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월 6일부터 7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했다. 7일 동방경제포럼 전체 세션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신북방정책을 발표했다.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 극동과 동북아, 유라시아까지 연계해 경제적 영토를 크게 확장해나간다는 게 이 구상의 핵심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기조연설에서 제시한 ‘9개의 다리’ 전략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크다. ‘9개의 다리’는 가스와 철도, 항만, 전력, 북극 항로, 조선, 일자리, 농업, 수산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협력을 추진한다는 의미다. 가스와 전기 등 러시아의 광활한 자원은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한국에 긴요한 협력 분야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가 주도해 동북아의 에너지공동체를 만드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협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단순히 에너지 차원의 협력을 넘어 유럽연합(EU)처럼 동북아 경제공동체와 다자안보체제로 발전하는 디딤돌로 만들자는 전략이다.
경제공동체 전략은 북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동북아 국가들이 협력해 극동 개발을 성공시키는 일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근원적 해법”이라고 밝혔다. 동북아 국가들이 극동을 중심으로 경제적 공동 번영을 이룰 경우 북한으로서도 동참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러시아,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월 6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비롯해 극동지역 개발과 양자 실질협력 증진 방안을 중점 논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따른 대응 조치로서 보다 강도 높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안보리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며 “이번에는 적어도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월 6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한·러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한·러 정상, 북핵 불허 한목소리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최초의 6자 회담에 응하지 않아 중국이 원유 공급을 중단한 적도 있는데 그 이후 북한이 6자 회담에 참여했다”고 말해, 대북 원유 공급 중단 조치가 북한의 대화 복귀에 효과적인 압박 수단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극동지역 개발을 중심으로 한 남·북·러 3각 협력을 적극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은 “저와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와 극동을 연결하는 남·북·러 3각 협력의 기초를 확실히 다지기로 했다”며 “북핵 문제로 진전이 많이 없었는데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가능한 협력 사업을 우선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유라시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한·러 수교 30주년인 2020년까지 양국 간 교역액을 연간 300억 달러로 확대하고 인적 교류는 연 100만 명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경제교류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9월 7일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지금보다 더 강한 대북 제재안이 담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추진하는 데 공조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원유 공급 중단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동참하도록 최대한 설득해나가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지금은 대화보다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더 강화해나간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 1 문재인 대통령이 9월 7일 제3차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2 문재인 대통령과 할트마긴 바트톨가 몽골 대통령이 9월 6일 단독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한·일 정상회담, “핵 문제 평화적 해결”
문 대통령은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더 악화돼 통제 불능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북한의 도발로 한·일 양국 국민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양국이 국제사회와 협조하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반드시 포기하도록 최대한 압박을 가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과 일본은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더 강력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나가자”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또 과거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미래 지향적이고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양국 정상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위급 교류를 재개하고 인적 교류와 실질협력을 가속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9월 6일 할트마긴 바트톨가 몽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에 대해 유엔에서 원유 공급 중단을 결의할 때 몽골도 적극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 유엔을 통한 강도 높은 제재를 취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바트톨가 몽골 대통령은 “몽골로 돌아가자마자 시급히 북한의 핵실험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김정숙 여사,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 이상설 유허비 참배
김정숙 여사는 9월 6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 강변에 있는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참배했다. 김 여사는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 이현원 씨, 외증손녀 이남의 씨와 함께 유허비에 헌화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이상설 선생의 넋을 기렸다.
김 여사는 “올해가 이상설 선생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이 자리가 더욱 뜻깊은 것 같다”며 “무엇보다 유족들이 이렇게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어 감사하다. 선열의 뜻을 늘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고종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됐다가 일본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러시아에 머물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중 1917년 숨을 거뒀다. 이상설 선생은 “광복되지 않은 고국에 돌아갈 수는 없으니 화장한 후 재를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은 2001년 10월 이상설 선생의 재를 뿌린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유허비를 세웠다.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