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 박슬기가 2010년 뮤지컬 ‘넌센스’ 무대에서 열연하고 있다. ⓒ연합
누군가를 조명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대중에게 전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대개 나를 일러 방송인 또는 리포터라고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지만 정작 내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가수가 되고 싶어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까지 오고 가기를 반복하던 그때의 간절함을 떠올리면 이 또한 감사했다. 다만 내 마음 깊숙이 눌러둔 도전의식은 수시로 꿈틀거렸다. 그런 나에게 첫 뮤지컬 ‘넌센스’가 찾아왔다. 굳이 따지자면 스스로 찾아 나선 기회였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다.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직접 문을 두드렸으니까.
첫 번째 관문을 지나 두 번째 관문 앞에 섰을 때였다. 당초 지원했던 배역이 아닌 다른 배역을 연기해볼 것을 요청받았다. 엠네지아 수녀였는데 상당한 수준의 복화술이 요구되는 역할이었다. 당황스러움이 앞섰던 게 사실이지만 별수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양말에 눈과 입을 붙여 만든 복화술 인형을 들고 오디션장에 들어섰다. 내 입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마치 인형이 말하듯이 외쳤다. “안녕, 이것들아.”
최종합격한 뒤 나중에서야 감독님들에게 전해 듣기를 그 인형을 만들어온 열정을 보고 뽑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넌센스’에는 총 다섯 명의 수녀들만 등장하기 때문에 각 역할마다 무대에서 채워야 하는 공백이 꽤 무거운 편이다. 어느 작품이든 주어진 책임감이 막중하지만 첫 뮤지컬이고 특히 복화술 연기로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는 부담감이 컸다. 그래서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내 목소리와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면서 입술이 부딪히는 음절을 자연스럽게 소화해야 한다든지 호흡 정리가 깔끔해야 한다든지 등. 방송 경험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공연 중간에 일종의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해서 관객과 애드리브로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방송 경험을 다수 녹여냈다.
돌이켜보면 무대에서는 참 여러 가지 감정이 겹쳤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딱 한 가지만 꼽자면 ‘행복’이다. 매번 리포터로서 대중을 마주했기에 시청자가 나보다 인터뷰이에 대한 관심을 갖는 건 당연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이었다. 그런데 뮤지컬 배우 박슬기를 바라보는 대중은 내가 어떤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집중했다.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넌센스’를 계기로 다수의 연극·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배역을 맡은 때도 있었다. 너무 흔한 또는 뻔한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지난 시간을 통해 난 확실히 깨달았다.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기회는 반드시 열린다.’ 평생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실천하는 이유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길거리 버스킹 역시 도전의 일환이다. 때로는 공원에서, 때로는 좁은 길목을 무대 삼아 노래한다. ‘꿈은 꿈은 꿈은 꿈은 꾸라고 있는 거야…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부딪쳐 해보는 거야’라는 가사 그대로 내 이야기를 노래한다. 오래된 친구가 내 버스킹을 보고 말했다. “너를 보며 마음 어딘가가 자극이 됐다.” 나와 친구처럼 누구든지 마음 한편에 ‘진짜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꾹꾹 눌러오고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꺼내어 도전해보길 응원한다.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을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기를.
박슬기│방송인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