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제시된 신남방정책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 등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동남아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아세안 국가들은 성장잠재력이 크고 외교 다변화를 위한 전략적인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11월 마닐라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을 발표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 실현을 신남방정책의 정책목표로 제시했다. 또 사람(people) 중심의 국민 외교, 국민이 안전한 평화(peace) 공동체, 더불어 잘 사는 상생협력(prosperity)을 주요 협력 전략으로 설정하고 아세안 국가들과의 다각적인 협력 기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사람–평화–상생의 신남방정책
이와 같이 신남방정책의 3P(People, Peace, Prosperity)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2020년까지 한·아세안 교역 목표액을 2000억 달러로 설정했다. 2018년 한국의 대동남아 수출은 1002억 달러, 수입은 596억 달러로 교역 규모는 1598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에 이어 2대 교역 대상국인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역은 이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과의 교역을 크게 넘어섰다. 한국의 전 세계 수출액 6052억 달러(2018년) 가운데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이르고, 우리의 흑자 규모는 406억 달러를 기록해 아세안은 한국에게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다.
최근 미중 간의 통상마찰이 확대되면서 G2 리스크가 높아짐에 따라 동남아 시장은 최대 수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생산기지로서 아세안 생산 네트워크는 생산의 집적과 집중을 통해 비용을 절감시키고, 포스트 차이나로서 외국인 직접투자가 확대되면서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대중 투자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한국 해외 직접투자의 2대 투자 대상지로 부상한 동남아는 제조업의 해외 생산기지로 손색이 없고, 수직적 분업체제 아래서 흑자 규모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되면서 최대 수혜 국가는 베트남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이라 할 수 있고,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우리 기업의 투자는 건설·유통 등 서비스시장 진출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흑자는 동남아 현지에서 투자 마찰 요인을 증대시키고 상생협력과 동반성장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어 다양한 협력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세안 주요국의 산업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음을 감안해 공정 간 분업과 기술 이전으로 현지의 생산 역량과 성장 기반을 체계적으로 지원해나가야 한다. 현지 진출 기업들도 저임노동력 활용에 안주하지 말고 글로벌 생산기지로서 아세안 생산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글로벌 보호주의에 공동 대응하고,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간(G2) 대결 구도에서 탈피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주변 4강 수준으로 격상하고자 적극적인 정상외교를 추진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베트남 국빈 방문을 통해 한·베트남 미래지향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소재산업 육성, 전자산업 지원, 에너지, 스마트도시, 인프라 등 23개 분야의 구체적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한·필리핀 정상회담(2018년 6월)에 이어 현지 방문을 통해 한·인도, 한·싱가포르 정상회담(2018년 7월)을 추진했고, 2018년 9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한한 바 있다. 신남방정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정부는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2018년 8월)를 출범시키고 범정부 차원의 이행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상호 간 수요에 기반한 실질협력 강화 방안을 수립 중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알릴 기회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맞이해 올해 말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된다. 또한 아세안 역내 개발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도 연이어 열린다. 태국을 포함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급성장하고 있는 메콩강 유역 국가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협력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개발과 공업화 초기 단계에 있는 아세안 역내 저개발국의 성장 기반 확충과 개발 격차 완화 노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무역, 투자, 기술이전,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연계한 종합적인 지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3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아세안 대화 조정국을 맡고 있는 브루나이를 포함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차례로 방문하는 아세안 3국 순방길에 올랐다.
한·말레이시아 60주년을 앞두고 마하티르 총리와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캄보디아 훈센 총리와도 양국 현안은 물론 올해 말 한국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정상 차원의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아세안 3개국 방문은 신남방정책에 대한 아세안 주요국의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를 만들고,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첫 순방인 만큼 아세안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과 노력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서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최근 제시된 신한반도 체제 구상이 아세안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보다 포용적인 협력 비전으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한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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