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선 할아버지 ⓒC영상미디어
최영선 할아버지 역시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이다. 6·25전쟁 당시 홀로 남한으로 내려왔다. 최 할아버지는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크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북한에 남은 가족과 친척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최 할아버지는 단 한 명의 생사라도 알 방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할아버지도 북한에 남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해보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했다. 최 할아버지는 “피난해 남한으로 내려온 후 고향에 살던 가족이 어느 순간 완전히 흩어져버린 것 같다”며 “여러 사람에게 부탁해 가족의 행방을 수소문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가족과 친척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기자에게 설명하는 최 할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최 할아버지는 “지금은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 찾는 일을 멈춘 상태”라며 “아쉽다”고 말했다.
최영선 할아버지는 “68년을 떨어져 살았는데 손 한 번 잡아보고, 얼굴 한 번 맞대고 문질러보고 싶은 게 당연한 심정일 것”이라며 “그런데 여전히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이산가족과 실향민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최 할아버지는 68년 전 헤어져 북한에 남겨진 누이동생을 한국에 있는 자신의 호적에 올려놓았다. 살아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최 할아버지는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북한 측이 확인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 정부와 북한 측이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만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가 이제는 고령이 된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바람을 귀담아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조동진│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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