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해 ‘30-50 클럽’(인구 5000만 명 이상,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국가)에 진입했다.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에 이어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당당히 올라 선 자리다. 경제력 기준으로는 한국이 7대 강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상에 전혀 맞지 않는 불명예도 여럿 안고 있다. 대표적인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노인자살률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인구 10만 명 당)은 2015년 기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8.8명보다 세 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2017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의 인구 비중)은 42.2%로, 이 또한 OECD 평균(13.5%)의 세 배에 이른다. 정리하면, ‘세계 7대 경제력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에서 빈곤 상태인 노인 인구 비율은 가장 높고,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노인 사망자 수도 가장 많다’는 그림이 그려진다. 경제 규모에 비해 복지 결핍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성장 위주 재정정책과 낮은 국민부담률 탓
국가의 복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다른 지표에서도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거리가 한참 멀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공공 사회복지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1.1%로 나타났다. 이는 OECD가 2018년 기준 관련 통계를 확보한 29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회원국 평균은 20.1%로 집계됐다. OECD는 회원국으로부터 보건·가족·노인·실업·주거·일자리·장애 등 9개 정책 영역에서 정부 재정이나 사회보험 급여로 집행하는 지출 내역을 수집해 해마다 통계를 낸다. 2018년 기준 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가장 큰 국가는 프랑스로 31.2%였다. 다음으로 벨기에(28.9%), 핀란드(28.7%), 덴마크(28.0%), 이탈리아(27.9%), 오스트리아(26.6%), 스웨덴(26.6%), 독일(25.1%) 등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 이들 상위 국가의 특징은 공공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경제의 성숙 단계와 상관없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 진입한 1979년 23.5%, 2만 달러 대인 1990년 30.1%, 3만 달러를 넘어선 2004년에 28.7%로 조금 떨어졌다가 2018년에는 다시 30%선을 넘어섰다. 독일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기인 1979년부터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25.5%로 지금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성장과 복지(분배)의 선순환 관계가 이뤄질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복지 과잉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을 펼치려면 OECD 회원국 대부분의 존재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낮는 이유는 성장 위주의 재정 정책과 낮은 국민부담률 때문이다. 조세 부담에다 공적연금과 사회보험 기여금을 더한 개념인 국민부담률은 2017년 기준 한국이 GDP 대비 25.4%로, OECD 평균 34.2%에 견줘 훨씬 낮다. 프랑스의 국민부담률은 2017년 기준 46.2%에 이른다. 다만 한국의 공공 사회복지지출 규모는 최근 10년 동안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2009년 GDP 대비 8.4%였던 복지지출 비중이 2013년 9.3%, 2015년 10.2%에 이어 지난해 11.1%로 상승했다. 기초연금 도입, 국민기초생활보장제 확대, ‘문재인 케어’ 등으로 대표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이 두루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0년부터는 문재인정부의 포용국가 정책이 강화되면서 공공 사회복지지출 규모의 증가 속도도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 공적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복지 분야의 법정지출 규모는 2020년 예산안에서 2019년 본예산보다 12.7% 증가한 120조 2000억 원이 편성됐다.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복지 분야 법정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8.9%로, 전체 재정 지출 증가율 6.5%를 상회한다. 이에 따라 전체 지출 예산에서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22.7%에서 2023년에는 24.9%로 2.2%포인트 높아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정부가 2018년 9월 확정한 ‘포용국가 사회정책 추진 계획’에 따라 관련 법령 제·개정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 결과이다.
복지·보육 등 재량지출 예산도 대폭 증액
복지·보육 등에 투입되는 정부의 재량지출 예산도 대폭 증액된다. 구체적으로는 노인 소득 기반 개선, 저출산 극복을 위한 생애주기별 맞춤 지원, 건강보험 보장 범위의 사각지대 해소 등을 위한 재정 투입 규모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많다. 소득 하위 40% 논인에 대한 기초연금이 25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인상되며, 노인 일자리 예산의 증액으로 관련 일자리가 올해보다 13만 개 더 늘어날 예정이다. 노인 돌봄서비스를 통합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대신 수혜 대상을 35만 명에서 45만 명으로 확대하며, 고령자 임대주택과 복지주택의 확대 등 노인 주거안정 지원도 강화된다. 중소기업 재직 직원의 출산·육아기 대체 인력에 대한 지원금은 1인당 60만 원에서 80만 원으로 올리고, 출산 전후 휴가급여도 인상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사회 임금’으로도 불린다. 사회 임금은 개인이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받는 시장 임금보다 불평등 개선 효과가 훨씬 크고, 내수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가계 소득에서 사회 임금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게 포용국가로 가는 길이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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