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9호선과 1호선의 환승역인 노량진역에서 3-1번 출구로 나가면 동작구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있다.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도 이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청년지갑트레이닝’ 줄여서 ‘청지트’는 2015년 만들어진 사회적협동조합이다. 2013년 설립된 청년연대은행 ‘토닥’에서 경제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다가 독립 기관이 됐다.
공부를 하는 중에도, 취업을 준비하는 중에도 빠지지 않는 게 경제활동이다. 누구든 하루 세 끼의 밥을 먹어야 하고, 최소한의 교통과 통신도 이용해야 한다. 취직을 못했다고 해서 취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커피도 마시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다. 하지만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 빚이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대졸자 1070명을 대상으로 대학 재학 중 학자금 대출 경험을 조사한 결과 74.5%가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들의 평균 빚은 1445만 원에 달한다. 대학 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돈을 빌린 학기가 그렇지 않은 학기보다 더 많다고 답했다.
돈 중심 아닌 사람 중심 경제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를 찾은 청년은 가장 먼저 재무 상담을 받는다. 현재의 재무 상태와 소비 습관을 점검한다. 청지트는 단순 수입과 지출 문제뿐 아니라 경제 전반과 삶의 방향까지 함께 설계한다. 당장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채무자는 먼 미래를 보지 못한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버겁다. 현실에 갇힌 시야를 넓혀주는 데서 설계는 시작된다. 이들이 가진 프로그램에 ‘꿈’이 많이 들어가는 건 그래서다. 돈은 꿈을 이루는 수단일 뿐 이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이루고 싶은 꿈, 목표가 재설정되면 현실의 장애물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방법이 보인다.
실행 단계에서 시작되는 기본기는 ‘가계부 쓰기’다. 가계부는 돈을 아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잘 쓰기 위한’ 수단이다. 가계부를 쓰다 보면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소비 패턴과 경향이 보인다. 낭비하는 부분만 지적하는 게 아니다. 억눌린 부분도 밝혀낸다. 평소 유흥을 좋아하는 청년이 재정 문제 때문에 유흥을 즐기지 못한다면 이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재의 재정 상태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누릴 것인가. 청지트는 함께 고민한다.
청지트가 수용하는 ‘청년’의 범위는 넓다. 19세부터 39세까지다. 2030세대는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은 시기다. 지난 4월부터 이곳에서는 생활경제 상담을 진행해왔다. 1주일 간격으로 2회 진행되는 상담은 해당 연령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내가 가입한 보험 약관도 모르면서 꼬박꼬박 돈을 내고 있는 사람’이나 ‘YOLO하게 살고 싶지만 버는 만큼 쓰는 생활이 불안한 사람’ 등 저마다 고민을 가지고 방문하면 된다. 직접 찾아오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는 ‘찾아가는 내 지갑 워크숍’도 운영 중이다. 위기청소년, 다문화가정, 새터민, 성매매 피해여성, 미혼모(부) 등 금융취약계층 청년을 대상으로 ‘건강한 금융생활’을 설계해준다. 프로그램은 모두 무료다.
정수현 청년지갑트레이닝 센터장은 청년연대은행 ‘토닥’에서 운영하는 워크숍에 참여하다가 센터에도 몸담게 됐다. 청지트에서 내놓는 처방이 그저 구호가 아니라 삶이 되는 경험을, 그 역시 겪었다. 그는 두 달 전에 결혼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 물리적인 부(富)뿐 아니라 생태적인 부와 관계의 부, 정신적 부를 이루는 과정이 되기를 바랐다. 반려자와 이 가치관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일은 그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그의 말처럼 돈을 주고받는 일에는 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가정환경과 경제 형편, 심리 상태까지도 반영된다. 정수현 센터장은 센터의 트레이닝이 삶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다음은 정수현 센터장과의 인터뷰다.
▶ ‘청지트’에서 사용하는 ‘꿈꾸는 가계부’와 ‘꿈꾸는 통장’
‘청지트’를 찾는 청년들은 어떤 상담을 받게 되나요?
먼저 내담자의 소비 성향과 재무환경을 파악하기 위해서 금전성향분석카드를 이용합니다. 타로 카드처럼 자신의 성향에 맞는 카드를 선택하다 보면, 성향이 나와요. 그러고는 가계부를 쓰도록 합니다. 가계부의 가장 첫 페이지는 자신의 꿈을 적는 거예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에 걸쳐서 이루고 싶은 걸 적어보라고 하죠. ‘가족들과 여행하기’ 등의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재정을 관리할지를 구체적으로 짜봅니다. 상담을 마치면 소그룹 모임이나 워크숍을 통해서 건강한 재정 관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상담한 청년 중에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학자금 대출로 빚이 있는데, 현재 취업을 준비하거나 시험을 준비 중이라 수입이 없는 경우입니다. 특히 저희가 있는 곳이 노량진이라 고시를 준비하는 청년이 많아요. 한 청년도 그런 사례였는데, 저희로서는 당분간이라도 취업해서 먼저 고정적으로 나가는 빚을 갚으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자가 계속 쌓이니까요. 그분은 저희 솔루션을 받아들여서 잠시 공부를 중단하고 일을 해서 빚을 갚았어요. 그러고 몇 달 뒤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빚을 갚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매달 이자를 내는데 원금은 줄어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한 번 연체한 적 없는 성실한 청년임에도 빚은 줄어들지 않죠. 그런 경우에는 저희가 다른 솔루션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학자금 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위해 장학재단 등에서 운영하는 제도가 있거든요. 그런 제도가 있는지 잘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보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도 있겠군요.
