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저물고 무술년 황금개띠 해가 밝았다. 2018년은 2월 평창동계올림픽과 3월 평창동계올림픽, 6월 러시아월드컵,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지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해다. 그래도 야구가 빠지면 서운하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열린 2016년에도 프로야구는 800만 관중 시대를 여는 등 어떤 변수나 외풍에도 굳건한 인기를 유지, 명실공히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 올해에도 메이저리거들의 대거 복귀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KBO리그, 류현진(LA 다저스)과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코리안 빅 리거’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는 메이저리그, 그리고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3연패 도전에 나설 아시안게임까지 다양한 야구 잔치가 벌써 야구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돌아온 3인방, KBO리그 지각 변동 예고
2018시즌 KBO리그는 질적인 면에서 최상급의 리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김현수(LG 트윈스), 황재균(kt 위즈)이 모두 복귀했고, 투수 쪽에서도 지난해까지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했던 팀 아델만(삼성 라이온즈) 등 수준급의 외국인 선수가 다수 영입됐기 때문이다.
박병호, 김현수, 황재균 등 해외파 3인방은 미국 내 좁아진 입지로 잔류 고민 끝에 국내 유턴을 결정했다. 그러나 KBO리그에서 이들의 네임 밸류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현수는 역대 자유계약선수(FA) 야수 최고액인 4년 총액 115억 원(계약금 65억 원)에 친정 두산의 옆집 LG 유니폼을 입었고, 황재균도 부산을 떠나 수원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박병호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이승엽(은퇴) 이후 국내 최고의 슬러거다.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4년 연속 홈런왕에 오르며 KBO리그를 지배했다. 같은 기간 529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4리, 173홈런, 492타점을 기록했다. 2012년 31홈런, 105타점을 시작으로 2013년(37홈런-117타점), 2014년(52홈런-124타점), 2015년(53홈런-146타점)까지 4년 연속 홈런과 타점 1위를 석권했다. 2년 연속 50홈런은 리그 최초였고, 4년 연속 홈런왕과 타점왕을 석권한 것도 박병호뿐이었다.
박병호가 떠난 뒤 KBO리그 홈런왕은 2년 연속 최정(SK 와이번스)의 차지였다. 타점은 2016년 최형우(144타점·KIA 타이거즈), 지난해 다린 러프(124타점·삼성 라이온즈)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박병호의 가세로 홈런왕과 타점왕 경쟁은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2018시즌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가 추가된 셈이다.
김현수는 ‘타격 기계’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정교한 타격과 선구안을 보유하고 있는 타자다. 황재균 역시 2016시즌 20홈런, 20도루를 기록할 만큼 파워와 빠른 발을 겸비한 호타준족이다.
마운드에서는 외국인 얼굴들의 대폭 변화가 있었다. 두산에만 7년간 몸담으며 KBO리그를 호령했던 더스틴 니퍼트와 에릭 해커(전 NC 다이노스)는 원 소속팀과 재계약이 불발된 뒤 시장에 나왔지만 타 구단의 관심 밖에 놓이며 재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구단이 ‘젊고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건강한 투수’를 영입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과 결별한 두산은 세스 후랭코프와 조쉬 린드블럼을 데려갔고, 그간 이름값에 기댔던 한화도 키버스 샘슨과 제이슨 휠러를 영입해 몸집을 줄였다. 롯데는 린드블럼의 자리를 좌완 펠릭스 듀브론트로 채웠고, 반등을 노리는 삼성은 신시내티 레즈의 선발 아델만을 데려갔다. 넥센은 한화에서 뛴 적 있는 에스밀 로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구단별로 남은 자리도 새로운 얼굴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투수의 비중이 절대적인 KBO리그에 수준 높은 투수들이 수혈된 만큼 기존 토종·외인 투수들과의 타이틀 경쟁도 불을 뿜게 됐다.
지난해 12월 22일 일시 귀국한 맏형 추신수가 이제 미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야수다. 투수 류현진, 오승환까지 단 3명만 조촐한 한국인 식구로 남게 됐다. 최대 7~8명이 동시에 메이저리그를 누비기도 했던 한국 선수들과 메이저리그 팬들에겐 아쉬운 현실이다.
남은 3인방, 코리안 빅 리거의 자존심
하지만 3명에게 거는 올 시즌 기대치는 어느 때보다 높다. 팔꿈치와 어깨 수술 뒤 지난해 복귀 시즌을 치른 류현진은 25경기에 등판해 126⅔이닝을 소화, 5승 9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77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재활을 알렸다. 전성기였던 2014년 이후 3년 만에 100이닝을 돌파했고 후반기에는 11경기 평균자책점 3.17로 내년 시즌 전망을 밝혔다. 부상도 말끔히 털어냈지만 올 시즌을 마치면 류현진은 FA 자격을 얻는다. 또 1월 5일 결혼도 앞두고 있어 여러 면에서 동기 부여가 확실한 해다. 때마침 미국의 통계사이트도 류현진의 올 시즌 10승 가능성을 바라봤다. 메이저리그의 통계 분석 프로그램 ‘뎁스차트’는 최근 류현진의 내년 시즌 성적을 10승 8패, 평균자책점 3.98로 예상했다. 아울러 올해보다 많은 141이닝을 소화, 4년 만에 10승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통계 프로그램인 ‘스티머’는 9승 7패에 평균자책점 3.98을 예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쟁의 연속이다. 다저스는 현재 클레이튼 커쇼, 리치 힐, 알렉스 우드 세 명의 선발만 자리가 확고하고, 나머지 자리는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 류현진은 마에다 겐타, 브랜든 맥카시, 스캇 카즈미어와의 경쟁뿐만 아니라 밑에서 올라올 젊은 선수들의 도전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다저스가 선발진 구성과 관련해 아래로 눈길을 돌린 것은 구단 안팎으로 복합적인 사정이 작용한 결과다. 외부에는 마땅한 선발 자원이 없고, 내부로는 사치세 한도와 구단 빚이 연간 순수익의 12배를 넘지 못하게 한 메이저리그 규정 때문이다.
