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참벗보호작업장, 녹음이 짙은 풀밭 위로 삼삼오오 모여 있다. 그들 중 꽃잎을 매만지던 사람이 따뜻한 차를 건넸다. 차 위로 둥둥 떠 있는 작고 노란 꽃을 보고만 있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손현수(왼쪽), 박선영 씨가 말린 꽃잎을 든 채 웃어 보이고 있다. ⓒC영상미디어
“꽃차예요. 먼저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은 뒤 입으로 맛을 보세요.”
자신을 ‘꽃차 소믈리에’라고 소개한 손현수 씨가 꽃차를 더 맛있게 마시는 방법이라며 권했다. 손현수 씨는 매주 평일 참벗보호작업장을 오가며 꽃차 만들기를 배운다. 그게 뭐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 싶지만 그에겐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손 씨는 3급 발달장애인 꽃차 소믈리에다. 대개 와인을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사람을 두고 소믈리에라고 하듯, 꽃차 소믈리에는 꽃차의 색과 향, 맛을 분별하는 전문가다. 꽃차의 원료와 관련한 정보 습득은 기본이고 재배·보관법도 익혀야 한다. 암기나 습득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럼에도 손 씨는 비장애인과 겨루는 꽃차대전에서 두 번을 수상한 실력파다.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손 씨는 6년째 참벗보호작업장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이곳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일반 사업장에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언젠가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장경언 선임 직업훈련교사는 “개인마다 장애 수준과 특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거기서 나온 자체 생산품을 판매한 금액을 월급 개념으로 지급하는 등 생산적인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가공 작업부터 체험학습장까지 다양한 활동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꽃차 소믈리에 프로그램은 장애인의 생활리듬에 보다 맞출 수 있는 교육이라고 한다.
장경언 교사에 따르면 장애인 꽃차 소믈리에가 채용된 사례는 없다. 장애인이라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꽃차 소믈리에 시장 규모 자체가 작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음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꽃차 소믈리에 시장은 성장할 것이고,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도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교육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애인이 전문적으로 삼을 수 있는 직업이 없어요. 장애인 바리스타가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어느 정도 있는 편이지만 지적장애인에게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바리스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우리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그게 꽃차 소믈리에였어요. 씨앗을 뿌리고 거둔 꽃잎으로 차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장애인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고 판단했거든요. 또 꽃을 하루 늦게 딴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조금 느려도 돼요.”
▶ 꽃잎 위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꽃차가 된다. ⓒC영상미디어
꽃차대전 수상 경력, ‘무지개 꽃차’로 희망을
꽃차 소믈리에 분야에도 자격증이 있다. 가장 아래 단계인 2급부터 1급, 준특급, 특급까지로 구분된다. 2급은 일정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취득할 수 있지만 1급부터는 필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많은 시간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참벗보호작업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보통 2급을 따는데 그 또한 노트 서너 권을 빽빽하게 쓰고 읽어야 해요. 하루에 한 장 분량의 숙제를 내줘도 열 번 이상의 필기와 암기가 필요해요. 암기는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잖아요. 그런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딴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해당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한 2014년부터 이곳에서 양성한 장애인 꽃차 소믈리에는 20명. 한국꽃차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명품꽃차대전’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박선영 씨는 2016년 열린 대회에서 단체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3급 발달장애인인 박선영 씨에게 수상은 잊지 못할 기억이다. 당시 기분을 묻자 “정말 좋았어요”라고만 간단하게 답했지만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세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는 않아도 꽃차를 좋아하는 그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대신 장경언 교사가 대회 당일 이야기를 전했다.
“저희가 넉넉하게 공부를 시켜준 것도 아니고 고된 과정을 반복했으니 힘든 점도 있었을 겁니다. 대회가 오전에는 꽃차 세팅을, 오후에는 세팅한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이에요. 그날 세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친구들이 긴장해서 밥을 잘 못 넘기더라고요. 정말 진심을 다해 임하고 있다는 거였죠.”
박 씨를 포함한 이곳 꽃차 소믈리에들에게 꽃차 만들기는 일상이자 취미 그리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의 하나가 됐다. 참벗보호작업장이 교육을 통해 지향하는 점이다.
“2016년 꽃차대전에선 은상을 수상한 친구들의 꽃차 테마가 ‘무지개 꽃차’였어요. 일곱 빛깔로 희망을 그렸거든요. 우리 장애인들에게 꽃차 소믈리에는 그런 의미예요. 희망이요. 한 전문가로서 사회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비장애인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