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진, 김동섭, 문일승, 김교영, 이두화, 서옥렬, 허찬형, 양원진, 최일헌, 박정덕, 박순자, 오기태, 박종린, 김영식, 강담, 박희성, 양희철, 이광근 그리고 김동수. ‘비전향 장기수’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이들의 평균 나이는 87세다.
이들은 사상이나 이념을 꺾지 않았다는 이유로 짧게는 3년, 길게는 37년을 갇혀 지냈다. 19명의 복역 기간을 합치면 384년에 이른다. 이들은 수감 생활을 마친 뒤에도 ‘빨갱이’라는 낙인과 생활고, 지병 등으로 고통받아왔다.
10월 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 전시회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귀향(歸向)’은 이들 19명의 얼굴을 오롯이 담았다. ‘이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목 중 ‘귀향’에 ‘시골 향(鄕)’ 대신 ‘향하다 향(向)’ 자를 썼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잊힌 비전향 장기수들의 구술을 기록하고 초상과 일상을 담아온 정지윤 작가의 결과물이다. 정지윤 작가는 23년째 경향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다. 작가는 3년 전 비전향 장기수 고 허영철의 삶을 담은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어느 혁명가의 삶’을 읽은 뒤, 비전향 장기수 작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지난여름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 19명을 한 달여에 걸쳐 만났다. 이들 대부분은 오랜 수감 생활을 마친 뒤 정착할 고향과 가족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생계급여와 노령연금에만 의존해 노년을 보내고 있다.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지워져버린 비전향 장기수들의 구술을 기록하고 초상과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검은 막 앞에 서거나 앉은 채 초상 사진을 찍었다. 더러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로, 환자복을 입고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로 나섰다. 검은 막과 흰 머리칼, 형형한 눈빛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잊힌 사람들이었다. 분단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기억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들은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바꾸지 않고 버텨왔다. 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가족이 있는 고향, 즉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사상전향제도’는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의 권리를 폭력적으로 억눌렀다.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가석방이 아예 불가능했다. 사상전향제도의 ‘원조’였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이를 폐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50년 넘게 존속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야 사상 전향 대신 준법서약서를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상전향제도가 폐지되고 2000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은 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차 송환 당시 미처 신청을 못했거나, 과거에 강제로 전향서를 썼던 30여 명은 한국에 남아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15명이 세상을 떠났고, 올해 또 김동수 씨가 사망했다.
작가는 작업 노트를 통해 “그들은 역경을 이겨낸 만큼 강했고, 풍파를 겪고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담담하게 전해준 그들의 증언은 ‘화석에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듯’ 생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