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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탈학벌·탈스펙으로 맞서라!

2018.06.17

좋은 대학이 취업을 보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최근 취업 시장의 변화를 분석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준비해야 할 미래를 말한다. 학원가 스타 강사와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의 이력을 가진 이범은 현재 교육평론가이자 MBC FM ‘이범의 시선집중’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를 출간해 학벌제일주의, 스펙만능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온 그가 청년 세대의 취업과 미래를 고민하며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2017년에 진행한 강연을 기반으로 저술한 이 책은 지금까지 제기된 청년 문제의 기본 틀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범은 우리의 미래로 다가온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청년 개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고 있다. 매일 빠르게 변화하는 취업 시장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객관식 문제와 상대평가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은 이런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불확실성의 시대, 이범의 해법을 들어봤다.

이범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에서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효자, 효녀라고 말한다.

이범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에서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효자, 효녀라고 말한다. ⓒC영상미디어

청년 계층을 지칭해서 쓴 책이다
교육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비교적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청년들이 요즘 혼란스럽잖아요. 고용이 불안정하고 양극화도 심해지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스펙을 최고로 잘 따야 할 것 같은데, 노동시장 채용 방식은 오히려 반대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청년들 입장에서는 정말 헷갈리죠.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일하면서 청년들의 취업난, 민생경제 등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 현상을 목도하면서 저 나름의 해석과 분석을 내놓은 셈입니다.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청년 취업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용 문제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에요.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이 감소하겠죠. 따라서 임금 감소를 감수할 여력이 있는 소득 상위층의 노동시간을 감축해 고용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소득 비례 노동시간 감축을 하는 것이죠.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주거비와 교육비를 줄여줘야죠. 주거용 부동산은 주택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서 임대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고, 보유세·양도세 인상 등을 병행해야 합니다. 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공·사립대 공동 입학제’를 통해 전국적인 공동 입학·공동 학위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공동 입학제에 참여하는 대학에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과 학생 선발권을 맞바꾸는 대타협을 하는 것이죠. 학생들은 전공을 선택한 뒤 1지망 A대학, 2지망 B대학 등으로 지원하고 일정 비율 추첨하는 방식이죠. 전국적인 4년제 대학 공동 입학 시스템을 만드는 데 매년 4조~5조 원 정도 들어가는데 정부 예산의 1% 정도 수준이니까 해볼 만하죠. 이러면 사교육비가 정말 절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노동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 탈학벌, 탈스펙을 지목했는데
강력한 정부 주도 경제에서 자유시장 경제로 바뀌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명문대 출신이더라도 이들이 민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민간의 학벌 영향력도 약화되는 거죠. 과거와 달리 사원의 채용 방식이 정기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는 것도 원인입니다. ‘정기채용->교육·훈련 후 배치’에서 ‘수시채용->즉시 배치’로 바뀌고 있는데, 이제는 뽑을 때 무슨 일을 할지 알고 뽑는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잘하는 사람보다 ‘그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을 뽑는 것이 수시채용의 핵심이며 탈학벌과 탈스펙의 근본 배경입니다.

이범은 대학교육마저도 주입식 교육으로 진행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범은 대학교육마저도 주입식 교육으로 진행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C영상미디어

특히 문과 출신의 취업난이 심각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과는 전공이 곧 전문성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문과는 전공 이외의 비공식적인 부전공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식적인 부전공은 나름의 요건이 있고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이잖아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중에서 산업적 배경을 가진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기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면서 스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으로 교체되고 있으니까요. 먹는 걸 좋아하면 식품산업, 외식산업, 농업, 수산업 등 좀 더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식재료로 쓰이는 농산물과 수산물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살펴보고, 가공이나 조리 과정을 이해하려면 화학이나 생물학 지식이 필요하니 그것도 배워야죠. 부동산에 관심 있으면 꾸준히 지역별 부동산을 탐방해보고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고려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성에 맞는 부전공을 찾아서 경력을 쌓거나 희소성 있는 능력에 도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합니다.