가장 안타까운 경우예요. 금융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이 이런 제도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데, 사람 심리가 한 번 연체를 하거나 어려움에 빠지면 그와 관련된 정보도 기피하게 되거든요. 어떻게 이런 분들에게 접근해서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을지도 저희에게 남은 숙제입니다.
상담을 추천하고 싶은 청년층이 또 있을까요?
낭비를 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돈이 모이지 않는 분, 과도한 대출 때문에 삶이 피곤한 분, 끌려 다니는 소비가 아니라 주도적인 소비를 하고 싶은 분 등이 그렇죠. 전문가의 시각에서 보면 당사자는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보일 수 있거든요. 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이나 공동생활을 시작하려는 예비 신혼부부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지역 외에도 광주에서도 ‘청지트’ 센터가 운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2017년 9월에 ‘내 지갑 상담사’들이 모여서 광주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광주에는 이미 ‘꿈틀은행’ 등이 운영 중이어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었어요. 최근에는 대구에서도 관심을 보여서 함께 고민하는 중입니다. 저희 센터는 직접적으로 돈을 대출해주지는 않지만 ‘토닥’이나 ‘꿈틀은행’ 등과 연대할 수 있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제도 등을 안내할 수 있어요. 이런 모임들이 함께 연대할 때 청년문제가 더욱 공론화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결국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활동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빚이 있으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위축됩니다. 부모의 부채나 가족의 병원비 등이 있는 경우에는 신용카드를 쓰거나 제2 금융권의 대출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게 되는데 그러면 더욱 빚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기도 어렵고요. 저희는 청년들이 ‘빚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은 목표를 세워 함께 이뤄가는 것도, 작은 성취를 통해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키길 바라서입니다.
‘청지트’에서 정의하는 ‘부자’는 비단 물질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더군요.
저희는 부를 네 가지 측면에서 봅니다. 물질적인 부, 생태적인 부, 정신적인 부, 관계적인 부로 나눕니다. 어떤 사람이 진짜 부자인지를 보면 단지 돈이 많다고 부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마다가진 경제관이 자기 스스로 정립한 게 아니라 부모에게서 교육받고, 살면서 굳어진 경우도 많고요. 각자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점검하고, 그 가치관에 맞춰 부를 쌓을 때 정말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지트’에서 진행하는 특강은 사회 전반을 다루던데요. 재테크에 대한 접근도 ‘정의’ 개념에서 시작하더군요. 최근 젊은이들의 꿈이 ‘건물주’라고 하던데 접근이 신선했습니다.
주식시장의 초단타 투기나 부동산 임대료로 수익을 올리는 게 당연한 재테크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직 이익만 있고 함께하는 연대와 협동은 찾기 어려워요. 이윤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가치에 투자할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청년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서 급전이 필요한 청년에게 대출해주는 관계금융입니다.
제도가 있지만 정보가 없어서 접근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저희 존재를 알려야겠지만, 저마다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공공임대주택 등의 만들어진 제도를 이용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거든요. 공공재니까요. 저희도 역시 청년들이 청년을 위한 제도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제도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공론화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청지트의 중점사업, 꿈꾸는 가계부
‘꿈꾸는 가계부’는 청지트가 개발했다. 가계부에는 ‘돈이 필요한 부분’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나눠져 있다. 막연히 돈 때문에 포기했던 일들이 실상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가계부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잘 쓰기 위해서 쓴다. 청지트는 “오늘날의 청년들이 무엇이 힘들고 괴로운지 진단할 수 있는 가계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계부는 총 네 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꿈꾸기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3개월~3년 단위로 미래를 꿈꿔본다.
2단계 지금의 나
현재 재무 상황을 꼼꼼하게 적어본다. 재무 현황에는 수입과 자산을 비롯해 소비 항목을 10가지로 나누어 적는다. 기본생활, 현재 행복, 관계 행복, 미래 행복, 부채 상황, 비정기 소비 등이다.
3단계 꿈과 만나기
본격적으로 가계부를 써본다. 3개월을 꾸준히 써야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4단계 꿈 점검하기
다시 한 번 꿈 지도를 그려본다. 가계부를 쓰면서 느꼈던 감정을 나눈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