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올림픽에 마라톤이 있다면 동계올림픽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있다. 스키를 신은 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점에서 마라톤과 비슷해 ‘눈 위의 마라톤’이라 불린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설상종목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이 걸려 있다. 12개의 금메달이 걸린 설상 위 ‘메달밭’에서 활약할 선수는 누굴까?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유래했다. 스키를 신고 평지를 다니던 것에서 비롯돼 스포츠로 발달했다. 크로스컨트리는 노르딕스키의 한 종류지만 다르게 분류된다. 크로스컨트리는 평지와 언덕을 완주하는 종목이고, 공중을 날아오르는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를 합친 복합 경기가 노르딕스키다. 크로스컨트리는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노르웨이 여제 비에르옌 최다올림픽 메달 도전
크로스컨트리는 클래식 주법과 프리스타일 주법으로 나눠 10~30km 코스를 완주하는 경기다. 오르막, 평지, 내리막 코스가 각각 3분의 1 비율로 구성된다. 클래식 주법은 스키를 평행으로 고정시켜 움직이고 프리스타일 주법은 스케이트를 타듯 스키 엣지 부분을 대각선으로 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주행 시간이 길고 체력 소모가 상당해 체력과 인내력, 활주 기술까지 필요하다.
평창에서 열리는 크로스컨트리는 개인, 스키애슬론(추적), 스프린트, 팀스프린트, 매스스타트(단체 출발), 계주 등 6개 종목으로 진행된다. 세부 종목으로 나누면 금메달만 12개라 14개가 걸린 스피드스케이팅 다음으로 많은 메달이 걸려 있는 종목이다.
크로스컨트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는 눈이 많이 오는 북유럽 나라들이다.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로 유명한 러시아도 빼놓을 수 없는 크로스컨트리 강국이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 참가했던 자국 선수들이 도핑 양성 반응을 보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러시아를 국가 차원에서 올림픽 참가 금지 처분을 내렸다. 평창올림픽 출전 자격을 박탈당한 선수 중에는 소치에서 메달을 거머쥔 알렉산드르 레그코프, 막심 빌레그자닌이 포함됐다. 소치 메달리스트의 올림픽 출전이 불발되자 우수한 선수들이 대거 불참해 경기 흥행에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곧 도핑에 문제가 없었던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설상 종목 강국인 러시아 선수들이 평창에서도 맹활약을 펼치게 됐다.
그중 가장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가 러시아의 신성 알렉산더 볼슈노프(21)다. 국제스키연맹(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랭킹 3위에 오른 볼슈노프 선수는 최근 두각을 나타내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세르게이 우스티우고프(25)도 막강한 금메달 후보다. 우스티우고프는 2016~2017 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에서 7차례나 우승을 한 전력이 있다. 두 선수가 평창에서 러시아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노르웨이 마리트 비에르옌 선수 ⓒ연합
여자 선수 중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제’ 노르웨이의 마리트 비에르옌(37)을 주목하자. 비에르옌은 여자 선수 중 메달 10개로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계주 종목에서 은메달을 시작으로 2006 토리노, 2010 밴쿠버, 2014 소치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에르옌이 가장 많은 수의 메달을 거머쥔 때는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이다. 여기서 추적, 개인 스프린트, 계주, 클래식, 프리스타일 종목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해 대회 최다관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어 크로스컨트리 여제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평창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하면 바이애슬론의 올레 에이나르 뵈른달렌을 뛰어넘는 올림픽 최다 메달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한국 크로스컨트리 역사 이채원, 기대주 김마그너스
▶ 이채원 선수 ⓒ연합
우리나라에도 눈여겨볼 만한 여자 선수가 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전설’ 이채원(36)이다. 이채원은 동계체전에서 획득한 금메달만 67개에 이를 정도로 기량이 출중하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부터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이르기까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다. 이채원은 소치에서 치른 30km 매스스타트 프리스타일에서 36위에 오르며 올림픽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2017년 2월 4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여자 스키애슬론 15km에서 46분 2초 7로 12위를 차지하며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도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이채원 개인의 최고 기록이기도 하지만 한국 크로스컨트리 역사상 역대 최고 성적이기도 하다. 이채원에게 평창은 감회가 남다른 곳이기도 하다. 그의 고향이 평창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채원은 다가올 평창올림픽에서 20위권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
▶ 김마그너스 선수 ⓒ연합
김마그너스(19)는 우리나라 크로스컨트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대주다.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마그너스는 크로스컨트리 강국 노르웨이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2015년 4월 어머니 나라로 귀화했다. 이국적인 외모와 다소 어울리지 않게 맛깔 나는 부산 사투리를 쓴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태극마크를 단 이후 국내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 대회를 휩쓰는가 하면 2016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유스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회 2관왕에 올랐다.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크로스컨트리 1.4km 개인 스프린트에서 우승해 우리나라에 최초로 크로스컨트리 남자부 메달을 안기기도 했다. 김마그너스는 지난해 12월 17일 이탈리아 도비야코에서 열린 2017~2018 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남자 15km 추적에서 70위를 기록해 이번 시즌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직은 세계 정상과는 격차가 있는 모양새다. 김마그너스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포디움에 오르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고 평창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평창에서 제대로 사고 한번 치고 싶다”는 김마그너스는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고산지대를 찾아다니며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희망이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