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의 팝아트 전시 ‘하이 팝(Hi, POP)-거리로 나온 미술, 팝아트’ 전이 서울 강남구 M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버트 인디애나,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전시는 규모 면에서 역대급이다. 그간 국내에서 열린 팝아트 전시 중 작품 수가 가장 많다. 팝아트의 거장으로 불리는 굵직한 다섯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무려 157점.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데다 밝고 경쾌한 팝아트의 매력이 알려지면서 전시 오픈 초반인데도 화제성이 매우 높다. 일상을 미술로 승화시킨 팝아트의 기조에 부응하듯, 미술에 조예가 깊은 전공자부터 일반인까지 각계각층의 관람객들이 전시를 즐기고 있다.
▶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시리즈가 벽을 채우고 있다. ⓒC영상미디어
▶ 갤러리 외벽의 팝아트 작품이 전시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전시가 열리는 곳은 최근 주목받는 갤러리로 급부상하고 있는 M컨템포러리다. 르 메르디앙 서울 호텔 1층에 위치한 현대미술 전용 미술관으로, 외관을 팝아트 작품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로 꾸며놔 갤러리를 방문하기 전부터 기분을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넓은 전시 공간에 카페, 레스토랑 등의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곳이다. 호텔과 연계되어 있어 미술관 문턱이 낮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일상이 예술이 된다는 팝아트의 기조가 미술관에도 통하고 있는 셈이다.
▶ 곳곳에 팝아트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전시의 시작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이다. ⓒ조선DB
기자가 취재차 방문한 시간이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관람객들이 꽤 많았다. 이사비오 큐레이터는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관람객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입소문이 많이 났다”면서 “수능이 끝나고 미술관을 찾는 학생들의 수가 늘었는데, 빅뱅의 승리가 오디오 가이드에 참가한 것이 홍보 효과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는 빅뱅의 승리와 함께 평소 예술 애호가로 알려진 배우 유준상이 재능 기부를 했다. 편안한 음성으로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두 사람의 오디오 버전을 비교하며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전시 구성은 작가별로 되어 있다. 팝아트라는 하나의 장르지만 작가별로 작품 스타일을 비교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꾸며졌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로 시작해서 로이 리히텐슈타인, 키스 해링, 로버트 인디애나, 앤디 워홀 순이다. 작가별로 공간에 스토리를 입힌 것이 특징이다. 키스 해링 전시장은 뉴욕의 지하철역처럼 연출했고, 앤디 워홀의 공간은 작업실 팩토리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은색 벽으로 구성했다. 노란 바나나를 활용한 새로운 공간 아트도 시도하고 있고, 전시의 마지막에는 앤디 워홀의 작업실에서 착안한 실크스크린 체험 공간을 마련해 이용자 중심의 전시를 완성했다.
▶ 1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 연작 2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 3,4,5,6 체험 공간인 ‘프린트 팩토리’에서는 앤디 워홀이 즐겨 사용했던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원하는 에코백을 만들수 있다. ⓒC영상미디어
작품 수가 많은 만큼 작가별 대표 작품도 충실하게 선보이고 있다. 키스 해링이 에이즈 판정을 받은 후 그린 ‘종말’ 연작은 국내 처음 전시되는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시대의 편견을 깬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즐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으니, 미술관을 방문할 때는 시간 여유를 두는 것이 좋겠다. 현대미술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이번 전시는 4월 15일까지 열린다.
전시 정보
일시 4월 15일까지
장소 르 메르디앙 서울 1층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요금 성인 1만 6000원, 학생 1만 2000원, 유아 8000원(36개월 이상)
시간 평일 오전 11시~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휴관 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
◎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로 잘 알려진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망점을 찍어 음영 효과를 내는 ‘벤 데이’ 기법으로 유명하다. 만화가 감정이나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방식이 비인간적이라고 여긴 그는 만화의 형식적인 특성을 적극적으로 변형해 인식의 변화를 이끌었다. 원본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재구성하고 말풍선은 작가의 말로 대체하면서 유머를 예술의 언어로 변모시켰다. 우는 여인, 금발 여인 등 리히텐슈타인이 즐겨 그린 만화 속 여성 연작을 비롯해 전쟁을 주제로 한 ‘꽝!(Whaam!)’ 시리즈, 피카소, 마티스, 몬드리안 명화를 소재 삼은 작품들이 소개된다.
◎ 앤디 워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그간 몇 차례 국내에서 개인전이 열려 한국에서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궤적을 남긴 팝아트의 전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릴린 먼로 시리즈, 양귀비, 대중스타, 캠벨수프 등 많은 작품이 소개된다. 뉴욕 맨해튼 이스트 47번가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팩토리’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체험 공간 ‘프린트 팩토리’에서는 앤디 워홀이 즐겨 사용했던 실크스크린으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가 담긴 에코백을 만들어 가져갈 수 있다.
◎ 로버트 인디애나
이번에 소개되는 작가들 중 유일한 생존 작가로, 현재 89세다. 가장 유명한 팝아트 작품으로 손꼽히는 ‘LOVE’는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의뢰한 크리스마스카드에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 조각으로 만들어지면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현재 ‘LOVE’ 조각은 뉴욕 맨해튼 6번가를 비롯해 일본, 싱가포르, 타이베이, 예루살렘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대단한 수사보다는 누구나 아는 일상과 이야기에 주목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전시장도 그의 집을 재현해 편안한 소파와 가구들로 꾸며져 있다.
◎ 로버트 라우센버그
유명 인사의 얼굴과 신문, 사진을 프린팅한 작품들이 친숙하다. 일상의 사물과 신문, 잡지, TV 속 이미지를 버무린 ‘콤바인 페인팅’을 창안한 그는 주로 삶과 예술의 틈새 작업으로 유명한데 물감을 흩뿌린 침대를 미술관에 걸어 소비 사회를 풍자하기도 했다. 자유, 정의, 인권 등 대사회적 발언에 앞장선 그가 1990년 베를린 장벽을 주제로 발표한 ‘ROCI, 베를린’과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도움을 호소하는 ‘지지(Support)’ 포스터, 예술적 교감을 나눈 존 케이지에 경의를 표한 ‘케이지’가 눈길을 끈다.
◎ 키스 해링
키스 해링의 전시장은 뉴욕 지하철역처럼 꾸며져 있다. 지하철 빈 광고판에 검은색 마커펜으로 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원색의 화면 구성, 만화 주인공처럼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는 형상으로 어린이 미술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는 괴물, 해골, 마약, 원자력,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메시지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가다. 에이즈 판정을 받은 후 그린 ‘종말’ 연작은 국내 처음 전시되는 해링의 역작이다. ‘팝의 교황’으로 불린 앤디 워홀과 미키 마우스를 합성해 만든 ‘앤디마우스’란 그림 역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임언영│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