2018년은 추신수에게도 중요한 해다. 텍사스와 맺은 7년 계약의 네 번째 시즌을 끝냈다. 이제 세 시즌이 남았다. 추신수는 귀국 인터뷰에서 “매년 잘하려고 한다. 베스트는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한 것 같다. 매년 잘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추신수 역시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추신수는 개인적인 욕심보다 우승에 대한 간절함을 피력했다. 그는 “남은 3년은 내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더 잘 뭉쳐서 내년 시즌에는 포스트시즌에 가고 싶다. 텍사스가 나를 데리고 있는 이유도 알고 있다. 계약기간 끝나기 전에 우승을 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팬그래프닷컴이 예상한 추신수의 올 시즌 성적은 타율 2할5푼6리에 17홈런, 58타점, 8도루다. 지난 시즌(0.261, 22홈런, 78타점, 12도루)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성적인데 나이와 부상 경력 등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추신수는 “선수들은 그 수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반응했다.
오승환에 대한 전망도 나쁘지 않았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오승환은 올 시즌 60경기 모두 불펜투수로 나선다. 좌완 브렛 세실(66경기) 다음으로 가장 많은 등판이다. 58⅓이닝을 소화하면서 242명의 타자를 상대해 24실점에 22자책점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평균자책점은 3.39. 그리고 탈삼진 63개에 53개의 피안타, 7개의 피홈런, 14개의 피볼넷 등 전체적으로 좋은 성적이다. 세인트루이스에 남는다는 가정이지만 오승환은 새로운 팀과 계약을 물색 중이다.
▶ 1 오승환 2 박병호 3 추신수 ⓒ연합
▶ 4 김현수 5 황재균 ⓒ연합 6 류현진 ⓒ뉴시스
선동열 감독의 손에 달린 아시안게임 3연패
한국 야구 첫 국가대표 전임 감독으로 발탁된 선동열 감독은 2017년 11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선 감독의 눈은 이미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으로 향하고 있다. 최종 목표가 2020년 도쿄올림픽이라면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펼쳐지는 아시안게임은 중간 기착지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도쿄올림픽을 2년 앞둔 가운데 타국에서 치러지는 국제대회라는 점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일본 대표팀의 경우 아시안게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나선다. 이번에 상대한 일본 대표팀보다는 한 단계 이상 격이 떨어진다. 반면 최근 국제대회에서 한국에 번번이 패한 대만은 ‘타도 한국’을 외치며 최정예 대표팀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선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대표팀과 같이 젊은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할 수는 없다. ‘반드시 우승’이라는 목표하에 KBO리그까지 중단된 채 대표팀이 꾸려지기 때문이다. 선 감독도 아시안게임에서는 세대교체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따라서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연령과 무관하게 리그를 호령하는 대형 선수들과 더불어 젊은 선수들이 혼재되는 구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1 지난해 11월 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한국과 일본의 경기. 9회말 1사
상황에서 선동열 감독이 김윤동을 격려하고 있다.
2 11월 19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선동열 감독이 선수단 소개 때 인사 하고 있다. ⓒ연합
아시안게임은 한국 야구가 르네상스를 연 전기를 마련한 대회였다. 프로 선수의 참가가 처음으로 허용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메이저리거 박찬호(당시 LA 다저스)를 필두로 국내외를 망라한 최정예 대표팀을 꾸려 8전 전승으로 첫 금메달을 일궜다. 엔트리 전원을 군 미필자로 꾸리고도 금메달을 따낸 덕에 모두가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2002년 안방에서 열린 부산대회에서도 한국은 이승엽을 앞세워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은 옥에 티였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된 대만, 사회인 야구 선수로 꾸린 일본에 잇따라 패해 동메달에 머물렀다. 절치부심한 한국은 조범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되찾아왔다. 도하 때 뽑히지 못했던 추신수는 5경기에서 홈런 3방을 포함해 타율 5할7푼1리(14타수 8안타)에 11타점으로 맹활약하며 대회 최고 스타로 활약했다.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은 추신수는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선 류중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천신만고 끝에 금메달을 지켰다.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서 발견한 것이 어린 선수들의 가능성이라면 이제 선 감독에게 주어진 사상 첫 3연패 희망은 밝다. 선 감독은 “앞으로 대표팀을 선발할 때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 절실한 마음이 있는 선수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대표팀에 선발된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고 대회 일정에 맞춰 컨디션을 관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도 선 감독이 얻은 교훈이다. 그는 “국가대표라면 대표팀 훈련이 개시되기 전에 개인적으로 몸을 만들고 대회를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2018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를 5월 말 발표해 선수들이 스스로 몸 상태를 관리하도록 할 생각”이라며 태극마크를 달 선수들에게 책임감도 당부했다.
성환희│한국일보 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