세계 유수 기업의 CEO 절반 이상이 인문학 전공자라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우리나라 인문학의 수난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인문학은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어요.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인문학도 경쟁력이 있어요.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력을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죠.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순수과학자들이 다양한 사회적 발언도 하고 단체도 만들고 실제 활동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4대강 사업, 휴대폰 전자파 유해성, 라돈 침대 논란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아무 발언도 하지 않습니다. 그건 사회적 영향을 확대할 기회를 오히려 잃어버리는 거예요. 시장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사회적 발언력을 키우는 데 굉장히 애를 써왔기 때문에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철학자들이 달라지는 의료 환경과 생명 관련 의료기술 속에서 어디까지 무슨 규제를 하고, 어디까지 연구나 개발을 허용해야 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이 상아탑 온실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힘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도 좋아하는 것을 직업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청소년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탐색해야 하는 시기죠. 지금 좋아하는 분야일 수도 있고, 지금은 안 보이는 어떤 다른 것일 수도 있어요. 뭐 하나 고려하면서 이게 직업이 되면 어떨까 하는 건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러워지니까 그런 고려 없이 그냥 해보는 거죠. 음식에 관심이 많다면 요리도 해보고, 관심 있는 식품 재료의 생산이나 제품 과정을 들여다보는 거죠. 식당에서 일할 기회가 있으면 해보기도 하고요. 그게 직업으로 연결될지는 모르는 거예요. 원래 탐색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우리가 연애할 때도 한 사람이랑 사귀어보고 바로 결혼하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 교육 시스템이 탐색할 시간이나 실패를 만회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건 교육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우리나라 특유의 연령 서열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의 지휘·감독을 받을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뭘 해야 하는 때가 정해져 있죠. 공부해야 하는 때, 결혼해야 하는 때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뒤늦게 새로 뭘 한다는 게 허용이 안 되는 문화이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는 거죠.  

고용 불안정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여러 직업을 갖게 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평생직장이 없어졌다고 해서 첫 직업이 안 중요한 건 아니에요. 전혀 다른 일을 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의 교집합에서 일을 찾게 됩니다. 일의 전환이라는 것도 교집합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죠. 때문에 첫 직업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겁을 주는 사람이 많은데요. 1차 산업혁명부터 시작해서 자동화가 여러 수준에서 일어났는데 총 일자리 수가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두렵다면 역발상으로 자동화가 안 될 만한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트럭 기사가 실직하고 회계사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과 일자리가 성장할지는 알 수 없거든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산업과 교육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꼽는 것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자기주도학습능력이라 생각해요. 청년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자기주도학습은 대부분 진짜 자기주도(self-directed)학습이 아닌 자기관리(self-managed)학습이었죠. 자기주도학습은 목표 설정, 수단 선택, 실행, 평가라는 네 단계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목표 설정을 자신이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교육의 초점은 창의력 자체보다는 자기주도학습능력, 특히 본인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에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때마다 본인이 뭘 배우고 실행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화두예요.

교육 분야 전문가로서 교육관이 궁금하다. 자녀들을 키우는 데 어떤 기준을 갖고 있나
일단 남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결과를 놓고 화내면 안 된다는 것이죠. 제가 학부모 강연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투자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면 손익분기점이 생기는데 많이 투자할수록 손익분기점이 높아진단 말이에요. 그럼 아이들이 목표에 미달하는 경우가 많아질 테고, 엄마는 화가 나잖아요.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영어학원을 가래서 한다고 했는데 엄마가 화를 내’, ‘수학학원 가라고 해서 다녔는데 엄마가 또 화를 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한두 번은 그럴 수 있겠지만, 이게 누적되면 아이가 영어나 수학 자체를 싫어하는 원인이 됩니다. 과정의 부실함에 대해 책망할 수는 있겠지만, 결과를 놓고 화내기 시작하면 부모 자식 관계도 망가지고 십중팔구 공부 자체를 싫어하게 됩니다. 저는 옷 한 벌 사줬다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투자가 아니라 소비를 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낫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학원 거부권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가 거부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면 아이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따릅니다. 어떻기에 엄마가 가보라고 할까? 그런데 권유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강요의 경험이 많이 누적됐기 때문이에요. 이게 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거죠. 결과적으로 강압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권유조차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이 둘은 작지만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강보라│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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