, 이제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필요해졌다. 경계를 허무는 융합의 시대가 다가오자 유연한 사고 및 분위기를 기반으로 한 근무환경을 형성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신조어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장시간 노동으로 만연한 과로를 당연시해온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무엇보다 직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음을 방증한다. ‘해야 하는 일’에 무게를 뒀던 종전과 달리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느냐’를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워라밸 세대를 조명했다. 1988년생부터 1994년생까지 사회에 갓 진출한 젊은 직장인을 워라밸 세대로 규정하고 이들의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전망했다. 김난도 교수에 따르면 워라밸 세대는 이전 세대와 확실히 다르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불완전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자기애가 중요하며 스트레스 제로 상태를 추구한다. 일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2016년 방영된 TV 다큐멘터리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 다큐멘터리는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 현상을 통해 젊은 직장인과 기성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줬다. 국내 기업들이 근로시간 유연화와 소통 활성화 등을 바탕으로 기업문화를 손질하게 된 이유다.
그렇다고 특정 세대의 등장이 기업문화 변화 배경의 전부로 설명될 수는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최종 목표는 결국 생산성 증대이고 그것을 위한 과정으로 기업문화 개선이 필요해진 점도 있다. 글로벌 기업 웨그먼스 푸드마켓(Wegmans Food Markets)의 경영 사례가 대표적이다. 웨그먼스 푸드마켓의 최고경영자(CEO) 대니 웨그먼은 고객보다 직원이 우선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직원부터 최고 수준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 웨그먼의 경영 방침이다. 그는 형식적인 인사제도를 없애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직원은 언제든지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실제로 한 제빵사가 대니 웨그먼에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라며 보여준 쿠키는 판매로 연결됐고 이후 매장 인기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직원의 만족도가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현상, ‘웨그먼스 효과(Wegmans effect)’는 여기서 유래됐다.
이제 국내 기업들은 외부적으로만 혁신을 외치지 않는다. 전통적인 기업문화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직감했으며 여러 글로벌 사례를 통해 기업문화 혁신이 가져오는 성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열과 관계없이 호칭을 일원화하는 형태부터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거나 업무 공간의 개념이 사라지는 형태 등 기업문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달라진 기업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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