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로 돈을 번다? 가능하다. 시민이 투자금을 모아 발전소를 짓고, 생산된 전력을 되팔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더욱이 재생에너지 전력 판매가격은 점점 상승하는 반면 초기 시설 투자비용은 매년 감소하고 있으니 남는 장사가 돼간다. 55분 만에 1억 8000만 원의 목표 금액을 달성한 스타트 기업, ‘루트에너지’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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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서울 목동에 짓는 태양광발전소 투자자 모집이 55분 만에 마감됐다. 목표 금액은 1억 8000만 원. 서울에너지공사가 목동 사옥 옥상에 설치하는 ‘양천햇빛공유발전소’의 투자자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집한 것이다. 이 발전소는 95.85k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로 4인 가족 32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다.
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 건 조건이었다. 12개월 만기에 연 수익률 7.5%를 보장하고 최소 10만 원부터 500만 원까지 소규모로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고 했다. 양천구 주민에게는 0.5%의 우대금리가 적용됐다. 그 결과 최종 65명의 투자자가 평균 270만 원을 투자했다. 나이도 20~60대로 다양했다. 12개월 후 만기가 되면 투자를 연장할 것인지, 철회할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
생산 전력은 상승세, 초기 투자는 하락세
양천햇빛공유발전소의 투자 모집은 국내 최초로 진행된 재생에너지 크라우드 펀딩으로 스타트 기업 ‘루트에너지’가 맡았다. 루트에너지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투자자와 임대인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펀딩으로 금액을 모아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투자하고 여기서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공사에 판매한다. 발전소가 운영되는 20년간 관리·운영도 도맡는다.
루트에너지의 윤태환(35) 대표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재생에너지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했다. 전기공학도로 덴마크에서 유학한 경험과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일한 경력을 살린 것. 금융·정책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윤 대표는 “재생에너지와 금융의 결합은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어줘 미래가 밝다”며 “향후 펀드 수익을 늘려 연금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펀드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높은 수익률, 짧은 투자 기간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한국전력공사가 민간 발전소의 생산 전력 전량을 구매하므로 팔지 못하는 데 따른 불안감도 없다는 설명이다. 또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한 전력 판매가격은 점점 상승하고 초기 시설 투자비용은 감소하는 추세다. 단순히 계산해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이는 데다 친환경에너지에 투자한다는 명분까지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재생에너지 펀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와 안산시의 사례가 있다. 지난 2월 서울시가 노을연료전지발전소 건립 총사업비 1219억 원 중 114억 원을 시민이 투자 가능한 펀드로 판매했다. 이 펀드는 발매 1시간 30분 만에 완판됐다. 안산시는 2013년부터 시민 펀드 7억 원, 경기도 지원금 3억 원을 이용해 시민햇빛발전소 8개를 운영해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30%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루트에너지와 이러한 지자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율이다. 지자체 사업의 평균 이율은 3~4%인데 이는 루트에너지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지자체는 시중 대형 금융회사와 결합하는 반면 루트에너지는 소규모라 인건비가 적게 든다. 지출비용의 감소는 고객의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 발전소 설치 지역을 선정할 때도 최대한 정책적 혜택을 활용한다. 양천햇빛공유발전소처럼 건물 옥상에 설치할 경우 전력 환전 시 150%까지 금액을 보존해준다. 이익은 키우고 지출 규모는 줄이는 간단한 이치를 통해 투자자 상환율을 높이는 것이다.
다만 1인당 투자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것은 여전히 한계다. 소액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투자 상한선이 법률로 정해져 있어 1인당 최대 500만 원, 연 1000만 원으로 제한돼 있다. 윤 대표는 27.5%의 높은 세액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펀드에 대해서는 세액을 부과하지 않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 분야에 투자하는 펀드는 그 편익에 따라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외부 경제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변에서 태양광발전 패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이 돈을 모아 발전소를 세우고 생산 전력을 되파는 재생에너지 펀드는 아직도 낯설다. 공공기관, 대기업 위주로 전력을 공급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에너지를 만들어 돈을 버는 건 더더욱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1% 내외인 재생에너지 비율을 확대하려면 방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덴마크 재생에너지의 70%가 국민의 것
윤 대표는 덴마크의 사례를 소개했다. 덴마크도 처음부터 풍력발전 선진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적 풍력발전 기업 ‘베스타스’ 역시 낙농업 기계를 만드는 회사였다. 풍력이 덴마크 GDP의 8~9%를 차지할 만큼 성장한 것은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방안을 모색한 덕분이었다. 에너지 정책 중심에 재생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이 확산되자 국민의 참여가 이어졌다. 지금은 재생에너지의 70%가량을 국민이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에너지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나라라 할 만하다.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에 따른 불만도 줄었다. ‘내’가 투자한 ‘내’ 발전소이기 때문이다. 내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효자 상품이니 경관을 해친다고, 소음이 발생한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적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발전소를 소유하는 경우와는 발전소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주인의식도 있다.
루트에너지는 9~10월경 태양광발전소 모집에 들어간다. 이번 투자는 경기 포천시와 함께하며 수익률은 7%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포천 시민에게는 0.5%의 우대금리가 있다. 루트에너지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되 앞서 언급한 재생에너지 펀드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하나씩 해결해나갈 계획이다.
윤 대표는 “그동안 에너지 정책이 하향식(top-down)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상향식(bottom-up)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지향이 큰 흐름인 건 다들 안다. 그렇다면 된다, 안 된다를 논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계를 극복할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이 에너지 전환의 과도기라면서 조금씩 변해간다면 우리도 에너지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속도와 방향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에 의해서 좌우된다. 조금씩 바꿔간다면 에너지 민주주의, 우리도 가능하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