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차 유엔 총회 참석차 지난 9월 18~22일 미국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3박 5일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 한·미 정상회담 및 한·미·일 정상회담, 잇단 양자 정상회담 등의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대의 다자외교 무대인 유엔 총회에 데뷔해 ‘4강 외교’의 틀에서 벗어나 각국 정상을 만나 교류·협력의 폭을 넓혔다. 특히 미국·일본 등 우방과 북핵 문제 대응 과정에서 최고의 제재와 압박을 위한 공조를 유지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을 넘어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평화’는 문 대통령의 취임 첫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1일 15분간 이어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란 단어를 32번 언급하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당부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총회 회의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 거듭 강조
문 대통령은 기조연설 서두에서 “대한민국은 ‘분쟁의 사전 예방’과 ‘평화의 지속화’를 추구하는 유엔의 목표를 적극 지지한다”고 운을 떼었다. 문 대통령은 실향민 가정에서 태어난 유년 시절을 밝히면서 “평화를 갈망하는 심장은 고통스럽게 박동치는 곳, 그곳이 2017년 9월, 오늘의 한반도 대한민국”이라며 “전쟁을 겪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대통령인 나에게 평화는 삶의 소명이자 역사적 책무”라고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는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도 높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모든 나라가 안보리 결의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상응하는 ‘새로운 조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도 “타국을 적대하는 정책을 버리고 핵무기를 검증 가능하게, 불가역적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스스로 고립과 몰락으로 이끄는 무모한 선택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별히 나는 ‘사람을 근본으로’라는 이번 유엔 총회의 주제가 대한민국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일치한다는 점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사람이 먼저다’는 여러 해 동안 나의 정치철학을 표현하는 슬로건이었다. 새 정부의 모든 정책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또 “모든 국민이 공정한 기회와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경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것을 ‘사람 중심 경제’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그간 수차례 밝힌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신북방경제비전’을 언급하며 “한 축에서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바탕을 다져나가고 다른 한 축에서 다자간 안보 협력을 구현할 때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등 경제협력에 북한도 동참하는 평화적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적극 환영하며 IOC와 함께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나는 평창이 또 하나의 촛불이 되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유엔 총회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을 평창으로 초청한다고 덧붙여 큰 박수를 받았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와대
한·미·일 정상, “북 도발 용납할 수 없다… 스스로 대화의 장 나오게 해야”
문 대통령은 9월 21일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같은 장소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합세한 한·미·일 3국 정상 업무오찬 회담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선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일 공조체제 구축과 평화적 해결 원칙에 대한 논의들이 이뤄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현지 브리핑에서 “3국 정상은 북핵·미사일 도발이 동북아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히 규탄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3국 공조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는 인식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런 인식하에 3국 정상은 북한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대화의 장에 나오도록 국제사회가 최고 강도의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며 “국제사회가 단합된 입장을 견지하도록 3국이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3국 정상은 안보리 제재결의 2375호가 신속하게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을 높이 평가하고 모든 회원국이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공조하기로 의견을 모으는 한편, 중국·러시아와도 서로 협력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강 장관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은 굳건하며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3국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대북 공조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초래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고조되고 있는 위협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양국 정상은 북한의 9월 3일 제6차 핵실험과 최근 일본 상공을 통과한 두 차례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지속되는 도발에 대해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의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추진한다는 양국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며 “양 정상은 북한에 대해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하고, 한국의 최첨단 군사자산의 획득과 개발 등을 통해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강화하고 한국과 주변 지역에 미국 전략자산의 순환배치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담 모두발언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대해 “대단히 개탄스럽고, 또 우리를 격분시켰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하다. 문 대통령께서 ‘개탄한다(deplorable)’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며 “그 단어는 나와 수많은 사람(지지자)에게 ‘행운의 단어’였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지난해 대선에서 당시 클린턴 전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을 가리켜 ‘개탄스러운 집단(basket of deplorable)’이라는 비하적인 표현을 썼다가 트럼프 지지자만 결집하는 역풍을 맞은 사실을 상기한 것이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만나 북핵 해결 협조 요청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이하 현지 시각) 뉴욕 도착 직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노력을 평가하고 한반도 위기 해법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뉴욕·뉴저지 지역 동포와 간담회를 하며 교민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과 동행한 김정숙 여사는 9월 20일 뉴욕 이민 1세대 동포 어르신들에게 직접 담근 400인분 간장게장으로 점심을 대접했다.
9월 19일에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접견해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조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동북아 지역의 안보 상황에 대한 불안을 야기했다”며 “이럴 때 온 세계가 보란 듯이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시키면 안보 불안을 씻어내고 화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한국 정부가 휴전결의안을 유엔 총회에 제출해 11월 13일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예정대로 많은 국가에 의해 채택되면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고 북한이 참여하면 안전은 더욱 보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이 주관하는 2017 세계시민상 시상식에 참석,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과 함께 상을 받았다.
‘평화올림픽을 위한 메트로폴리탄 평창의 밤’ 행사
“북한도 참여하는 평창 평화올림픽 성사시킬 것”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대한민국과 평창은 어렵지만 가치 있는 도전에 나서려고 한다”며 “그것은 북한이 참여하는 평화올림픽을 성사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72차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이날 저녁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린 ‘평화올림픽을 위한 메트로폴리탄 평창의 밤’ 행사에 참석,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금 긴장이 고조되어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평화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시점에 남북이 함께한다면 세계에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남북이 함께한 경험도 있다”며 “올해만 해도 한국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와 태권도 대회, 두 번에 걸쳐 북한이 참여했다. 태권도 대회 참가는 불과 석 달 전의 일이다. 그동안 남북단일팀 구성, 남북선수단 동시 입장, 북한 응원단 참가 등 다양한 형태로 남북 스포츠 교류가 있어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IOC와 함께 인내심을 갖고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며 “쉽지 않은 길이지만 대한민국이 가야만 하는 길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번 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뜻깊은 대회”라며 “한국 정부와 국민이 각별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올림픽 안전도 걱정하지 말라.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한국은 테러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 중의 하나”라며 “지금까지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국제적인 테러 사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을 거론하며 “무려 반 년 동안 1700만 명이 시위에 나섰지만 단 한 명도 다치거나 체포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평화적인 축제였다”며 “우리 국민의 놀라운 응집력과 열정, 높고 성숙한 민주의식, 저는 이런 국민이 있기 때문에 평창올림픽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새클러윙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평화올림픽을 위한 메트로폴리탄 평창의 밤’ 행사가 열렸다. ⓒ청와대
오동룡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