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1일이 되면 무언가 인생을 바꿀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일주일이 못 가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금연과 다이어트, 매일 일기 쓰기나 운동하기 등등. 우리는 수많은 계획을 연초에 세우지만 갑자기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내가 몇 년간 계속 실패했던 ‘365일 매일 실천하기’ 프로젝트 중 하나는 날마다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여러 번 ‘365일 매일 일기 쓰기’에 도전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어서 몇 년간 포기하고 있었다. 가끔은 그렇게 무섭던 ‘담임선생님의 일기장 검사’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일 일기장 검사를 하던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열심히 일기를 쓰곤 했으니까. 올해도 작심삼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며칠 건너뛰어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를 2차 목표로 삼았다. 그러자 하루 이틀 일기를 못 써도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지, 뭐’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이런 작은 마음가짐이 큰 변화를 낳았다. 사실 ‘매일매일 일기 쓰기’와 같은 자기와의 약속 자체보다도 ‘스스로를 지나치게 닦달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면 된다’라는 자기 암시와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로 너무 오랫동안 스스로를 갈구고, 괴롭히며,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스로를 비판하는 일에 익숙해져버린 것이 아닐까. ‘하면 된다’는 태도는 불도저식으로 지나치게 일의 진행을 밀어붙이는 습관을 낳기도 하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을 극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작심삼일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몇 번의 실패로 인해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고, 몇 번의 실수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의 습관이 아닐까 싶었다. 자기 징벌의 마음 습관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도 일단 ‘에이, 안 될 거야. 저번에도 못했잖아’라는 식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라는 첫 문장은 워낙 유명하지만, 나는 그 뒤의 구절이 더 좋다.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마음 아픈 날엔, 작심삼일로 인해 스스로 실망하는 날엔, 그냥 가만히 누워 견뎌보자. 어쩌면 삶의 진검승부는 끊임없이 성취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그저 가만히 누워 견딜 수 있는 마음’으로 결정될 때도 있으니. 너무 앞서가려 하기보다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견디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절실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나는 이제 ‘하면 된다’ 대신에 때로는 ‘안 해도 괜찮은 일’을 생각해보고, ‘해도 안 될 때는 다른 길로 돌아가기’를 택하곤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에 집착하는 대신,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다른 길은 없을까’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다른 방식으로 실천하는 길’을 찾아보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다. 내 자신을 밀어붙이고, 다그치고, 후회하는 대신, 다독이고, 쓰다듬고, 보살펴주기. 올해의 진정한 365일 마음 챙김 프로젝트는 이런 소박한 마음가짐의 변화로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정여울│작가, 문학평론가