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셋, 지금의 나는 5년 전에 비해 행복해졌을까. 대답은 글쎄다. 지위는 높아졌지만, 지위가 높아진다는 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남의 공을 빼앗아 먹을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예전엔 책상에 앉아 입으로만 일하던 부장님들이 그렇게 미웠는데, 어느덧 내가 부장님들처럼 일하고 있다. 이 인지부조화가 심각해지면 어떡하나. 다시 아이슬란드로 떠나야 하나. 또 오로라를 보며 소원을 빌어야 하는 걸까.
30대를 오롯이 ‘1박 2일’과 함께 보냈다. 정신없이 전국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국민 프로그램이라 불리며 상을 휩쓸었다. 그렇게 상을 휩쓸고 유명해지는 동안 네 살 된 딸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서먹해했고, 아내는 길거리에서 사인 요청을 받는 남편을 창피하다며 아이를 안고 저 멀리 앞서 갔다. 5년 동안 방송 하나에 온 시간과 정신을 쏟아 붓고 나니, 어느덧 이 시대 가장들처럼 서글픈 예비 중년이 돼 있었다. 마음도 몸도 지쳤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욕심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을 쥐어짤 게 분명했다. 그때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두자고. 사실 피디를 하면서 지겨워 쉬고 싶은 순간은 많았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다. 힘들게 들어온 직장이기도 하고, 이 일은 꽤나 재미있었다. 만약 그만두면 어떨까를 상상해보면 무척 심심할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배낭을 꾸려서 낯선 나라로 떠났다. 목적지는 아이슬란드였다.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면 왠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로라를 보고 5년의 세월을 눈밭에 파묻어버리고 오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20시간 비행기를 타고 먼 이국땅으로 갔다. 그러면 뭐하나. 민박집에서 이케아 냄비에 삼양라면을 끓이다 나도 모르게 프로그램 시청률을 검색하고 있는 것을. 여행 중에 만나는 이국의 낯선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도 자꾸 녹화에 쓸 장면이 떠올랐다. 심지어 기념품 가게에서 오로라 사진 밑에 ‘VARIETY’라는 글자를 보니, “버라이어티 정신!!”을 외치던 강호동 형이 생각났다. 결국 나는 지난날을 돌이켜보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인정했다.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행 내내 내가 좇았던 질문이다. 회사 파업으로 예상보다 휴가가 길어졌고 그만큼 생각할 시간도 많아졌다. 휴가가 끝날 무렵 나름의 결론이 나왔다. 일은 머리가 시키는 게 아니라 가슴이 명령하는 것, 성공을 좇아서 하는 게 아니라 두근거림을 좇아서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나는 그동안 왜 잊고 살았을까. 아이슬란드 여행의 백미가 ‘오로라’라면, 내 인생의 오로라는 ‘방송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며, 함께 방송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수십 명의 스태프가 한마음으로 방송을 만들고 있음을 심장으로 느낄 때 누가 뭐라 하든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로 ‘올바른 결과물’이었다.
프로그램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프로그램의 퀄리티는 담당 피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제작진 전체 능력의 총합으로 결정된다. 세상을 5년 정도 더 살아보니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고민은 늘 생긴다는 것. 중요한 건 그 고민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슬란드를 떠올린다. 이름마저 낯선 작은 도시를 헤매며 나는 진짜 나를 만나고, 내 속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나영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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