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18년에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들 가운데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나라가 몇 안 되기 때문에, 이른바 ‘30-50 클럽’(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한국)에 대한 최근의 언론 보도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이 다른 ‘30-50 클럽’ 국가들과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군에 속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의 경제적 성공은 괄목할 만한 것이다.
한국이 이렇듯 짧은 시간에 외형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이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질 측면에서 경제·사회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삶의 질 측정에 활용하는 총가처분소득(gross adjusted household disposable income)을 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는 달리 한국과 ‘30-50 클럽’ 국가들의 격차가 존재한다. 총가처분소득은 가계소득과 정부 이전지출(정부가 가계에 제공하는 사회보장급여 및 현물이전)을 합한 것인데, 한국의 정부 이전지출의 GDP 비중이 OECD 국가들 중 낮은 편이다. 선진국에 비해 한국 연금제도의 저변이 넓지 않은 데다, 일반적인 복지지출 역시 선진국보다 수준이 아직은 낮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 역량 강화하는 재정투자를
삶의 질 측면에서 한국과 선진국 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은 경제·사회 세부 지표에서도 보인다. OECD가 발표하는 한국의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발표된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의한 한국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OECD 국가들 중 중위권에 속한다. 상하위 간 소득 격차도 낮지 않은 편인데, 임금 10분위 배율(10분위 임금을 1분위 임금으로 나눈 값)이 199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현재 미국과 함께 OECD 국가들 가운데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더해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일자리 문제가 대두되고 출산율이 낮다는 점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OECD 국가 대부분이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지만,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빨라서 2018년 14.5%인 노령화지수(65세 이상 인구 비중)가 불과 12년 후인 2030년에 24%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직면한 이런 다양한 경제·사회적 도전은 세 가지의 형태로 재정정책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첫째, 경제 활력과 성장 잠재력의 제고를 위해서는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성을 증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형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OECD, IMF 등이 권고하듯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적극적인 재정지출이 필요하다. 민간 부문의 생산성 제고만큼 공공 부문의 생산성 제고가 중요하므로 공공 부문의 혁신과 재정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한국이 데이터 혁명 및 AI 시대 대응에 뒤처지지 않도록 젊은 세대의 역량과 평생교육을 강화하는 적극적인 재정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회의 평등 보장하는 재정의 재분배
둘째, 삶의 질 향상과 소득자산 격차 확대에 대응하는 재정의 재분배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들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에 대한 연구는 국가의 소득자산 격차가 확대될수록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교육과 노동시장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부의 대물림으로 인해 소외계층이 증가하지 않도록 하는 재정의 재분배 역할 역시 강화돼야 한다.
셋째, 총수요가 위축되지 않고 일자리 수요가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거시적인 재정정책의 운용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민간소비 여력 감소, 기업투자 약화, 수출 부진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처럼 가계, 기업, 대외 부문의 ‘총수요 ‹ 총공급’ 현상이 고착되는 상황에서는 국민경제를 이루는 또 다른 축인 정부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지출 증대는 국가부채 압박으로 이어지지만, 다행인 점은 한국의 국가채무 수준이 OECD 국가들 중 매우 낮다. 더욱 중요한 점은 전 세계적으로 이자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초 미국 경제학회 회장 기조연설을 맡은 블랑샤르(Blanchard) 교수, 미국 재무장관과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서머스(Summers) 교수 등은 낮아지고 있는 국채 이자 부담을 활용해 지금까지보다 훨씬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는데, 한국의 국가채무 이자 부담의 흐름이 이러한 세계적인 이자율 변화 추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블랑샤르 교수, 서머스 교수 등의 주장에서 주목할 점은 국채 이자 부담의 하락 현상이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향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중기적으로 재정 여력 상당히 풍부할 것
IMF, OECD 등 국제기구의 한국 재정 상황 진단에 따르면 한국은 중기적으로(5~20년) 재정 여력이 상당히 풍부할 것으로 전망되며, 장기적(30~40년)으로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 부문의 재정 부담으로 인해 재정 유지 가능성의 지속적인 확보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의 바람직한 재정정책 방향은 단·중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의 둔화, 실업률의 증가 및 소득자산 격차에 대응해 적극적 재정정책을 추진하되, 장기적으로 사회보험 분야의 재정 유지 가능성을 위한 재정 개혁(사회보장 분야 재정 재계산 등)을 지속적으로 병행하는 것이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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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