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2월입니다. 대개 2월을 기다리는 이유는 설이 있기 때문이지요. 형제들과 조카들이 모두 부모님 댁에 모이는 때거든요. 올해 2월은 좀 더 유난스럽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달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가슴 설레며 기다렸답니다.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냐고요? 아뇨. 스키는커녕 스케이트도 탈 줄 모릅니다. 음식 솜씨가 좋아서 설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잖아요. 형제들 얼굴도 보고 조카들에게 세뱃돈도 줄 수 있어서 설이 좋은 것처럼 올림픽도 마찬가지예요. 손님들이 몰려온다니까, 그것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온다니까 설레는 것이지요.
벌써 30년 전이네요.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가 말입니다. 사실 참혹한 시절이었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영화 ‘1987’의 배경도 바로 그때지요. 하지만 우리는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어요. 아직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떠나지도 못할 때였잖아요.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나라를 알게 되었지요. 저는 그때야 비로소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인종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1988 서울올림픽은 검은9월단의 테러 참사가 일어난 1972 뮌헨올림픽, 인종문제로 아프리카 26개국이 보이콧한 1976 몬트리올올림픽, 자유진영의 국가들이 거부했던 1980 모스크바올림픽과 공산진영 국가들이 거부했던 1984 LA올림픽 이후에 처음으로 온 세계 사람들이 모인 평화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한동안 ‘88올림픽’과 ‘호돌이’가 입에 붙어 있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북한만은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그땐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아쉽지도 않았지요. 감히 북한이 남한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참가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거든요. 우리나라가 개최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 북한이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 때부터였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아리따운 북한 응원단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그 이후로 남북 관계는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역시 스포츠는 평화로 가는 관문인 것 같아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성탄절 무렵 영국군과 독일군은 잠시 비공식 휴전을 하고 축구시합까지 했잖아요. 또 미국과 중국의 수교도 핑퐁외교로 시작되었고요.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나요? 최근 몇 년 동안 남북 관계는 극도로 나빴지요.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로 전 세계적인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고요. 전쟁 공포로 2018 평창올림픽 참가를 주저하는 선수가 많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북한이 극적으로 참가를 결정했기 때문이지요. 남과 북은 개막식에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여자 하키는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했거든요. 온 세계가 안심하게 된 것이지요. 평창올림픽은 남과 북 사이에 새로운 대화가 열리고, 국제적인 긴장이 잠시나마 누그러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요즘 20~30대는 평창올림픽과 남북 단일팀에 대해 시큰둥하다지요. 1988 서울올림픽 때 저도 그랬습니다.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젊은 세대도 수호랑과 반다비를 좋아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호돌이를 좋아했던 것처럼요. 이 추운 2월에 우리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만큼 세상은 평화로워지겠지요. 평창은 평화를 여는 도시로 세계인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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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