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26) 씨는 4년 전 사촌 형을 떠나보냈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유 씨는 사촌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 문득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검색했다. 사촌 형은 SNS에 ‘이제 모든 불안과 불면에 어떤 약도 듣지 않는다. 아, 어떡하지’라고 남겼다.
최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자해 사진과 같은 자살유해정보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유해정보가 범람하는 SNS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보건복지부·경찰청·중앙자살예방센터는 지난 7월 18~31일 2주간 국민참여 온라인 자살유해정보 클리닝 활동을 벌였다.
이번 자살유해정보 클리닝 활동에는 경찰청 누리캅스(165명), 중앙자살예방센터 지켜줌인 모니터링단, 일반 시민 등 총 365명이 참여했다. 보건복지부는 자살유해정보를 적극적으로 신고한 임희택(26) 씨와 클리닝 활동 수기 공모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작성해준 유영진(26) 씨에게 ‘자살 예방의 날 기념식’(9월 10일)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수여했다.
자살 글 클리닝 대회서 5000건 신고
ⓒC영상미디어
임희택 씨는 “많은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해하는 영상을 게재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 정보를 본 다른 사람이 모방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빠르게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씨는 대회 기간 중 하루도 빠짐없이 신고한 결과, 5000건이 넘는 신고 건수를 기록했다. 그는 “대회 며칠 전부터 인스타그램, 트위터, 포털사이트의 자살·자해 등 각종 키워드를 정리했다”며 “대회 기간 중에 신고시간을 40초~1분 30초로 단축하는 방법을 터득해 부산 누리캅스 회원들과 공유하는 등 대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자살유해정보 클리닝 활동을 통해 1만 7338건의 자살유해정보 신고를 받고, 이 중 5957건(34%)의 게시물을 삭제했다. 4건의 자살 암시 글 게시자는 경찰에서 구호조치를 했다. 일례로 지난 7월 27일 인천중부경찰서 실종수사팀은 트위터에 동반자살하겠다는 글을 게시한 A씨를 찾아내 면담과 자살예방센터 상담 안내를 했다. 신고된 자살유해정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인터넷 사업자의 협조로 삭제되며, 동반자살 모집 글 중 위급한 것은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112에 직접 신고하고 있다.
신고 내용 분석 결과, 자살유해정보 77.3%(1만 3416건)가 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었다. 뒤이어 기타 사이트 10%(1738건), 온라인 커뮤니티 8.9%(1546건), 포털사이트 3.6%(638건) 순으로 자살유해정보가 많았다. 발견된 자살유해정보는 ▲자살 관련 사진·동영상 게재(8039건, 46.4%) ▲자살 방법 안내(4566건, 26.3%) ▲기타 자살 조장(2471건, 14.3%) ▲동반자살자 모집(1462건, 8.4%) ▲독극물 판매(800건, 4.6%) 등이다.
만 19세 이상 국민이면 중앙자살예방센터 누리집에서 누구나 ‘지켜줌인 모니터링단’으로 등록해 자살유해정보를 직접 찾아 신고할 수 있다. 임희택 씨는 2016년부터 부산경찰청 소속 누리캅스 회원으로 활동해왔다. 누리캅스는 인터넷상에 즐비한 각종 불법·유해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예방 활동을 하는 사이버 명예경찰이다. 전국의 누리캅스는 890명. 부산에서는 46명이 활동한다. 취업준비생부터 보안 전문가까지 다양하다.
누리캅스 회원들이 음란물·마약 거래·자살 사이트를 발견해 신고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검토 후 차단한다. 부산 누리캅스의 유해 사이트 신고 건수는 2015년 3787건에서 2017년 1만 7552건으로 4배 늘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 지난 9월 10일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은 임희택 씨(왼쪽). 임 씨가 부산경찰청 누리캅스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임희택, C영상미디어
이들과 함께하는 부산경찰청 누리캅스 담당 박성진 경장은 “이들은 무보수로 하루에 두서너 시간을 들여 사이버 세상의 유해물을 관리하는 봉사단”이라며 “바닷물이 썩지 않는 데는 3%의 소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들이 바로 소금 같은 존재”라고 했다.
임 씨를 비롯한 부산경찰청 누리캅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음란물·마약 거래·자살 사이트에 등장하는 은어들을 공부하고 블로그 찾는 법 등 정보를 공유한다.
임 씨는 “자해·자살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상위개념과 하위개념의 연관성을 파악해 자해일 경우, 피·도구·약물·독극물 등을 생각해냈고, 자살의 경우는 동반자살, 쉽게 자살하는 방법 등의 키워드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의 메시지
임희택 씨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하루 7~8시간을 투자해 누리캅스 활동을 한다. 하루에 100~150여 건의 유해 글을 발견하고, 월 5000~1만 건을 신고한다.
임 씨는 자살 글은 전염성이 강해 모방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프랑스 사회학자 타르드(J. G. Tarde)의 ‘모방의 법칙’은 친밀하게 접촉하는 사람의 행동을 모방한다는 이론(거리의 법칙)인데, 대중매체나 SNS를 통해 기존의 자살·자해의 유형이나 패턴을 쉽게 모방해 더 많은 2차 피해를 만든다”며 “휴대전화 보급으로 자살 글 접촉이 급속도로 빨라진 만큼 누리캅스가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했다.
“어떤 자해 시도자는 칼로 회를 뜰 때처럼 의학용 메스로 팔과 혈관을 칼로 뜯어 자해한 후 응급실에 실려 가는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해 방법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잔인하고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고, 삭제해도 좀비처럼 또 살아서 올라옵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이러한 범죄를 모방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출생률도 세계 최하위권인데, OECD 국가 중 13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벗어야죠.”
임희택 씨는 자살 유해 사이트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제임스 윌슨이 1982년에 만든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말이다.
“‘깨진 유리창’은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길거리에 방치하면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읽혀져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론입니다. 현재 음란물·마약 거래·자살 등 유해정보 신고가 연간 수십만 건에 이릅니다. 경미한 범죄라도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강력 범죄로 발전할 수 있어요.”
임 씨는 “주로 불법 사이트에 접속하다 보니 컴퓨터가 랜섬웨어에 걸리기도 한다”며 “자살 글 색출에 빠져 사는 것을 주위에서 만류하기도 하지만, 나의 작은 노력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청정한 사이버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