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10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발표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재정 여력이 양호하며 적극 재정정책 추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
IMF가 바라본 한국의 재정 건전성
“이제는 재정 동원 능력이 있는 나라들의 시간이다. ”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신임 총재의 취임 일성 가운데 한 대목이다. 그는 10월 8일 취임 첫 공식 연설에서 “세계 경제가 현재 ‘동조화된(synchronized) 경기 하강 국면’에 놓여 있다.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특히 “경기 회복을 위해 소비를 늘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며 정부 지출이 함께 이뤄질 때 승수 효과를 갖는다”며 그럴 수 있는 나라로 딱 세 곳을 꼽았다.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한국이다. 그는 ”공공 인프라와 연구개발 투자 등을 중심으로 이들 국가의 재정 지출 확대는 수요와 성장 잠재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말했다. IMF는 전 세계 190개 회원국 정부를 상대로 방만한 재정 운용에 대해 감시·감독 역할을 해온 기관이다. 그런 기관의 수장이 구체적인 나라 이름까지 거론하며 재정 지출의 확대를 공개적으로 주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 경제 어려움 해결할 재정 여력 충분”
IMF가 한국에 확장적 재정 정책을 권고한 것은 이번 만이 아니다. 3월 방한한 IMF 연례협의단도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주문했다. 타르한 페이지오글루 단장이 발표한 ‘2019년 IMF-한국 연례협의 결과’에서 재정 정책에 대한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한국은 경제는 견조한 펀더멘털을 갖고 있다. 숙련된 노동력, 탄탄한 제조업 기반, 안정적인 금융시스템, 낮은 공공부채 비율, 그리고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단기적으로 대내외 역풍에 직면하고 있다. 성장은 투자 및 세계 교역의 감소로 둔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낮고 고용 창출은 부진하다. 잠재성장률은 감소해 왔으며, 부정적인 인구 변화와 생산성 증가 둔화가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한다. 단기적으로 성장을 지원하고 하방 리스크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 당국은 잠재성장률을 강화하는 조치와 함께 재정 지출을 더 확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포용적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중기 재정 정책의 확장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경기 살리기에 재정을 과감히 투입해야 하고, 중장기 성장 잠재력의 제고를 위해서도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IMF는 한국 경제가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IMF 춘계회의에 발표된 회원국 ‘재정 점검 보고서(Fiscal Monitor)’에서는 한국을 독일, 네덜란드 등과 함께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로 분류하며 재정 지출 확대로 총수요를 증기시키는 정책을 권고한다. 반면에 일본,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재정이 불안한 나라로 꼽힌다.
IMF 재정 점검 보고서는 회원국의 재정 여력이 충분한지 여부를 판단할 때 현재의 재정 수지나 국가 부채 규모 뿐 아니라 경제성장률 전망치, 국고채 금리 전망치 등 30여 가지 변수 요인 등을 이용해 미래 특정 시기의 정부 부채 비율을 먼저 산정한다. 이 비율이 현재의 정부 부채 비율보다 높을수록 재정 여력이 크고, 낮으면 그 반대이다. 즉 재정 지출을 수입보다 늘려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경기 회복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 탄력을 높일 수 있으면 재정 여력은 더 커질 수 있다.
IMF는 또 한국의 경우 완화적 통화 정책에 힘입어 장기간 저금리 추세가 유지되며, 국채 발행에 따른 금리 상승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재정 지출의 경기 활성화 효과(승수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
적극 재정→경제 성장→세수 증대 선순환 구축
증세 없이 재정 지출을 늘리면 적자가 발생하고, 이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국가부채 비율이 높아지고 국채 이자율도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시중 금리의 상승과 물가 상승으로 기업의 투자나 가계의 소비 능력도 위축되는 이른바 ‘구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IMF의 평가다. 국채 금리는 지난 20여년 동안 명목 GDP 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물가는 한국은행의 관리 목표(2% 안팎) 밑단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정 적자가 곧 부채 비율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부채 비율 산정의 분모가 되는 GDP가 국채 원리금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20년 예산안에서 2020년 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6%, 국가채무 비율은 39.8%로 제시함에 따라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재정 건전성의 심리적 마지노선처럼 여겨온 ‘GDP 대비 재정수지 -3%, 국가채무 비율 40%’를 허물거나 위협하는 수준이어서 우려가 제기될만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 건전성에 집착해 적기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경기 침체→세수 감소→재정 건전성 악화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단기적인 수지 악화를 감내하더라도 적극 재정→경제 성장→세수 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게 2020년 예산안에 담긴 정부의 의지이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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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