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가 길이 1200~1300m 트랙을 질주한다. 평균 시속 130~140km를 달리는 썰매는 커브를 돌 때면 중력의 약 4배 정도로 압력이 높아진다.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돼야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봅슬레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 경기에서 의미 있는 도전을 벌일 선수들을 살펴봤다.
봅슬레이는 ‘얼음 위의 F1’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루지나 스켈레톤 등 다른 썰매 종목에 비해 최대 속도가 150km로 가장 높다. 봅슬레이는 스타트가 경기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스타트라인에서부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빠른 속도로 얼음을 가로지르는 봅슬레이는 19세기 후반 스위스의 장크트모리츠에서 썰매 타기 코스를 만들어 경주를 하던 놀이가 스포츠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탄생했다. 1884년 장크트모리츠에서 첫 공식 경기가 열릴 때만 해도 선수들은 나무로 만든 썰매를 탔다. 이후 금속제 썰매를 도입하고 봅슬레이 전용 트랙이 생기는 등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현대의 봅슬레이는 선수들이 힘을 모아 썰매를 밀면서 출발한 뒤 탄력이 붙으면 재빨리 저마다 자리로 뛰어올라 썰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제일 앞의 선수가 파일럿 역할을 맡아 조종대에 연결된 로프를 당겨 썰매를 조종하고 활주 라인과 코스를 판단한다. 뒤에 앉은 선수는 브레이크 맨으로 출발할 때 도움닫기를 해 가속하는 역할을 한다. 4인승 경기에서 두세 번째 앉은 선수는 푸시맨인데 이들은 출발할 때 도움닫기를 해 썰매가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가속하는 역할을 맡는다. 봅슬레이는 달리면서 가속을 내 출발선을 지나기 때문에 평탄부에서 도움닫기로 가속을 내는 것과 파일럿과 브레이크 맨이 호흡을 맞춰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1924년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에서부터 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평창에서는 남자 2인승, 여자 2인승, 남자 4인승 등 총 3개의 금메달을 놓고 선수들이 경쟁을 펼친다.
봅슬레이 하면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쿨러닝’이다.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자메이카 남자 봅슬레이 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겨울 스포츠의 대표 영화로 여전히 많은 이의 뇌리에 남아 있다.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이 펼칠 평창판 ‘쿨러닝’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평창판 ‘쿨러닝’으로 새 역사를 쓴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여자 봅슬레이 팀이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데뷔전을 치를 계획이다. 아디군(30), 응고지 오누메레(25), 아쿠오마 오메오가(25)로 구성된 나이지리아팀은 지난 1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북아메리카컵대회에 참가해 1·2차 시기 합계 13위를 기록, 평창출전권을 따냈다. 세 선수는 원래 육상 선수였다. 아디군은 2012 런던올림픽에 100m 허들 선수로 출전한 적이 있다. 나이지리아팀의 올림픽 준비는 어느 것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썰매가 없어 선수들이 직접 나무로 훈련용 썰매를 만들어 연습했다. 훈련 비용도 문제였다. 훈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누리집 ‘고펀드미’에 홍보를 시작한 이들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펀딩 금액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후원사도 얻었다. “나이지리아 국기를 단 썰매를 타고 올림픽에 참가하는 상상을 하면 알 수 없는 감정이 핏줄을 타고 흐른다”는 나이지리아팀이 평창에서 데뷔전을 무사히 치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봅슬레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나라는 단연 독일이다. 독일은 역대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종목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가져간 썰매 강국이다. 우리나라 양궁이 그렇듯 독일에서는 썰매 대표팀에 뽑히는 것이 올림픽 메달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독일은 세계 랭킹 선두를 달리고 있는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27)·토어스텐 마르기스(28) 팀을 내세워 봅슬레이 종목 금메달을 석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독일 봅슬레이팀의 핵심 전력은 파일럿을 맡고 있는 프리드리히 선수다. 프리드리히 선수는 2006년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해 2011년 세계선수권 혼성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며 이름을 알렸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는 2인승, 4인승 부문에 모두 출전해 각각 8위와 10위를 기록했다. 2011년 10월 독일 연방의 경찰관으로 근무를 시작한 프리드리히는 현직 경찰 경위라는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 독일의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토어스텐마르기스 선수 ⓒ연합
올해 3월 평창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월드컵 8차 대회에서 프리드리히 조는 금메달을 차지하며 평창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월드컵에서는 그로스코프 마틴(31)과 짝을 이뤄 참가해 9위를 차지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지만 여전히 프리드리히는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프리드리히는 마르기스와 짝을 이룬 후 7번 월드컵에 출전해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평창에서 금메달 사냥에 나서는 프리드리히가 라이벌로 꼽는 나라가 있다. 다름 아닌 한국이다. 올해 3월 평창에서 치른 월드컵대회에서 “원윤종은 강력한 경쟁자다. 그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답하기도 했다.
원윤종(32)과 서영우(26)를 필두로 한 우리나라 대표팀도 최근 봅슬레이 종목 메달 후보로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2015~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월드컵 대회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며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원윤종·서영우 아시아 최초 랭킹 1위 기록
▶ 원윤종·서영우 선수 ⓒ연합
하지만 이어진 2016~2017 시즌은 다사다난했다. 2016~2017 월드컵 1차 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후 6차 대회에서는 16위를 기록해 부진한 데 이어 세계선수권에서 중도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부상, 팀 내 기술진 불화와 이탈, 썰매 교체 후 적응 실패 등 다양한 요인이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올림픽이 성큼 다가온 2017~2018 시즌의 시작도 다소 부진했다.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1차 월드컵에서 10위, 다음 날 2차 월드컵대회에서 13위를 기록해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휘슬러에서 열린 3차 대회에서 1, 2차 합계 1분 44초 51을 기록해 6위에 올랐다. 휘슬러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대표팀은 월드컵 4, 5차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대표팀이 월드컵 출전을 포기한 데는 남은 기간 동안 평창을 향해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관계자는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는 것보다 평창 트랙을 한 번이라도 더 타보는 게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두 선수는 이후 내년 1월 13일 스위스 장크트모리츠에서 열릴 월드컵 7차 대회에 참가해 올림픽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를 계획이다.
대표팀이 풀어야 할 숙제가 또 하나 있다. 평창에서 탈 썰매를 결정하는 문제다. 기존에 타던 오스트리아 발러 썰매 대신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국산 썰매와 라트비아산 BTC 썰매 중 어느 것을 타고 올림픽에 임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대표팀은 두 썰매의 기록을 따져 올림픽 선수 등록 기간인 내년 1월 중순까지 썰매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이제 46일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두 선수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은 격려가 필요하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