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월 22일, 매년 연장을 결정하도록 돼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현시대에 개인 인권침해 구제청구는 국가정책과 상관없이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므로 일제 징용자들에 대해 가해 일본 기업들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 선고했다. 우리 정부가 이를 집행하려 하자 일본 정부는 부당한 보복 조치로 뜬금없이 무역제재를 가한 뒤, 이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자는 한국 정부의 여러 차례 특사 파견과 외교 대화 시도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런 일본의 부당한 보복 조치와 국가 자존심 무시 행태로 결국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시행하면서 그 근거로 한국을 ‘안보 부문에서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적시한 것은 극비인 2급 이하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지소미아를 사실상 이미 종료시킨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무역제재를 결정한 당일에도 몰염치하게 북한 미사일 정보 제공을 요구했고, 이후 한국 대사에게 무례하게 행동했으며 한국 정부의 특사를 계속 무시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화해 메시지를 발신했는데도 외교 접촉에서 일방통행식으로 자기 입장만 강조해왔다.
이에 정부는 미 행정부에도 지소미아 연장을 바라지만 일본이 한국을 안보 불신국이라 공언하면서 부당한 무역제재를 하는 한 더 이상 최고급 군사기밀을 교환할 수 없다면서 지속적으로 미국의 역할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중재를 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정부는 국가적 자긍심을 지키고 한국의 국익을 위해 국가안보 전략 기조를 재검토하고 비장한 용단을 내린 것이다.
지소미아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가?
일부 국민이 지소미아 종료가 우리의 안보를 저해하고 일본과 갈등을 증폭시키며 한미동맹을 손상하지 않을까 우려하므로 지소미아가 과연 한국 국익에 부합하는지 검토해본다. 무엇보다 이의 종료가 한국의 국가안보를 저해하는지 살펴본다.
먼저 일본이 “화들짝 놀랐다” 하고, 미국이 “우려와 실망”을 표출한 것으로 보아 이들 두 나라에는 지소미아가 매우 필요한 것이었음이 방증된다. 이 협정의 체결 연원도 이를 잘 보여준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우리의 대북 정보가 매우 취약했으므로 우리가 지소미아를 체결하자고 했지만 일본이 거절했다. 그러나 한국이 각종 레이더와 대북 영상 및 감청 장비를 획기적으로 구비하자 2010년경부터는 일본이 이를 강력히 요구했다.
더구나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동북아에서 억지하는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해 레이더 정보 등 각종 군사정보를 실시간 순환시키는 목적의 지소미아 체결을 강력히 압박하고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추진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2012년 6월 절차를 어기면서 이를 은밀히 체결하려다 국민적 저항으로 서명 1시간 전 취소를 통보하기도 했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이를 계속 요구하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가결시키기 직전 상황에서 강력한 압박을 가해 마침내 협상 재개 선언 후 27일 만인 2016년 11월 23일 졸속으로 체결하도록 했다.
문제는 지소미아로 우리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데 있다. 먼저 지소미아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일본 방향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의 탄착 지점 확인 정도에 그친다. 따라서 이의 종료가 한국의 대북 미사일방어 능력을 저하시키지는 않는다. 특히 우리의 정보를 보완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미국과 정보 교류는 실시간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사일 도발의 핵심이 되는 발사 지점과 비행 궤도 등은 한국이 가장 잘 포착할 수 있고, 우리는 독보적인 인간정보(HUMINT)도 일본에 제공하므로 교환되는 정보 가치 면에서 우리의 것이 비대칭적으로 고가인 데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전초병이자 안보상 방패막이가 되어 남북, 한중, 한러 관계가 훼손돼왔다. 최근 북한이 공공연하게 한국이 미국의 말만 따른다면서 자주권을 의심하고, 중국은 지소미아 이전에는 한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대우하다가 현재는 안보상 적대 진영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한미동맹 강화 계기로 삼아야
정부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올바른 방향의 용단을 내렸지만 아직 국제정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미 일변도 외교를 외치는 사람들은 한국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한미동맹을 보다 호혜적인 동맹으로 발전시키고 올바른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안보상 전초병이자 방패막이가 사라진 데다 대북 정보 확보에 큰 불편을 겪게 된 일본의 반발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또 중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한국을 첨병이자 방패로 삼으려던 미국도 실망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베의 몰상식하고 반역사적이며 국수주의적인 행태는 물론이려니와 동맹의 이익을 호혜적으로 누리기보다 독점하려 하고 그에 상응한 책임과 역할은 소홀히 한 미국의 책임도 상당한 것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협상 시 조약 초안에 “일본이 제주도, 거제도,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에 반환한다”고 규정한 조항에서 일본의 로비로 독도를 삭제해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의 빌미를 제공한 미국이 한일 갈등 때마다 제3자 행세를 하거나 사실상 일본을 지원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 책임의 일단이다. 일본에게 공격당해 수많은 미국인을 살상당한 미국이 일본의 굴욕적인 아부와 과공에 역사를 잊고 어느새 친일 기조의 태도와 인식에 젖은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당당하지만 대미 우호적인 자세로 올바르고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먼저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티사)을 더욱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가동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은 적절히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또 전작권 전환을 준비하고 미국이 우리를 방기할 경우에도 의연하게 감당할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 건설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한미동맹이 중국을 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우리는 새롭고 창의적인 국가안보 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더 큰 과제는 지소미아 종료를 한중, 한러,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살리되 이것이 한미관계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수십 년 후라면 모르지만 한국의 국가전략에서 아직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국력 면에서 그렇고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 면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정부는 호혜적인 한미동맹을 발전시키고 강화하며 한미일 안보협력도 적절히 확보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고, 이런 우리의 의도가 부당한 일본의 대한(對韓) 불신 및 보복조치 때문에 좌절되고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아직 지소미아 유효기간이 석 달가량 남아 있으므로 그간 한미가 협력해 일본의 부당 조치가 취소되면 우리가 외교 협상을 통해 한일관계를 회복할 의지가 있고, 그럴경우 지소미아 연장도 가능하다고 미국에 설명하면서 미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유도해야 한다. 또 아베에게 일방적 승리를 거두려 하기보다는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원상 복구하면 지소미아를 연장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아베가 체면을 지키면서 후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현명하다.
우리 국민 모두가 일본산은 먹지도 입지도 타지도 않고, 일본 여행을 자제함으로써 단합된 모습으로 정부에 힘을 보태주며, 정부는 한미 우호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동시에 북핵문제 해결 과정을 적극 지원하고 한중관계 개선을 모색하며 일본과도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의연하면서도 실용적이고 유연한 외교 전략을 추진한다면 현재의 외교적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활력 있게 재가동시키면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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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