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성이란 무엇일까. ‘나’라는 존재의 주위를 둘러싼 관계의 힘, 그 힘을 통해 내가 얼마나 힘을 얻는가에 따라 친밀성의 강도는 달라질 것이다. 현대인이 친밀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직장이나 학교처럼 조직생활을 함께하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옛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친척(親戚)’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들이었다. 마을 자체가 비슷한 성씨들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설날이나 추석은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한꺼번에 보충할 수 있는 잔칫날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친척은 그야말로 친밀성은 부족한데 의무감만 강한 관계가 돼버린 것 같다. 또 명절 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사람도 친척일 경우가 많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 취직은 했느냐, 대학은 어디로 정했냐는 식의 뻔한 질문들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던지는 마음의 독화살’이 돼버린다.
어떻게 하면 저마다 행복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보람찬 설날을 보낼 수 있을까. 먼저는 조금씩 서로의 오래된 습관을 양보하는 것이다. 남녀노소 모두 조금씩 돕는 더 간소하고 소박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것부터가 새로운 명절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과감하게 함께 여행을 떠나는 집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가족이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명절=여행’의 등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우리 집 경우는 차례 음식을 대폭 줄이고, 전이나 부침개 종류는 우리가 시장에서 사가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모두가 ‘다음 세대엔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것에 동의하는 눈치고, 부모님도 기력이 쇠하면서 ‘명절=차례상 차리기’가 아니라 ‘명절=오랜만에 다 모이는 행복한 가족 모임’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도 언젠가 모두 함께 설날에 훌쩍, 과감하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꿈을 꾸고 있다.
설날을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는 최고의 방법은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명절 내내 가족과 붙어 있지는 않으니까 나머지 시간을 텔레비전 보기나 낮잠으로 허비하기보다는 ‘혼자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다. 업무가 잔뜩 밀려 있을 때는 미처 꿈도 꾸지 못한 것들, 예를 들어 미술관에 그림을 감상하러 간다든지, 콘서트홀에 가서 좋아하는 음악에 푹 빠진다든지, 일 때문이 아니라 정말 내가 꼭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아예 전화를 꺼놓고 긴 책을 하루 종일 읽어보는 독서삼매경의 호사를 누려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리게 되면 우리가 명절이나 휴일에 더 커다란 결핍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날이면 더 풍요롭고 더 희망차고 더 눈부신 새해의 시작을 꿈꾸는 우리 마음 때문에 사실은 어제와 똑같고 날짜만 바뀌었을 뿐인 설날이 더 깊은 정서적 결핍을 느끼게 한다. 가족과 친척들의 ‘결혼해라’, ‘취직해라’는 아우성 때문에 짜증나고 지치더라도 조금은 이해해주자. 아직 우리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여주는 가족 때문에 외로울 겨를도 없는 우리 자신의 ‘붐비는 일상’에서 축복과 감사를 느껴보자. 그리고 나보다 더 외로운 이웃, 나보다 더 춥고 아픈 사람들의 설날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더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발걸음을 시작해보자.
정여울│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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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