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묵직한 ‘스톤’이 빙판 위를 굴러간다. 선수들은 스톤이 지나갈 길을 부지런히 닦아 속도와 방향을 정한다. ‘컬링’은 눈앞을 휙휙 지나가며 스피드를 겨루는 다른 종목과는 달리 선수들의 전략과 집중력이 빙판 위를 수놓는다. ‘빙판 위의 체스’라 불릴 만큼 치밀한 두뇌싸움이 펼쳐지는 컬링 종목에서 활약할 선수들을 미리 만나보자.
컬링은 16세기 이전부터 스코틀랜드에서 얼어붙은 호수나 강에 무거운 돌덩이를 미끄러뜨리던 놀이에서 시작됐다. 이후 17~18세기 무렵 영국이 식민지를 거느리기 시작하면서 영국과 영국 식민지를 중심으로 스포츠 종목으로 발전했다. 컬링이 전 국민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국가는 컬링 강국 캐나다다. 캐나다는 아이스링크에 컬링 장비가 모두 준비돼 있다. 다른 운동에 비해 간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컬링을 즐겨하는 사람이 많다. 캐나다를 중심으로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컬링은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컬링 경기에 중심이 되는 도구는 ‘컬링스톤’이다. 컬링스톤은 무게가 19.96kg, 원둘레가 91.44cm, 높이는 11.43cm 정도로 정해져 있다. 동계올림픽처럼 규모가 큰 국제대회에서 쓰는 스톤을 만드는 재료는 특별하다. 스코틀랜드의 무인도 ‘에일서 크레이그’에서 10년에 한 번 채굴할 수 있는 화강암으로 만든다. 에일서 크레이그에서 채취하는 화강암은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돌이다.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어 ‘블루혼’이라 불린다. 블루혼은 습도에 강해 빙판 위에서 오랫동안 사용되는 컬링스톤으로 제격이다. 스톤 1개당 가격은 25만 원 정도. 규정은 없지만 동계올림픽에서는 주로 블루혼으로 만든 컬링스톤을 선수들에게 제공한다. 평창동계올림픽에도 블루혼으로 만든 컬링스톤이 빙판 위에 등장한다. 남자, 여자, 믹스더블까지 총 3종목, 세부 종목에서 총 64개 컬링스톤이 선수들의 희비를 가른다.
▶ 김창민 선수가 이끄는 한국 컬링 남자 대표팀 ⓒ연합
팀 대부분이 가족이나 지인으로 구성
컬링은 한 경기 내에서 4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며 각 팀이 번갈아가며 스톤을 던진다. 이때 2명 이상의 선수가 스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함께 움직이며 ‘브룸’을 이용해 스톤의 진로와 속도를 조절한다.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서 스톤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팀별로 치열하게 두뇌싸움을 펼쳐야만 승리할 수 있다. 컬링이 ‘빙판 위의 체스’라 불리는 이유다.
믹스더블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신설된 종목이다. 기존 컬링을 긴장감 있고 스피드한 경기로 만들기 위해 팀원을 남녀 1명씩 총 2명으로 바꾸고 경기 방식과 경기에서 던지는 스톤 수도 모두 바꾸었다. 그렇다 보니 남녀 선수의 호흡과 집중력, 작전이 승부를 가르는 관건이다.
컬링은 선수 구성이 다른 종목과는 다르다. 국내 1위 팀이 곧 대표팀이다. 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고민하는 종목의 특성상 단일팀이 나가야 팀워크를 유지하기 좋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보니 컬링팀은 대체로 가족이나 지인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를 포함해 남자, 여자, 믹스더블팀 총 15명 중 7명이 가족이다. 믹스더블 장반석(35) 감독과 여자팀 김민정(36) 감독은 부부다. 김 감독의 동생 김민찬(30)은 남자 대표다. 여자 대표팀의 김영미(26)와 김경애(23)는 자매다. 남자 대표팀 이기복(22)과 믹스더블 대표 이기정(22)은 10초 차이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다.
컬링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팀은 캐나다의 ‘호먼 팀’이다. 주장인 스킵 레이첼 호먼(28), 서드 엠마 미스큐(28), 세컨드 조앤 커트니(28), 리드 리사 위클(32), 후보 앨리슨 크레이바죽(29) 등으로 구성된 호먼 팀은 모두 캐나다 오타와 출신이다. ‘호먼 팀’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제니퍼 존스 팀’을 꺾고 대표팀에 선발됐다. 호먼 팀은 경기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팀이다. 지난 2017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3경기 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세계선수권에서 전 경기 무패 행진으로 우승한 팀은 호먼 팀이 역대 최초다. 2007 캐나다동계체육대회와 2010 캐나다주니어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낸 이후 2010년 세계주니어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대회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5~2016 시즌 마스터스·내셔널·캐나다 오픈까지 세계 3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한 최초의 여자 컬링팀으로 기록을 세웠다. 호먼 팀은 남자 컬링 대회에서 상위 팀을 이긴 최초의 여자팀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남자 컬링 그랜드슬램 대회인 ‘엘리트 10’에 초청 받아 1승 3패를 기록해 남자팀 못지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기록이란 기록은 모두 휩쓸고 다니는 호먼 팀이 평창에서도 올림픽 첫 메달을 거머쥘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 김은정 선수가 이끄는 ‘팀 킴’은 올림픽을 앞둔 요즘 기량이 한껏 물이 올랐다.ⓒ연합
캐나다 팀이 평창에서 가장 먼저 만날 상대는 우리 여자 대표팀이다. ‘팀 킴(Team Kim)’으로 불리는 여자 대표팀도 올림픽을 앞둔 요즘 기량이 한껏 물이 올랐다. 스킵 김은정(27), 서드 김경애(23), 세컨드 김선영(24), 리드 김초희(21), 후보 김영미(26) 등 대표팀 구성원 모두가 김 씨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자매냐는 질문을 받지만 진짜 자매는 김영미 선수와 김경애 선수다.
여자 대표팀 평창에서 메달권 기대
현재 세계 랭킹 21위에 머물러 있는 우리 대표팀은 컬링 대표팀 중 올림픽 메달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6·2017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낸 후 지난 2017년 2월 열린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호주 에리나에서 열린 2017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대회에서는 일본을 11대 6으로 꺾고 12전 모두 이겨 금메달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여자 대표팀의 이번 시즌 성적도 기대 이상이다. 지난 2017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스톡홀름 레이디스 컬링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컬링계 신성으로 입지를 다졌다. 스톡홀름 컬링컵에는 평창 출전이 확정된 팀인 스웨덴, 스위스, 일본, 러시아 등 7개국만이 출전해 사실상 미리 보는 올림픽이나 마찬가지라 더욱 의미가 크다.
남자 대표팀 역시 평창에서 활약이 기대된다. 스킵 김창민 선수가 이끄는 남자 대표팀은 2017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캐나다에서 열린 부스트내셔널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믹스더블 대표팀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다른 패기로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을 제압할 계획이다. 이기정(22), 장혜지(20) 선수는 스위스에서 열린 믹스더블 월드투어대회에서 4위에 올랐다.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세계 최정상 팀이 모인 대회라 대회 참가 경험이 적은 것치고는 성과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기 전부터 경기를 치르게 된 컬링이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